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28일 기준금리를 또 한 번 인하했다. 지난 3월 임시금융통화위원회 회의까지 소집해가며 0.50%포인트 인하라는 ‘빅컷’을 단행한지 두 달 남짓 만의 일이다.

이번의 인하폭은 통상적 수준인 0.25%포인트였다. 이로써 한은 기준금리는 0.50%로 내려갔다. 이를 두고 이주열 한은 총재는 실효하한에 가까워진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금리인하의 긍정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한계선에 가깝게 금리를 내렸다는 말로 해석된다. 달리 표현하면 한은으로서는 더 이상 쓸 실탄을 남기지 않고 통화정책 수단을 거의 다 소진했음을 간접적으로 밝혔다고 할 수 있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결국 이번 금리 인하 조치는 전적으로 국내외 경제상황이 매우 엄중하다는 한은 나름의 판단에 따라 단행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총재는 우리의 기준금리가 한계선 가까이 내려간 만큼 상황이 변하지 않는 한 더 이상의 인하는 어려울 것임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추가인하 가능성을 묻는 질문이 나오자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가 마이너스 금리 도입을 강하게 부정하고 있는 만큼 그런 상황을 가정해 기준금리 인하 수준을 예상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답했다.

현재 연준은 기준금리를 0.00~0.25% 수준에서 유지하고 있다. 그러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트위터 글로 연준을 향해 금리 인하를 압박하고 있다. 제로금리를 넘어 마이너스가 되도록 금리를 더 내리라는 의미다.

하지만 연준은 늘 그래왔듯이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에 일절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연준은 통화정책을 논하기 위해 다음달 9~10일(현지시간) 우리의 금통위 격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를 연다. 지금 분위기로 보자면 연준은 이 회의에서 금리 동결을 결정할 가능성이 크다.

향후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지만 한은의 이번 결정으로 한·미 양국 간 금리격차는 0.25~0.50%포인트로 좁혀졌다. 만약 연준이 지금의 기준금리를 장기간 이어간다면 실제로 한은이 택할 통화정책 수단은 거의 없다고 해석할 수 있다. ‘베이비 스텝’일 망정 한은이 한 번만 더 금리를 내려도 한·미 간 금리가 역전 직전 상황에 놓이기 때문이다. 이 총재가 이번 금리 인하 결정 직후 ‘실효하한’을 거론한 것도 그와 맥을 같이하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 총재는 미국이 금리를 추가로 인하한다면 우리의 실효하한은 지금보다 더 내려갈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미국이 마이너스 금리를 택한다면 우리도 기준금리의 추가 인하를 검토할 여지를 갖게 된다는 의미다.

한은이 이처럼 실효하한 근처까지 기준금리를 내리며 예상 외의 선택을 한 배경엔 현재와 미래의 경제 상황에 대한 부정적 평가와 전망이 자리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올해 우리 경제의 성장정체에 대한 우려다. 이날 한은은 올해 우리 경제의 성장률 전망치를 -0.2%로 수정제시했다. 기존 전망치 2.1%를 대거 낮추어야 했을 정도로 상황이 간단치 않음을 보여주는 수치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사진 = 연합뉴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사진 = 연합뉴스]

한은이 성장률 전망치를 마이너스로 제시하기는 금융위기 파도에 휩싸였던 2009년의 -1.6% 제시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 경제가 역성장 기록을 남긴 때는 1980년(-1.6%)과 1998년(-5.1%) 두 차례였다. 한은이 마이너스 성장을 예상했던 2009년의 성장률은 결과적으로는 플러스 0.8%를 기록했다.

성장률 전망과 관련, 이 총재는 코로나19의 진정 시점이 늦춰지고 있다는 시각을 드러냈다. 그는 “선진국들에서는 코로나19 확산세가 진정되고 있지만 최근 들어 남미 등 신흥국에서는 확진자가 크게 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 같은 점들을 고려해 올해 우리경제의 성장률 전망치를 대폭 낮췄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장기화될 것이란 전망도 한은이 보다 엄격한 판단을 내리도록 유도한 것으로 분석된다. 한은의 그 같은 인식이 기준금리 인하 시점을 세간의 예상보다 앞당기는 계기가 됐으리라는 의미다. 당초 시장에서는 한은이 오는 7월 금통위 회의에서 금리 인하를 단행할 것이란 전망들이 나왔었다.

인하 시점을 이날로 택한 배경에 대해 이 총재는 “코로나19 장기화 전망과 함께 성장률이 제로 근처 수준까지 떨어지고 물가 상승률도 크게 낮아지는 상황에서는 금리를 내리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금리정책 여력이 없어진 상황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자 이 총재는 “금리 이외의 수단으로 적극 대응할 수 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 수단이 무엇일지, 활용 시점은 언제일지 등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다만, 향후 상황 전개에 따라 필요한 수단을 찾아 조치를 내리겠다는 말로 답을 갈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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