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어제 3차 추가경정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그 하루 전 공개된 정부 추경안의 규모는 역대 최대인 35조3000억원이었다. 추경이 편성되기는 올해 들어서만 세 번째다. 여기서 끝나리라는 보장도 없다. 여차직 하면 정부가 4차, 5차 추경안을 들이밀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부가 워낙 돈쓰는 데 이골이 나 있는 탓이다.

추경 편성 자체를 나무랄 일은 아니다. 필요하다면 추경은 얼마든지 편성해 국회에 제출할 수 있고, 야당도 합리성이 인정되면 추경안 통과에 적극 협력하는 게 옳은 일이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재정 운용을 보고 있노라면 불안감이 이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지나치다 싶을 만큼 재정 투입을 쉽게 결정하고, 그 규모도 입이 벌어질 정도로 크다는 점이 그 배경이다.

이제 재정 운용과 관련된 각종 수치들 앞에 붙는 ‘역대급’이니 ‘사상 최대’니 하는 수사들은 일상적 표현이 되어버렸다. 3차 추경안 규모 외에도 한 해 동안의 전체 추경 규모, 그로 인해 빚어진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 관리재정수지 적자 규모 등등이 모두 역대급으로 치솟았다.

더 큰 문제는 그들 지표의 상승 속도가 어지러울 정도로 빠르다는 점이다. 올해가 절반도 지나기 전 추경 합계는 59조를 넘기고,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지난해의 37.1%에서 43.5%로 급등하게 된다. 지난해 본예산 기준으로 740조8000억원이던 국가채무가 3차 추경이 이뤄지면서 840조2000억원으로 늘어나는데 따라 나타날 결과들이다. 관리재정수지 적자도 심각할 정도로 급등한다. 작년 본예산 기준 37조 남짓이던 것이 112조 이상으로 폭등하게 된다.

이로써 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비율은 5.3%로 치솟게 됐다. 유럽연합(EU)이 회원국들에게 건전성 평가 기준선으로 제시한 3%를 크게 웃도는 수치다. 우리 경제에서 이 수치가 3%를 넘긴 때는 외환위기 파도에 휩싸여 있던 1998년(4.7%)과 1999년(3.5%), 그리고 금융위기 당시였던 2009년(3.6%) 세 개 연도뿐이었다.

아무리 위기 극복을 위해서라지만 재정으로 모든 걸 해결하려 하다 보니 나타난 현상들이다. 이런 상황이 이어지다 보니 돈 무서운 줄 모르는 분위기가 고착화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들 수밖에 없다.

산업화가 본격화된 이후 우리는 몇 차례 경제 위기에 봉착했었다. 앞서 잠시 언급했던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가 그에 해당한다. 심각성이 지금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았던 그 당시에도 지금과 같은 규모와 속도로 재정 투입이 이뤄지지는 않았다. 재정 건전성 악화를 우려한 결과였다.

앞선 두 차례의 위기가 금융불안에서 촉발됐던 것과 달리 지금의 위기는 곧바로 실물경제에서 시작됐다는 차이는 부인할 수 없다. 그 점을 감안하더라도 지금의 재정 운용방식엔 지나친 측면이 있다.

툭하면 선진국 사례를 언급하지만 세계의 발권국이라 할 미국이나 일본, 유로존 국가 등과 우리를 직접 비교하는 것은 애시당초 잘못이다. 국가채무에 잡히지 않는 엄청난 규모의 공기업 부채도 그들 국가와 우리의 수평 비교를 불가능하게 하는 요소다.

문재인 대통령 주재 비상경제회의 모습. [사진 =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 주재 비상경제회의 모습. [사진 = 연합뉴스]

고령화 속도가 유독 빨라 우리의 잠재성장률이 상대적으로 더 크게 위협받고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경제성장이 둔화하면 국가채무를 조금만 늘려도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급속도로 올라가게 돼 있기 때문이다.

슈퍼 본예산에 슈퍼 추경이 거듭되는 것은 최대한 자제돼야 한다. 국제적 신용평가사인 무디스도 지난 4월 우리나라의 신용등급과 등급전망을 기존대로 유지하면서 향후 재정 상태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 있음을 경고한 바 있다.

재정 건전성에 대한 리스크를 안고서라도 기필코 추경을 편성해야 한다면 제대로 돈을 쓰도록 노력해야 한다. 현금 살포성 복지나 알바성 임시 일자리 늘리기에 돈을 쓰기보다 성장 동력을 끌어올림으로써 경제가 속히 정상으로 되돌아오도록 지원하는데 재정을 선별적으로 투입해야 할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규제 몇 개 없애는 것이 돈을 쏟아붓는 것보다 더 효과적이라는 점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정부의 재정 투입 욕구는 21대 국회가 여당 주도로 짜여진 것과 맞물려 더욱 거침없이 분출될 위험성이 있다. 여기에 포퓰리즘까지 가세하면 그 기세는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를 수 있다. 그 부담은 결국 국민들에게 되돌아오고야 만다.

국가와 달리 정권은 유한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어느 정권도 국가를 영원히 책임지지는 않는다. 야당과 국민들이 냉정한 시각을 잃지 않으려 애써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표 필자 편집인 박해옥

저작권자 © 나이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