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감백신 상온노출 사고로 나라 전체가 시끄러워졌다. 이 일로 정부의 예방접종 일정에도 차질이 빚어졌다. 이번 사고는 전례가 없는데다 하필 국민건강과 직결된 것이어서 순식간에 전국민적 관심사로 부상했다.

사고는 무료접종 개시 하루 전인 지난 21일 물류업체가 백신을 배송하는 과정에서 일어났다. 큰 트럭에서 작은 트럭으로 독감백신을 옮길 때 냉장차의 문을 한동안 열어둔 채 작업을 했고, 백신 상자를 땅바닥에 쌓아두기도 했다는 것이다. 백신을 차에서 부릴 때는 지열에 데워지는 것을 막기 위해 팔레트를 깔아야 한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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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및 제약 전문가들에 따르면 독감백신은 제조 후 유통 전과정에 걸쳐 빛이 차단된 가운데 섭씨 2~8도를 유지해야 한다. 특히 온도 유지가 중요하기에 유통과정에서 이른바 ‘콜드 체인’ 원칙이 지켜져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번에 유통의 말단 과정에서 사고가 터지고 말았다. 정부와 공급계약을 맺은 의약품 유통업체가 물류회사에 배송을 맡겼고, 이후 재하청이 이뤄지면서 막판에 콜드 체인 원칙이 일부 무너진 것이다. 관리·감독의 눈길이 말단 과정에까지 미치지 못한 탓이다.

생산된 백신이 아이스박스가 아닌 종이박스에 포장돼 배송됐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문제될 게 없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공급사는 물론 보건 당국에서도 종이상자 포장 자체는 문제가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종이박스에 넣어 냉장용 캐리어로 배송한다면 콜드 체인 원칙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유통업체 측은 오히려 백신을 종이박스로 포장한 뒤 냉장용 캐리어로 운반하는 것이 보다 안전한 방법이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문제가 된 백신은 무료접종 첫날인 22일부터 13~18세 청소년에게 접종하려던 500만 도스(1회 접종분)다. 이중 일부가 일선 병·의원으로 배송되는 과정에서 상온에 노출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따라 보건 당국은 접종 일정을 급히 변경해 2주 연기하면서 조사에 돌입했다.

조사는 크게 두 가지로 진행된다. 그중 하나는 얼마나 많은 곳에서, 얼마만한 분량이, 어느 정도의 시간 동안 노출됐는지를 살펴보는 일이다. 독감백신 유통과정 전반에 대한 조사가 이뤄진다는 의미다.

다음 하나는 상온노출된 백신의 효용성과 안전성을 검증하는 일이다. 독감백신은 콜드 체인 원칙이 지켜지지 않을 경우 주성분인 단백질 함량이 떨어져 ‘물백신’으로 전락할 수 있다. 효용 유무 외에 또 하나 중요한 점이 안전성이다. 상온에 노출돼 변질된 독감백신이 사람 몸에 들어갔을 때 이상 작용을 일으키지 않을지를 살펴봐야 한다.

보건 당국은 조사를 통해 이상의 내용들을 모두 살펴보려면 2주가 소요될 것이라고 밝혔다. 나성웅 질병관리청 차장은 23일 국회에 출석한 자리에서 문제의 백신에 대해 유통과정은 물론 12가지의 품질조사를 진행하겠다고 설명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사진 = 연합뉴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사진 = 연합뉴스]

발표될 조사 결과 중 가장 큰 관심을 끄는 것은 문제의 독감백신들이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상온에 노출됐는가 하는 점이다. 유통업체 측은 이번 사고의 책임이 전적으로 자사에 있다고 시인하면서도 순간적인 상온 노출은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백신 제조사들도 이런 입장에 동조하고 있다.

백신 제조사들에 의하면 독감백신은 살아있는 바이러스를 쓰는 생백신과 달리 사(死)백신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온도에 덜 민감하다고 말한다. 더구나 이번에 무료접종 대상으로 선정된 4가 백신은 3가에 비해 보관상의 안전성이 더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조사들이 백신을 만들 때는 짧은 시간이나마 상온노출이 이뤄질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 결과 한 달 이상 상온에 노출되어도 백신 효능에 큰 변화가 없었다는 실험 결과까지 거론되고 있다.

다만, 제조사의 자체실험 결과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도 좋은가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로 남는다. 실제 유통 과정에서는 실험 때 상정되지 않은 다양한 변수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조사를 맡은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문제가 된 독감백신의 단백질 함량 외에 안전성 검증을 위한 다앙한 항목의 조사를 실시키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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