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은행권 신용대출 금리가 주택담보대출(주담대) 금리보다 낮은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전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 특이한 현상이어서 은행원들조차도 희한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신용대출은 안전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은행으로서는 리스크 부담을 금리에 반영하는 게 일반적이다. 반면 주담대의 경우 은행이 돈을 떼일 염려가 거의 없는 만큼 금리를 낮게 책정한다.

하지만 요즘 들어 이 같은 상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어 주목된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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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은행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의 이달 14일 기준 신용대출 금리는 연 1.74~3.76% 수준이다. 같은 은행에서도 신용대출 금리는 대출금액과 기간, 고객의 신용등급 등에 따라 달라진다.

흥미로운 것은 주담대 금리가 이보다 더 높다는 사실이다. 같은 시점의 5대 시중은행 주담대 금리는 연 2.03~4.27%로 집계됐다. 하단과 상단 금리 모두가 신용대출 금리보다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앞서 기술한 신용대출 금리는 전세대출 금리(연 1.55~3.81%)와 비슷하다. 상단 금리의 경우엔 오히려 신용대출 금리가 더 낮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전에도 신용대출 금리가 주담대 금리보다 낮은 케이스가 종종 있었다. 그러나 그게 일반적 현상은 아니었다. 신용 1등급의 고소득자 등 극소수에게서나 일시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현상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신용 1~2등급의 은행 고객 상당수가 주담대보다 낮은 금리로 신용대출을 이용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이 나타난 데는 복합적인 이유가 작용했다. 첫 번째 이유는 신용대출이 한국은행 기준금리 인하 효과를 더 빠르게 반영했다는 점이다. 신용대출은 주담대에 비해 기간이 짧아 단기 채권(금융채 6개월물)의 시장금리를 기준으로 삼는다. 그런데 최근 들어 단기채권의 금리 하락폭이 금융채 5년물보다 상대적으로 컸다. 금융채 5년물의 시장금리는 주담대 금리의 기준으로 활용된다.

주담대가 담보 설정 비용 등을 금리에 반영한다는 점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담보대출 계약을 할 때 담보 설정 비용은 은행이 부담한다. 여기에 드는 비용을 감안하다 보니 주담대 금리 책정시 조달금리에 붙이는 순이자마진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시중은행이 한국은행으로부터 자금을 조달할 때 적용받는 금리(0.5%)에 순이자마진 1.5%를 붇여 신용대출을 해준다면 그 금리는 연 2.0%가 된다.

하지만 주담대의 경우 담보설정 비용이 추가되므로 이를 금리에 반영해야 할 필요성이 생긴다. 자금 조달 금리에 순이자마진이 붙고, 여기에 담보설정 비용을 감안해 추가로 일정 수준의 금리가 더해진다는 의미다.

새로 생긴 인터넷 전문은행들이 공격적 마케팅을 펼친 것도 신용대출 금리 인하를 재촉했다. 그 바람에 주담대와 신용대출 금리의 역전 현상이 촉발됐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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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대출 금리가 크게 낮아지자 이를 활용해 주택 구입에 나서려는 이들도 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움직임은 정부가 부동산 시장 안정화 정책의 일환으로 주택자금 대출을 억제하고 있는 것과 연관이 있다.

신용대출을 전세 자금으로 이용하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분석된다. 이 역시 정부가 전세대출 규제를 강화한 것과 맞물려 있다. 결국 정부가 주택자금 및 전세자금 대출을 강하게 규제한 것이 신용대출 이용을 자극하는 결과를 낳고 있는 셈이다.

규제가 덜한 신용대출을 활용해 주식에 투자하는 이들도 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주식시장이 강세를 보이자 저금리로 은행돈을 빌린 뒤 주식에 투자해 큰돈을 벌려는 심리가 확산되고 있어서이다. 은행에서 돈을 빌릴 땐 용도를 기재해야 하지만 사실상 이는 요식행위에 불과하다. 은행으로서는 고객이 돈을 빌려간 뒤 그 돈이 어디에 쓰이는지 확인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신용대출이 은행 대출의 주가 되면 각종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우선은 은행권 신용대출 기회가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 탓에 금융 서비스에서 역차별이 나타날 수 있다. 자금 사정이 어려운 사람일수록 낮은 신용등급으로 인해 자금조달 비용이 커진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될 수 있다.

국가적으로도 심각한 문제가 야기될 가능성이 커진다. 가계 부도로 은행 대출금을 회수하지 못하는 일이 많아질 경우 금융권 전체가 혼란에 빠질 수 있는 탓이다. 최악의 경우 국민 혈세로 조성된 공적자금이 금융권에 투입되는 상황이 초래될 수도 있다.

따라서 정부가 지금 같은 상황이 지속되는 것을 마냥 방치하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시중은행들 역시 금융안전성 강화를 위해 신용대출 금리를 서서히 올릴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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