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은 ‘달콤한 독’으로 불리곤 한다. 정제된 설탕의 단맛이 거칠게 느껴질 정도로 부드럽고도 진한 초콜릿의 맛을 음미하는 순간 우리는 안락함과 행복감을 느낀다. 따라서 스트레스가 많은 현대인 중엔 초콜릿의 매력에 빠져드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그 매력에 마냥 빠져드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우리 몸에 비만이라는 치명적 해악을 가져다줄 수 있어서이다.

국가 재정이 꼭 그와 같다. 쓸 때는 좋지만, 통제 없이 마구 사용한다면 반드시 사달이 생긴다. 우리 국가 재정엔 이미 비상등이 켜졌다. 우한 폐렴(코로나19)이라는 감염병 사태가 결정적 원인이 되고 있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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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우리 국가 재정은 이미 그 이전부터 경고 신호를 발하고 있었다. 악화 속도가 유난히 빨랐던 때는 지난해였다. 기획재정부 집계에 의하면 중앙정부가 지고 있는 국가채무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율은 작년 한 해에만 2.1%포인트나 악화됐다. 2018년의 34.4%에서 36.5%로 증가한 것이다. 여기에 지방정부의 빚까지 합쳐 계산한 국가채무(D1)는 728조8000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국가채무의 규모를 말한다.

이를 토대로 산정한 작년 우리의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38.1%다. 경제 전문가들 사이에서 재정 건전성의 마지노선으로 거론돼온 40%선을 이미 지난해부터 위협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문재인 정부의 높은 재정 의존도에 기인한다.

지난해 우리 사회에서는 국가채무 40% 기준선을 둘러싼 논란이 치열하게 전개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작년 5월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홍남기 경제부총리에게 “40% 기준의 근거가 뭐냐”고 질문을 던진 게 시발점이었다.

그러나 논란은 그 일 이후 한국은행이 국민계정 기준연도를 변경하면서 한동안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기준연도를 2010년에서 2015년으로 개편함에 따라 당장 2018년의 국가채무 비율이 기존의 38%대에서 35.9%로 뚝 떨어진 것이 원인이었다. 국가채무 비율이 35%대인 상황에서 40% 마지노선의 설정 근거를 논하는 것 자체가 머쓱한 일이 돼버린 것이다.

5년 단위로 반복되는 일이지만, 국민계정 기준연도 개편은 GDP 규모가 이전 집계치보다 커지게 하는 효과를 가져다준다. 분자인 국가채무는 그대로인데 분모인 GDP가 커지니 자연스레 국가채무 비율은 줄어들기 마련이다.

그런 국가채무 비율이 지난해에 38%대로 올라섰으니 이 때부터 경고등이 다시 켜졌다고 말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국가 재정 악화를 질환에 비유하자면 우리는 코로나19 사태 이전부터 이미 기저질환을 갖기 직전 단계에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국가채무 비율 증가로 대변되는 재정 상태의 악화는 앞서 언급한 대로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특히 나빠졌다. 일자리 예산이랍시고 매년 수십조를 할당한 뒤 한 달 20만원 남짓씩 주는 알바성 노인 일자리 등을 크게 늘리다 보니 재정 지출의 급속 증가는 필연이었다. 나아가 기타 복지 규모도 눈에 띄게 증대됐다. 이는 근년 들어 소득 1분위 가구의 소득 항목 중 이전소득이 유별나게 증가한 것과 무관치 않다.

재정 악화의 진짜 시작은 이제부터다. 올해 들어 24조 규모에 육박하는 두 차례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함으로써 국가채무 전체 규모는 819조원으로 늘어나게 됐다. 당초 2차 추경은 적자국채 발행을 전제하지 않고 추진됐으나 여당의 의지로 규모가 커지는 바람에 3조4000억원의 적자국채 추가 발행이 불가피해졌다. 앞서 편성된 1차 추경만으로도 정부는 10조원가량의 적자국채를 발행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었다.

국회 통과를 마친 1, 2차 추경만으로도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41.4%에 이르게 됐다. 그러나 정부가 밝힌 이 비율마저 아전인수식 계산법에 의한 허구일 가능성이 크다. 이 수치는 올해 GDP가 2.4% 성장한다는 것을 전제로 산출됐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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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 건전성 악화 못지않게 신경써야 할 일은 또 하나 있다. 철저히 효용성을 따져가며 재정을 풀어야 한다는 뜻이다. 지금처럼 정부 기관의 직접 고용과 알바성 노인 일자리 증대 및 복지 확대에만 치중하다 보면 국가 재정은 경제 활성화를 위한 마중물 구실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된다.

민간 주도가 아닌 정부 주도 성장은 한계를 지닌다는 것이 경제 전문가들 사이에서의 통설이다. 오히려 재정 의존도만 높이면서 경제의 역동성을 억제하는 한편 민간의 경제주체들 사이에 도덕적 해이를 조장할 것이란 경고도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일례로 현 정부 들어 급격히 늘어난 소득 1분위 가구의 이전소득 증가는 그들의 근로 의욕과 자생능력을 떨어뜨리는 등의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그러니 정부는 그들에게 일하지 않고 얻는 소득을 늘려주려 하기보다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는데 치중할 필요가 있다. 이전소득보다는 근로소득을 늘려주는데 보다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려면 일자리를 늘려줄 수 있는 곳은 정부가 아니라 기업이라는 인식을 새롭게 다지는 일이 우선돼야 한다. 나아가 재정을 쓰고자 한다면 산업생산이 최대한 늘도록 지원하는데 상당 부분을 할애해야 한다.

국가 재정을 최대한 튼튼히 관리하는 것은 위기에 대비해 우리 경제의 면역력을 키우는 것과 같다. 국가 재정의 건강성은 지금처럼 감염병 사태 같은 돌발적 악재가 나타났을 때 더욱 절실해지기 마련이다. 나라 곳간이 튼튼해야 정작 목돈이 필요할 때 정부도 양껏 돈을 풀 수 있는 법이다.

지금이 그럴 때인지를 두고는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더 큰 경제 위기가 닥칠 가능성을 경고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이 점이 여전히 국가 재정 운용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이유다.

지금 같은 위기 때는 국가채무를 늘리지 않아도 재정 건전성이 저절로 악화될 수밖에 없다. 많은 국내외 경제관련 기관들이 전망하듯이 GDP 규모가 이전보다 줄어들 것이 확실시된다는 점이 그 원인이다. 재정 건전성 지표인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을 줄이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분모인 GDP를 늘리고, 분자인 국가채무 규모를 줄이는 것이 유일한 해법이다.

지금의 코로나19 사태는 재정 건전성 문제와 관련해 우리에게 인식의 전환을 재촉하고 있다. 이참에 해묵은 과제로 남아 있는 재정건전화법 제정 문제를 정치권이 심도 있게 논의해보길 권하고 싶다. 사람 아닌 제도만이 정권과 정치 이념을 초월해 확실한 곳간지킴이 구실을 해주리라 믿기 때문이다.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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