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최저임금 심의가 본선에 돌입했다. 1일 열린 최저임금위원회 4차 전원회의에서 비로소 노사를 대표하는 위원들이 각자의 패를 공개한데 따른 것이다. 이날 회의에서 근로자위원들은 올해(8590원)보다 16.4% 인상된 1만원(월급 환산액 209만원)을, 사용자위원들은 올해 대비 2.1% 인하된 8410원을 각자의 요구안으로 제시했다.

양측의 요구안은 예상됐던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노동계는 6년째 최저임금 1만원대 인상안을 제시해왔고, 경영계는 ‘최소 동결’을 주장해왔다.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이동호 근로자위원이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이동호 근로자위원이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양측의 요구안을 객관적으로 판단하자면 노동계 쪽이 예상보다 적은 금액을 제시했다고 볼 여지가 있다. 그간 경영계가 거의 같은 목소리를 내온데 반해 노동계에서는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다소 엇갈린 인상 수위를 제시해왔다. 한국노총은 국민 눈높이를 강조하며 1만원 이하를 예고했고, 민주노총은 25.4% 인상안(1만770원)을 관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양대 노총 요구안 중 한국노총의 안은 정부안에 보다 근접해 있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도 최저임금이 결정된 2018년 7월 수석·보좌관회의를 통해 최저임금 관련 공약을 달성하기 어렵게 됐다며 사과를 한 바 있다. 2020년까지 1만원을 달성하는 것이 사실상 어렵게 됐음을 일찌감치 시인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문 대통령은 가능한 한 이른 시일 내에 최저임금 1만원을 달성하겠다는 의지를 밝혔었다. 달성 시기를 2020년에서 ‘임기 내’로 전환했다고 해석되는 발언이었다. 이를 토대로 유추하자면 내년도 최저임금 1만원 이하 요구안은 문 대통령의 의중에 보다 근접해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노동계는 양대 노총의 의견을 절충해 1만원 요구안을 도출했다. 노동계 입장을 대변하는 근로자위원들은 1만원 요구안을 제시한 근거로 두 가지를 들었다. 첫째는 1인 가구 생계비 수준에 대한 조사결과였고 둘째는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에 따른 최저임금 인상효과의 감소였다.

산입범위 확대는 2018년 최저임금법이 개정되면서 이뤄졌다. 상여금이나 복리후생비의 상당액이 추가로 최저임금 산정 기준에 포함됨으로써 사용자는 임금 인상 없이도 최저임금을 충족하기가 쉬워졌다. 산입범위 확대는 복리후생비 등이 최저임금 산정에서 제외되다 보니 대기업의 일부 근로자들조차 최저임금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결과가 나옴에 따라 이뤄졌다. 이에 따라 상여금과 복리후생비는 2024년까지 100% 최저임금에 산입되는 수순을 밟게 됐다.

하지만 경영계는 2021년도 최저임금은 최소한 동결돼야 한다는 입장을 이어왔다. 2%대 성장을 달성했던 2018, 2019년과 달리 올해엔 마이너스 성장이 예상되는 만큼 그에 맞춰 최저임금 수준이 결정돼야 한다는 것이 경영계의 주장이다. 코로나19 사태로 기업들이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는 점, 현 정부 출범 이후 최저임금이 너무 가파르게 인상됐다는 점도 그런 주장의 배경이 되고 있다.

최소 동결 주장을 뒷받침해주는 설문조사 결과들도 나왔다. 한국갤럽이 성인 1001명을 대상으로 의견을 물은 결과 동결을 지지하는 응답자가 56%를 차지했다. 인상을 지지하는 의견은 28%, 인하 의견은 11%를 나타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중기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응답자의 52%가 최저임금 동결을 지지했다. 중기 근로자들 사이에서도 동결 의견이 과반을 기록했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이는 과도한 최저임금 인상이 취약계층의 고용불안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경영계 측 주장을 일정 정도 뒷받침하는 결과라 할 수 있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그간 최저임금 심의는 노사가 각자의 요구안을 제시한 뒤 그 폭을 줄여가는 방식으로 진행돼왔다. 따라서 노사 양측이 각자의 요구안을 제시한 이상 실질적 줄다리기는 이제부터 본격화된다고 보아야 한다.

전례로 보아 올해 심의에서도 공익위원들이 중심적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노사 각각의 숫자에 맞춰 9명으로 구성된 공익위원들은 일단 양측의 요구안에 대해 양비론적 시각을 드러냈다. 노동계를 향해서는 과도한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고 비판했고, 경영계엔 마이너스 인상안을 제시한데 대해 비판적 시각을 내비친 것이다.

이를 감안하면 공익위원들은 소폭 인상을 중재안으로 제시할 가능성이 크다. 경영계 요구안이 협상용일 수 있다는 점도 그 가능성을 높여준다. 지난해 진행된 올해분 최저임금 심의 당시에도 경영계는 -4.2% 인상안을 제시했으나 결국 2.9% 인상에 동의했다.

과거 외환위기 때나 금융위기 때도 최저임금이 최소 2%대 인상됐다는 점, 국민정서 상 임금 삭감이 비현실적이라는 점 등도 소폭 인상 가능성을 높이는 요소라 할 수 있다.

노사 양측 위원들은 오는 7일 다시 만나 각자의 수정안을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내년도 최저임금 심의는 이미 법정 시한(지난달 29일)을 넘겼다. 그러나 최저임금 고시 시한이 오는 8월 5일이기 때문에 향후 행정절차를 고려할 때 늦어도 이달 중순까지는 합의안이 마련돼야 한다. 합의안이 마련되면 고용노동부는 이의제기 등의 절차를 거쳐 관보에 확정된 내용의 고시를 게재함으로써 그 절차를 완료한다.

저작권자 © 나이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