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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옥의 나이스한 세상] 비정규직 제로 사회가 과연 이상사회일까
[박해옥의 나이스한 세상] 비정규직 제로 사회가 과연 이상사회일까
  • 박해옥
  • 승인 2020.07.01 17: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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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평등주의 정책 논리가 큰 암초를 만났다. 이미 교육은 포기했고, 부동산 정책은 중간이라도 가면 좋겠다(조기숙 참여정부 청와대 홍보수석)는 평가가 진보 진영 내부에서 나오고 있을 정도다. 포기했다는 교육과 중간도 못 간다는 뉘앙스의 부동산 정책은 하나같이 결과적 평등 추구의 산물들이다.

‘기회의 평등’ 주장과 달리 사실상 결과의 평등을 중시하는 현 정부의 정책 패러다임은 마침내 ‘인국공(인천국제공항공사) 사태’로 이어졌다. 이번 사태는 기회의 평등과 과정의 공정성을 무시한 채 결과적 평등만을 추구하다가 벌어졌다. 흥분한 다수 청년들이 인국공 사태를 바라보는 시각도 이와 다르지 않은 듯 보인다.

[사진 = 연합뉴스]
[사진 = 연합뉴스]

이번 사태는 특히 ‘비정규직 제로화’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약속을 떠받드는 과정에서 빚어졌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일의 실행을 자극한 쪽이 문재인 대통령이다 보니 문제 해결이 더욱 어려울 것이라는 얘기다.

물론 인국공 사태는 대통령에 대한 과도한 충성심이 낳은 화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비록 ‘말씀’이 있었을지라도 현장 책임자가 보다 냉철하게 합리적 과정을 거쳐 일을 처리했더라면 지금 같은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아 보인다. 정도의 차이는 있었을지언정 공기업 수장들이 권력자의 눈치를 살피는 건 항다반사였다. 그러다 보니 대통령이 각별한 관심을 내비쳤다 싶으면 아예 ‘성은이 망극하여이다’ 하는 식으로 무작정 그 뜻에 호응부터 하고 나서려는 이들도 나오곤 하는 것이다.

공기업 수장 임명 방식이 바뀌지 않는 한 그런 현상은 언제든 재연될 가능성이 있다. 현실적으로 문제 해결의 가장 좋은 방법은 정책 원리의 변경이겠지만 그럴 일은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문재인 정부의 모든 정책에선 확증편향의 분위기마저 느껴지기 때문이다.

인국공이 현행법의 제약을 피하기 위해 1900여명의 보안검색원을 청원경찰로 바꾸어 직고용하려는 것도 그런 기류와 무관치 않다. 결론을 내려놓고 일을 추진하다 보니 다급한 김에 구시대의 유물이 된 청원경찰직 카드를 꺼내든 게 아닌가 싶다. 청원경찰직은 정부 방침상 폐기 대상으로 분류돼 있다. 실제로 한국공항공사는 청원경찰직 폐기 수순을 밟아가고 있다.

문 정부의 확증편향 기류는 경제정책에서 더욱 강하게 감지된다. 크게는 소득주도성장, 작게는 부동산 정책과 비정규직 제로화, 재벌에 대한 규제 강화 등이 그 사례들이다.

하지만 현 정부 경제정책의 근간을 이루는 결과적 평등주의는 절대선이 아니다. 1990년대 초 있었던 소련(蘇聯) 해체와 독일통일은 인류 역사에서 결과적 평등주의의 종언을 고한 사건들이었다. 보수적 경제학자 좌승희씨의 논리를 차용하자면 ‘불평등 압력’이 없는 사회는 결코 번영을 이룰 수 없음을 보여준 역사적 사례들이라 할 수 있다.

굳이 사회학의 기능론적 시각을 소환하지 않더라도 우리 사회는 다양한 구성원들이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유기적 관계를 이어갈 때 건강성과 복원성을 지닌다. 따라서 개인의 능력차와 직무의 난이도 차이가 인정되어야 한다. 당연히 모든 사회 구성원들은 종사상 지위나 직급, 보수 등에서 차이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도 수긍해야 한다. 비정규직은 필요에 의해 분류된 종사상 지위의 하나일 뿐이다. 때론 근무시간의 다과에 의해, 때론 생산성 평가에 의해 비정규직 업무가 따로 분류된다.

이 같은 분류를 차별이라 한다면 큰 오산이다. 결과적 평등주의 원칙대로 하자면 여성과 남성이 모두 군대에 가서 모든 병과를 구분 없이 감당해야 하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동일 조건에서 주차장을 이용해야 한다. 하지만 어느 사회도 그 같은 기계적 평등을 추구하진 않는다. 현대사회의 각종 법률조차 절대적이고 기계적인 평등이 아니라 상대적 평등을 추구한다. 남성에게만 병역 의무를 부과하고 있는 병역법은 그 사례 중 하나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현 정부가 결과의 평등을 추구하는 바람에 망가진 또 다른 분야가 바로 교육이다. 자율형사립고와 특목고를 적폐시하는 각종 정책으로 인해 우리 교육은 이미 하향평준화의 길을 걷고 있는 게 사실이다. 수월성 교육이 등한시되는데 따라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지금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지만 진보 교육감들 사이에서 앞다퉈 제기됐던 국립대 네트워크화 주장도 수월성 교육의 가치를 등한시한데서 비롯됐다.

상대적 평등 이념의 지향점은 기회 또는 과정의 평등이다. 기회나 과정이 평등해야 정의로운 결과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의로운 결과는 필히 행동 주체 간 차이를 수반한다. 땀 흘린 만큼 대가가 차별적으로 나타날 때 비로소 정의가 구현된다는 의미다. 이 원칙이 무시된다면 특권이 판치게 된다. 누군가가 노력 없이 과실만 다른 이들과 동등하게 누리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 그게 바로 특권의식이다.

앞서 말한 ‘불평등 압력’이 사회 발전의 동인이라는 주장은 결국 기회 및 과정의 평등과 결과의 정의를 전제로 한 것이다. 진영을 논하기 이전에 그 의미를 곰곰 되씹어볼 필요가 있다.

만약 결과의 평등을 명시적으로 주장한다면 그건 공산주의 이념과 다를 바 없어진다. 물론 현 정부도 결과의 평등을 공언(公言)하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국공 사태가 주는 메시지에서는 결과의 평등 의지가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그런 느낌은 청년 그룹에게 더욱 강렬하게 전달되고 있는 듯 보인다.

문제는 비정규직 제도 자체를 적폐로 바라보는 시각이다. 하지만 어느 사회든 비정규직이 없는 곳은 없다. 모든 발명이 그렇듯 비정규직제도 결국은 필요의 산물이다. 장래에 보다 큰 뜻을 펼치기 위해, 또는 인생 2라운드를 새롭게 시작하는 과정의 일환으로 비정규직을 선호하는 이들도 분명 존재한다. 그런 비정규직을 모두 적폐시하는 시각부터 바꾸어야 한다.

비정규직 제로 사회는 결코 이상향이 될 수 없다. 그런 사회는 실현 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정상적인 사회라 할 수도 없다. 당사자들이 그 자리를 원한다 해서 청와대 직원 모두를 수석 또는 대통령으로 만들어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