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마련한 세법 개정안 내용이 22일 공개됐다. 이날 공개된 개정안 내용은 ‘부자 증세’라는 말로 요약된다. 부자들에게 거둬들이는 세금을 대폭 늘리고, 서민층에 대한 세금 부담을 일부 덜어준다는 점이 그 배경이다. 한쪽으로는 세부담을 늘리고 다른 한쪽으로는 부담을 감면해주기 때문에 증세 효과는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정부 역시 이 점을 강조하며 이번 세제 개편의 목적이 증세에 있지 않다는 점을 강조했다.

부자 증세를 상징하는 대표적 변화는 소득세 최고세율 인상이다. 이번 개편을 통해 정부는 소득세 최고세율을 기존의 42%에서 45%로 높인다. 10억원 초과 과세표준(과표) 구간을 신설해 여기에 해당되는 소득분에 대해서는 45%의 세율을 적용한다는 것이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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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는 과표 기준으로 5억원을 넘는 소득에 대해 최고세율인 42%를 적용하고 있다. 이로 인해 과표가 30억인 소득자의 경우 근로소득이든 종합소득이든 연간 12억2460만원을 세금으로 내왔다. 그러나 10억 이상 소득분인 20억원에 대해서는 새로이 45%의 세율을 적용받기 때문에 세부담이 6000만원 더 늘어난다.

정부 추산에 따르면 2018년 귀속분 기준으로 10억원 넘는 과표를 적용받는 소득자는 1만6000명 정도다. 이중 양도소득을 제외하고 근로소득 및 종합소득만 따로 분류해 추산하면 그 수는 1만1000명으로 줄어든다. 결국 이들 1만1000여명이 소득세율 변경에 따른 부담을 주로 짊어지게 된다는 의미다. 이들 초고소득자가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0.05%다.

과표 기준 양도소득이 10억 이상인 사람도 세부담이 똑같이 커지지만 양도소득은 일회성(양도시 세금 부과)을 지니는 만큼 세부담이 항구적이지 않다. 반면 연간 10억 이상 근로소득을 올리는 이들은 장기적·주기적으로 높은 세율을 감당해야 한다.

소득세 최고세율 45%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도 14번째 순위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우리와 비슷하거나 높은 소득세 최고세율을 적용하는 나라는 주로 복지제도가 잘 정비된 유럽 국가들이다. 비유럽 국가 중 우리보다 소득세 최고세율 상위에 있는 곳은 일본과 이스라엘, 호주 세 나라뿐이다. 미국도 우리보다 소득세 최고세율이 낮다.

정부가 부동산 대책을 내놓는 과정에서 일부 공개됐듯이 주택 양도소득세와 다주택자 및 다주택 법인의 종합부동산세(종부세)도 크게 늘어난다. 이 역시 ‘부자 증세’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앞서 정부는 일반 종부세율을 과표 구간에 따라 0.1~0.3%포인트 올렸고 조정대상지역 2주택자와 3주택 이상 보유자 등에 대해서도 종부세 최고세율을 기존보다 최대 2.8%포인트 높이기로 했다.

주택 양도세의 경우 조정대상지역 다주택자들에게 최대 30%포인트의 추가세율을 붙이기로 했다. 기본세율이 42%인 점을 감안하면 최고세율이 72%까지 올라가도록 조치한 것이다.

정부는 부인했지만, 이번 소득세법 개정안을 두고 초고소득자들이 문재인 대통령 지시에 따른 금융소득 개편의 유탄을 맞았다는 분석도 나왔다. 정부는 당초 주식양도소득세 기본공제 기준을 2000만원으로 설정했다가 이를 5000만원으로 상향조정했다. 증권거래세 인하 시점도 당초보다 1년 앞당겨 내년으로 수정했다. 개미들의 항의가 빗발치자 문 대통령이 개인 투자자들의 의욕을 꺾지 말라고 지시한 것이 그 배경이었다.

[그래픽 = 기획재정부 제공]
[그래픽 = 기획재정부 제공]

이로써 세수 증가폭은 정부가 처음 예상했던 것보다 줄어들게 됐다. 그 탓에 이번 세제 개편으로 초고소득자들의 세금이 크게 늘어남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늘어나는 세수는 별로 커지지 않게 됐다. 정부는 세법 개정으로 증가할 세수의 순증 규모는 676억원 정도라고 보고 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소득세 최고세율 인상 등으로 초고소득층과 대기업이 연간 1조8700억원 정도를 더 부담하리라 예상했다. 반면 서민이나 중산층, 중소기업은 1조7700억원 정도의 세부담 감면 혜택을 받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를 토대로 정부는 이번 세제 개편 목적이 증세가 아니라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사회적 연대’ 및 소득재분배 기능 강화에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를 두고 비판의 목소리도 적지 않게 나오고 있다. 극소수 초고소득자를 타깃 삼아 그렇지 않아도 높은 최고세율을 더 올려봤자 세수 증대 효과가 미미하다는 게 기본 이유다. 그러다 보니 정부 주장과 달리 소득재분배 효과도 거의 없다는 의미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렇게 하기보다는 중산층 등을 아울러 고르게 세부담을 늘리는 것이 세제 개편 본래의 목적에 더 잘 부합할 것이란 의견을 내놓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볼 때 이번 세제 개편에도 정치적 의도가 숨어 있다고 볼 여지가 있다. 세제 개편의 효과를 따지기 이전에 정서적으로 소수의 고소득자에 대한 부담 강화를 반대할 서민·중산층은 거의 없을 것이란 계산이 사전에 작용했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는 우리나라 소득자들 중 세금감면 혜택을 받는 이들의 비중이 선진국들에 비해서도 낮지 않다는 점과 연결돼 있다.

정부는 이번 세법 개정안을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9월 정기국회에 제출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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