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가구별 소득과 지출에 관한 통계가 그야말로 누더기가 돼버렸다. 낡고 닳아서라기보다 새로운 모양새를 연출하기 위해 이곳저곳 수선을 하다 보니 생긴 결과로 의심된다. 물론 통계청의 주장은 이와 다르다.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변화를 꾀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황상 통계청의 주장엔 선뜻 납득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21일 통계청은 2020년 1분기 가계동향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여기엔 이전 발표 때처럼 우리나라 가계의 소득과 지출 현황이 상세히 포함돼 있다. 소득 분위별 가계수지와 소득 격차 정도도 소상히 정리됐다. 올해 1분기 현재 우리나라 가계의 살림살이가 어느 정도인지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자료들이다.

강신욱 통계청장. [사진 = 연합뉴스]
강신욱 통계청장. [사진 = 연합뉴스]

문제는 이 자료를 이용해 올해 1분기 우리 가계의 살림살이 형편을 이전과 직접 비교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데 있다. 통계 자료를 얻기 위해 실시되는 조사 방식과 표본에 변화가 생긴 것이 근본 원인이다. 소위 시계열(時系列)이 단절된 데 따라 나타난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시계열이란 시간별 숫자 흐름을 지칭한다. 이게 보장이 돼야 각종 통계자료의 시점별 값의 비교·분석이 가능해진다. 시계열이 단절된 상태에서 집계된 통계는 추세를 정확히 반영하지 못한다. 통계로서의 가치와 의미를 상당 부분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통계청은 가계소득동향 조사를 실시해오면서 2016년 이후, 그리고 2019년 이후 한 차례씩 시계열을 단절했다. 단위 조사기간 하나만 놓고도 어지러울 만큼 변화가 심했다. 2016년까지는 가계수지를 분기별로 집계했지만 그 다음부터는 소득과 지출을 각각 집계해 별도로 발표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조사치의 경우 소득부문은 분기별로 발표됐지만, 지출부문은 ‘연간지출’로 묶인 채 올해 5월 들어 한 차례만 발표됐다.

그러다가 올해부터는 다시 소득과 지출을 합친 가계수지 자료를 분기별로 발표하는 방식을 채택하기로 했다. 이런 방식으로 처음 발표된 것이 이번의 가계동향조사 결과다.

일이 이렇게 꼬이다 보니 강신욱 통계청장은 조사 결과를 브리핑하면서 “구체적 금액 수준을 비교하려면 2019년 이전 계열에 대해서는 기존 조사 결과를, 그 이후 시계열 비교 때는 새로운 통합조사 결과를 참고해 달라”고 주문했다. 통계 수요자에게 하는 주문 치고는 꽤나 까다로운 주문이다. 2019년을 기점으로 해서는 아예 비교를 포기하라는 말로 들린다.

퉁계 자료는 과거와 현재의 추세를 명료하게 보여줄 때 본연의 의미와 가치를 온전히 지닌다고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통계청의 최근 갈지자 행보는 납득하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는 ‘통계 마사지’ 논란이 끊임없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의심을 키우는 정황도 있다. 2018년 8월 전임 황수경 통계청장이 취임 1년여만에 돌연 사임한 것이 의혹의 단초였다. 이를 두고 그가 재임하는 동안 발표된 가계동향조사 결과가 소득분배의 점진적 악화를 나타낸 것이 원인일 수 있다는 분석들이 제기됐다. 요는 통계 자료가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부작용올 부각시키는 것으로 비쳐지자 황 청장에게 괘씸죄가 덧씌워진 것 같다는 얘기였다.

그의 후임으로 강 청장이 지명됨으로써 의심의 목소리는 더 커졌다. 강 청장은 전임 청장 재임 당시의 통계청 조사방식에 이의를 제기하며 이목을 끌었던 인물이다. 나아가 소득주도성장정책의 당위성을 운위할 논리적 기반을 제공했다는 평가를 듣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의도가 무엇이었든 신임 청장 취임 이후 조사 기준과 방식이 바뀌면서 소득 분배지표는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일단 명목 수치상으로는 그렇다. 예를 들어 작년 1분기의 균등화 처분가능소득 5분위 배율은 과거 방식으로는 5.80배였지만 바뀐 방식으로는 5.18배였다. 이 배율은 숫자가 높을수록 소득 불균형이 심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바뀐 조사 방식으로 집계한 올해 1분기 5분위 배율(2인 이상 가구 기준)은 5.41배로 나타났다. 실제로는 지난해 동기보다 배율이 0.23배포인트 높아진 셈이다. 그만큼 소득 불균형이 더 심화됐음을 보여주는 수치다.

통계 조사 방식이나 기준 등이 절대불변일 수는 없다. 시대 흐름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다만, 여기엔 충분한 논의와 검토, 논리가 뒷받침돼야 한다. 그래야 통계로서의 의미와 가치는 물론 신뢰도를 유지할 수 있다.

대표 필자 편집인 박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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