우리나라의 월 단위 무역수지가 적자로 돌아설 것이 확실시된다. 무역적자가 실현된다면 이는 우리가 만 8년 3개월 만에 처음 경험하는 일이 된다.

김용범 기획재정부 차관은 2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가진 브리핑을 통해 “아직 예단할 수는 없지만 4월 무역수지가 99개월 만에 적자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김 차관은 전날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마련한 경제 관련 토론회에서도 “코로나19 사태의 수출에 대한 충격은 이달부터 본격화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부산항에 적재된 화물들. [사진 = 연합뉴스]
부산항에 적재된 화물들. [사진 = 연합뉴스]

김 차관은 29일 브리핑에서 4월 들어 수출이 크게 줄어들고 있는 반면 수입은 감소폭이 상대적으로 작아지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달 들어 20일까지 집계된 무역수지가 35억 달러 적자를 보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그러나 우리가 방역에서 성공을 거두면서 내수가 상대적으로 양호한 상태를 보여왔고 제조업 생산과 투자도 다른 나라에 비해 정상적인 모습을 유지해온 덕분에 지금 정도의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고 자평했다. 그는 또 감염병 사태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할 때 4월 교역 실적을 부정적 징후로만 바라볼 필요는 없다고 강조했다.

김 차관의 설명대로 우리나라는 감염병 사태의 충격을 비교적 유연하게 흡수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월 들어 국제유가가 급락할 정도로 글로벌 수요가 본격적으로 위축되는 바람에 수출 감소폭이 갑자기 커졌다. 내부에서 우한 폐렴(코로나19) 방역을 아무리 성공적으로 이끌어도 외부 환경이 워낙 엄중하다보니 수출이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이른 회복이 가능할지 여부다. 김 차관의 기대대로 수출 감소가 부정적 징후와 무관한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우리의 제1 교역국인 중국이 아직 감염병 사태의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데다 미국이나 유럽은 한 발 늦게 혼란을 치르고 있다. 이들 국가가 경제활동을 본격 재개하는 데는 제법 긴 시간이 소요될 것이란 전망이 많다.

일각에서는 코로나19가 여름을 맞아 북반구에서 잠시 주춤했다가 올 가을부터 다시 창궐할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유행 장기화 기미를 보이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세계 교역질서를 재편할 것이란 분석도 심심찮게 제기된다. 사람과 물자의 교류가 줄어들면서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이전의 보호무역주의가 다시 기승을 부릴 것이란 의미다.

때맞춰 관세청은 올해 1분기 우리나라의 승용차 수출이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10.1% 줄었다고 발표했다. 수출이 크게 줄어든 반면 수입은 1.3% 줄어드는데 그쳤다. 29일 관세청이 밝힌 1분기 자동차 수출액은 83억7000만 달러였다. 수입액은 작년 1분기보다 고작 3000만 달러 줄어든 23억9000만 달러로 집계됐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1분기라면 아직 감염병 사태의 영향이 본격화되지 않은 시점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관세청이 발표한 1분기 자동차 수출입 동향은 본격적으로 나타날 감염병 사태 충격에 대한 예고편이라 할 수 있다.

김 차관의 말과 관세청 발표 내용을 종합하면 올해 들어 우리의 수출은 크게 감소하는 흐름을 보이는 반면 수입은 감소폭이 그보다 작다고 할 수 있다. 일시적 현상이라면 다행이지만 만약 이런 상태가 장기화된다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우리의 국가 신인도를 높이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해온 경상수지가 직접적인 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경상수지는 2012년 이후 처음으로 600억 달러 선 아래로 떨어졌다. 2015년 1051억 달러를 넘겼던 경상수지가 그러지 않아도 급격히 악화되는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던 것이다.

경상수지 악화에 결정타를 날린 것은 무역수지 흑자폭의 감소였다. 그리고 무역수지 악화의 주원인은 말할 것도 없이 수출 부진이었다. 한국은행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월간 수출실적은 1년 내내 마이너스 행진(전년 동월 대비)을 이어갔다. 그 결과 연간 수출은 전년보다 10.3%나 줄어든 5619억6000만 달러를 기록하는데 그쳤다.

이를 감안하면 수출과 관련한 4월 상황은 엎친 데 덮친 격이라 할 수 있다. 기재부는 기존의 글로벌 경기 침체에 감염병 파동이 겹치면서 4월 수출은 10여 년 전 금융위기 이후 가장 큰 폭의 하락세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향후 전망과 관련, 김 차관은 “미국과 유럽 주요국들의 경제활동 재개 시점, 신흥국에서의 감염병 사태 추이와 금융시장 동향, 미국 등의 정책 대응 상황 등이 글로벌 경제 흐름을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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