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행의 허술한 여신관리 실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최근 윤두현 국민의힘(미래통합당의 새 이름) 의원실이 기업은행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의해서였다.

해당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까지 서울의 한 기업은행 지점에서 차장급 직원으로 근무한 A씨는 2016년 3월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자신의 가족에게 29건에 이르는 부동산 담보대출을 해주었다. 문제의 대출은 A씨의 어머니와 부인 등 가족이 대표이사로 등재된 법인이나 가족 명의의 개인사업자를 상대로 이뤄졌다. 사실상 직원 자신이 소속 은행으로부터 거액의 대출을 받은 셈이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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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에게 전달된 대출 총액은 75억7000만원이었다. 이중 법인 5곳에 주어진 대출금액만 26건, 73억3000만원에 달했다.

이렇게 흘러간 대출금은 경기도 화성 및 부천 일대의 아파트와 오피스텔, 연립주택 등 29채의 부동산을 구입하는데 쓰였다. A씨는 이들 부동산에 투자함으로써 수십억원의 시세 차익을 얻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같은 행위가 발각되자 기업은행은 지난달 말 A씨를 면직처리했다. 이해상충 행위를 했다는 것이 그 이유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기업은행 측은 문제의 대출금 회수에 나서는 한편 A씨에 대한 형사고발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대출을 승인해준 지점장 등 결재라인에 대한 인사조치도 취해졌다.

하지만 절차상 문제를 들어 A씨를 형사처벌하는 것이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A씨의 행위가 불법이기보다 편법에 가깝다고 볼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문제가 된 대출은 지점장 승인 절차까지 거쳐 이뤄졌다. 만약 형사처벌이 불가능하다면 대출로 인해 얻은 수익금을 회수하는 일은 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씨에 대한 형사처벌과 대출금 회수, 이익금 환수 등은 법적 판단에 맡길 수밖에 없게 됐다.

현재 기업은행 측은 대출금 회수 문제를 고민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한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대출금 회수가 가능한지 검토하는 단계”라고 말했다.

하지만 대출금 회수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원리금 상환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앞으로도 그렇게 될지 여부다. 이에 대한 질문에 기업은행 측은 명백한 답을 내놓지 않았다. 개인 금융거래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만, A씨를 업무상 배임 혐의로 고발하는 문제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일반적으로 업무상 배임죄는 회사 측에 손실이 발생했을 때 성립된다. 이 점을 감안하면 기업은행이 A씨의 이익 추구 행위로 인해 손실을 입었을 가능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보다 중요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국책은행인 기업은행의 여신관리 시스템이 그만큼 허술했다는 사실이다. 4년여에 걸쳐 그렇게 자주, 거액의 돈이 행원의 이해관계인에게 대출되는 동안 은행 차원에서 눈치조차 채지 못했다는 게 문제라는 것이다.

더구나 일반 시중은행도 아니고 공적 책임이 한층 더 강조되는 국책은행에서 이런 사건이 벌어졌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크게 지탄받아 마땅하다. 문제는 엉성한 여신관리 시스템과 내부 기강을 이제라도 바로세울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이는 요란한 낙하산 논란 속에 올해 초 어렵사리 취임한 윤종원 행장의 리더십과도 연결된 문제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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