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뉴딜사업에 들어갈 재원 마련을 위해 20조원 규모의 국민참여 펀드를 만들기로 했다. 이른 바 ‘정책형 뉴딜펀드’다. 향후 5년에 걸쳐 조성될 20조원 규모의 정책형 뉴딜펀드는 정책금융 100조원, 민간금융 70조원에 더해져 한국판 뉴딜사업에 투입된다.

정부는 지난 3일 한국판 뉴딜 전략회의를 열고 이 같은 방안을 확정 발표했다. 이 중에서도 특히 눈길을 끈 것이 정책형 뉴딜펀드였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정책형 뉴딜펀드는 정부자금과 정책금융기관 자금을 합친 7조원으로 모(母)펀드를 만들고, 자(子)펀드를 통해 민간자금 13조원을 끌어모으는 방법으로 조성된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왼쪽)과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뉴딜금융 지원방안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은성수 금융위원장(왼쪽)과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뉴딜금융 지원방안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그런 다음 모펀드는 상대적으로 위험성이 큰 후순위 채권 등에 대한 투자를 맡고, 자펀드는 비교적 안전한 선순위 투자를 맡는다. 이로써 정책형 뉴딜펀드에서는 도합 7조원 이상의 손실이 발생하지 않는 한 민간 투자자들이 투자 원금을 까먹을 일은 없게 됐다. 투자 손실이 후순위 투자자에게 우선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처럼 자펀드에 대한 안전성을 상대적으로 높게 한 것은 민간 자본 유입을 원활히 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뉴딜 펀드 구상을 발표한 당일 정부는 이 점을 유독 강조했다. 이를 근거로 정책형 뉴딜펀드의 경우 손실을 입게 되더라도 -35%까지는 정부가 그 손실을 떠맡아주게 된다는 것이 정부 측의 주된 홍보 포인트였다.

그러자 곳곳에서 비판 의견이 돌출했다. 그러지 않아도 뉴딜펀드를 두고는 역기능에 대한 우려가 적지 않았다. 그런 마당에 정부 스스로 사실상 투자원금 보장까지 해준다고 강조하자 이번엔 자본시장법 위반 논란이 제기됐다. 펀드는 본디 예금 등에 비해 위험성이 큰 대신 상대적 고수익이 보장되는 투자 대상이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라는 말대로 펀드 투자엔 위험이 따르기 마련이다. 투자자들도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펀드 투자를 유인하기 위해 사실상의 원금 보장을 약속했으니 비판이 제기되는 건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정부의 그 같은 행태는 펀드 투자에 무심한 대다수 국민들의 반발을 살 여지를 안고 있다. 펀드 투자자들의 손실을 정부가 메워준다는 것은 곧 손실 보전에 국민세금이 투입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판 여론이 커지자 정부는 부랴부랴 해명에 나섰다. 정부가 손실 보전을 위해 떠맡을 위험부담의 비율은 기본 10% 수준이라는 것이었다. 이런 내용이 이미 배포된 보도자료에 나와 있다는 설명도 곁들여졌다.

하지만 보도자료에도 정부의 뒤늦은 해명을 뒷받침하기엔 어딘가 석연찮은 구석이 있다. 보도자료엔 공공부문의 자펀드 매칭비율이 평균 35%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정부의 위험부담 수준을 10%로 하되 세부사항은 자펀드의 성격이나 정책적 중요성 등을 고려해 결정한다고 설명돼 있다. 보기에 따라 10%를 기본으로 하되 최대 35%까지 손실 보장이 가능하다는 것으로 읽힐 여지가 있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더구나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기자들에게 브리핑을 하면서 “자펀드 상황에 따라 평균 35%까지는 손실이 나도 정부가 흡수하는 구조”라고 밝혔다. 이어 뉴딜사업이 대개 공공기관 상대인 만큼 큰 손실은 없을 것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도 거들고 나섰다. 그는 “정부가 사실상 원금을 보장하는 것과 유사한 효과를 갖는다”고 강조했다. 이는 앞서 나온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과도 맥을 같이한다. 문 대통령은 손실위험 분담과 세제 혜택을 강조하면서 “안정적 수익을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상의 발언들을 종합하면 사실상 정부가 원금보장을 약속하며 마음놓고 펀드 상품을 구매하라는 메시지를 전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자본시장법 위반 시비를 피하기 위해 단정적 표현만 삼가고 있는 듯 여겨진다.

이런 식이라면, 정책형 뉴딜펀드는 자금을 끌어모으기 쉬울지 모르나 두고두고 논란을 낳을 것으로 보인다. 개개인의 판단에 따라 이뤄지는 펀드 투자임에도 불구하고 거기서 손실이 발생할 경우 그와 무관한 대다수 국민들이 세금으로 손실을 메워주는 모양새가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이럴 바엔 비난을 감수할망정 국채 발행을 통해 뉴딜정책 추진 자금을 마련하는 것이 보다 솔직한 방식이 될 수 있다. 개개인의 펀드 투자는 어디까지나 시장원리와 각자의 판단에 의해 이뤄지는 경제활동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익이 나면 투자자의 몫이고, 손실이 날 경우 국민 모두가 십시일반으로 메워야 한다면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일이다.

정책형 뉴딜펀드 자체에 대한 비판 여론이 만만찮다는 것도 문제다. 비록 경제 활성화 정책의 일환이라고는 하지만 정부가 특정 기업들의 사업을 지원할 목적으로 펀드를 조성하는 것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자칫 관치금융, 관치경제 시비가 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굳이 정부가 자금을 풀고자 한다면 그건 국가 재정이어야 한다. 나아가 그 자금은 투자 환경을 조성하고 각종 규제를 해소해줌으로써 시중 자금이 자연스레 산업투자로 이어지도록 유도하는데 쓰여야 한다. 그게 정부의 기본책무이자 경제 활성화를 촉진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다.

대표 필자 편집인 박해옥

저작권자 © 나이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