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년까지 매출 20조원, 전 세계 1만2000개 매장의 '그레이트 푸드 컴퍼니'로 만들어 나갑시다. 이를 통해 일자리 10만개 이상을 창출해 글로벌 시장이 우리나라 청년들의 일터가 되도록 합시다.”

2015년 10월 28일 SPC그룹 창립 70주년 기념식-.

당시 허영인 회장(71)이 제시한 미래 청사진은 장밋빛 일색이었다. 어느덧 만 5년이 가까워지는 2020년 6월 현재 그 청사진은 실현가능한 현실이 돼 가고 있는 것일까?

요즘 SPC그룹 허영인 회장을 둘러싼 몇 가지 일들을 보면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허영인 회장이 누구인가. 마지막 회 시청률이 50.8%를 기록할 정도로 큰 인기였던 2010년 KBS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로 통하던 입지전적 인물이 아니던가.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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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제빵왕 김탁구’가 허영인 회장의 일대기라는 이야기가 나돌면서 ‘파리바게뜨’ ‘배스킨라빈스’로 유명한 SPC그룹은 대중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물론 드라마는 순수 창작물로 허영인 회장과는 직접적 관련이 없었으나 허 회장의 '건강하고 맛있는 빵'을 만들겠다는 신념과 열정은 ‘제빵왕 김탁구’와 무척 닮았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이었다.

허영인 회장이 그동안 걸어온 과정은 ‘제빵왕 김탁구’ 못잖게 드라마틱하다.

그는 부친인 허창성 창업주로부터 샤니를 물려받았다. 장남이 넘겨받은 삼립식품 매출의 10분의 1도 안 되는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였다. 그러나 허 회장은 사업 다각화를 추진하다 1997년 외환위기서 부도나고 이듬해 법정관리에 들어간 삼립식품을 2002년 인수하고 2004년 SPC그룹을 출범시키며 지금까지 제빵업계 1위로 질주 중이다.

하지만 요즘 허영인 회장이 처한 상황은 그리 녹록하지 않아 보인다.

# 광경 하나. 부당내부거래 혐의 포착, 공정위의 날카로운 칼끝

지난 10일 조선비즈의 ‘<[단독] 공정위, SPC그룹 부당내부거래 혐의 포착...SPC "사업효율성 높이기 위한 정상거래">에 따르면 공정거래위원회는 SPC그룹의 부당 내부거래 조사에서 이른바 ‘통행세’ 혐의를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통행세는 거래 과정에 실질적인 역할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계열사를 끼워 수수료를 챙기는 행위를 뜻한다. 공정거래법상 부당지원이다.

SPC그룹은 계열사 간 식자재 구매 과정에 실질적 역할이 없는 SPC삼립을 끼워 넣는 방식으로 통행세를 받아 부당한 내부거래를 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SPC삼립은 허영인 회장 등이 지분 32.89%를 보유하고 있는 총수 일가 지배 회사다.

공정위는 이 건과 별개로 조만간 전원회의를 열어 SPC그룹의 일감 몰아주기 혐의에 대한 제재 여부를 매듭지을 예정이다.

물론 SPC그룹은 자산 5조원 이상의 공시대상기업집단이 아니다. 이 때문에 공정위는 SPC그룹에 총수 일가 등 특수 관계인에 대한 부당지원을 금지하는 공정거래법 23조 1항 불공정행위 금지 조항을 적용해 제재하는 것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공정위는 이미 지난해 4월 현장 조사를 거쳐 그 해 11월 SPC그룹 측에 부당 내부거래가 있었다는 취지의 심사보고서를 발송한 바 있다. 총수 일가 지분이 높거나 간접 보유하고 있는 계열사와의 내부거래를 집중 조사한 결과, 혐의가 어느 정도 확인됐다고 보고 있다. 샤니와 호남샤니 등은 허 회장이 최대 주주로, 내부거래 비중이 100%에 가까운 회사다. 지난해 말 기준 샤니와 호남샤니 내부거래 비중은 각각 99.68%와 99.99%에 달한다.

여기에 통행세 혐의까지 사실이라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앞서 하이트진로그룹과 LS그룹은 비슷한 혐의로 공정위에 의해 고발 조치됐고, 총수 일가가 기소되는 불운을 겪었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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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경 둘. 겉과 속이 다른 차남 허희수 경영 복귀 등 오너 일가의 도덕성 논란

오너 일가의 도덕성 논란도 여전히 시끌시끌하다. 허 회장의 차남인 허희수 전 부사장 이야기다. 그는 2018년 마약 밀수·흡입 혐의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당시 회사 측은 그를 경영에서 영구 배제하겠다는 강경 조치로 여론을 무마시켰다.

하지만 구두선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SPC그룹은 글로벌 식품기업 하인즈와 계약 체결 성과를 허희수 전 부사장 공으로 돌렸고, 지난 3월 허 전 부사장이 신사업과 관련한 회의에 참석하는 모습이 KBS 카메라에 포착돼 놀라움을 전했다.

허영인 회장이 지난 4월 장남 허진수 SPC그룹 부사장에게 SPC삼립 지분 40만 주, 당시 종가 기준 265억원가량을 증여한 것도 뒷말을 낳았다. 현행 증여세법에 따르면 주식 증여세는 증여일 전후 2개월간 종가 평균을 바탕으로 산출되는데 코로나19로 최악 폭락장을 맞았던 당시 주식 증여로 인해 절세 효과를 톡톡히 볼 수 있었던 까닭이다.

# 광경 셋. 기사 거래 파문으로 기업 윤리도 도마 위에

“기업들이 언론을 자신들의 홍보 기구쯤으로 취급하거나 돈으로 통제하려는 전근대적 사고방식에 빠져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이하 민언련)이 지난해 12월 23일 경향신문 ‘기사 거래’ 사태와 관련해 논평을 내면서 지적한 말이다. 그 사건의 전말은 당시 경향신문 한국기자협회 지회가 발표한 사과성명을 보면 자세히 알 수 있다.

성명은 ‘경향신문이 12월 22일 지면에 게재할 예정이던 기사를 해당 기업의 요청으로 제작 과정에서 삭제했으며, 그에 따라 지회는 기자총회를 열었고, 결국 사장과 편집국장, 광고국장이 사퇴하기로 했다’는 취지를 담고 있었다. 해당 기업은 다름 아닌 SPC그룹이다.

SPC그룹은 당시 경향신문 1면과 22면에 중국에서의 상표등록 판결과 관련한 기사가 실릴 예정이란 사실을 미리 인지하고, 5억원 협찬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점은 취재 기자가 사표를 내고, 사장과 편집국장, 광고국장이 사퇴할 정도로 일파만파 파문이 커졌음에도 불구하고 기사 삭제 조건으로 억대 협찬금을 주기로 한 SPC 그룹은 어떤 사과나 입장 표명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또 SPC그룹은 2017년 파리바게뜨 제빵사 불법파견 문제로 논란을 빚은 뒤 협력사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는 데 합의했으나 노조와 사측 갈등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건강하고 맛있는 빵’에 대한 신념과 열정으로 대중들의 큰 공감을 샀던 SPC그룹 허영인 회장의 이미지가 그룹의 부당 내부 거래와 기사 거래, 오너일가의 도덕성 시비 등으로 만신창이가 되고 있는 상황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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