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우리국민 참살 및 시신훼손 사건을 둘러싼 논쟁이 짜증을 돋우는 요즘이다. 특히 가증스러운 쪽은 억지논리를 들이대며 사실상 북한 무죄론을 펼치려는 이들이다. 이들은 북한군에 의해 사살당한 해양수산부 공무원이 월북했다는 것을 확정된 사실인 양 강조한다. 피해자에게 월북 프레임을 씌워 북한 측의 만행에 면죄부를 주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억지 논리를 개발 또는 확산시키는 데는 정치인뿐 아니라 학자들도 가세하고 있다. 주된 논거는 우리 국민을 참살한 북한군이 그들의 규정에 의해 움직였다는 것이다. 나아가 북한에서 코로나19 방역 강화조치가 시행되고 있다는 사실까지 보조 논거로 동원됐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TV 제공/연합뉴스]

하다하다 박근혜 대통령 재임 시절 우리 군이 월북하려던 민간인을 사살한 일까지 들먹이기에 이르렀다. 그땐 잠잠했는데 이번 일엔 왜들 이렇게 난리를 치는지 모르겠다는 투다. 억지도 이 정도면 상대를 질리게 할 수준의 억지다. 대한민국 및 국제사회에 대한 반인륜적 도발과 자국 규범에 의한 국토방위 행위를 비교하는 것은 궤변이다.

북한은 우리 헌법상으론 국가가 아니지만 현실 속에선 유엔이나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등으로부터 엄연히 국가 대접을 받는다. 밖을 향한 도발은 국제법의 적용을 받아야 한다는 의미다.

북한을 옹호하려는 억지논리는 비약을 거듭하다 결국은 북한군의 만행이 자신들의 규정에 의한 것인 만큼 크게 문제될 게 없다는 쪽으로 귀결된다. 대놓고 주장하진 않지만 박근혜 정부 시절의 사살 행위가 무죄이듯 이번 건도 그렇지 않은가라는 반문 의지가 느껴지는 논법이다.

난무하는 궤변을 보고 있자면 홀로코스트 전범으로 기소돼 처형된 ‘악의 화신’ 아돌프 아이히만 이야기가 떠오른다. 홀로코스트 실무 책임자였던 그는 2차대전 종전 직후 잠적했다가 십 수 년 만에 체포됐고 결국 전범 재판을 받았다. 그리곤 교수형에 처해졌다.

북한 무죄론 쪽으로 기운 이들의 대롱눈이 시각으로 보자면 아이히만은 무죄다. 그는 그저 나치 치하에서 직업 군인으로서 충실한 삶을 산 인물이다. 나치 독일의 법대로 행동했고, 유대인 학살 행위도 그에겐 그저 합법적 일상의 일부였을 뿐이다. 실제로 그는 이스라엘 정보기관원에 의해 체포된 뒤 정신감정 과정을 거쳤지만 지극히 정상이란 판정을 받았다. 그는 유대인 혐오자도 열렬한 나치즘 신봉자도 아니었다.

하지만 국제사회는 아이히만 처형을 당연시했다. 처형에 반대하거나 재판부를 비난하지 않았다. 인륜에 반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강력한 응징이 이뤄져야 한다는 공감대가 국제사회에 형성돼 있어서였다.

북한 무죄론의 논거대로라면 과거 일제의 만행도, 국제적 테러단체 이슬람국가(IS)의 각종 민간인 학살도 무죄로 취급돼야 한다. 이런 논리를 따라가다 보면 인류 전체가 자가당착의 덫에 빠지게 된다.

북한의 만행을 둘러싼 논쟁이 이어지는 과정에서는 우리 국방부나 유족 측의 주장보다 북한 쪽 주장을 더 믿으려는 한심한 기류까지 나타나고 있다. 결론을 미리 정해놓고 논리를 펴는 과정에서 억지가 억지를 낳다 보니 나타나는 기현상이 아닌가 싶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이번 사건과 관련해 가장 많은 정보를 갖고 있는 국방부조차 섣불리 단정하지 않은 ‘월북’을 해양경찰이 서둘러 기정사실화한 것도 기이하긴 마찬가지다. 무엇이 급해 그리도 서둘러 월북으로 단정하는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권력의 그늘 밑에 있는 해경이나 권력 추종세력인 정치인들이야 그렇다고 치자. 가장 밉살스러운 쪽은 앞 다퉈 억지논리를 개발해 제시하는 학자들이다. 특히 국제법 전문가를 자처하면서도 북한군의 만행을 그들 나름의 내부 규정에 의한 행위로 몰아가려는 모순된 주장을 펴는 것을 보고 있자면 그냥 말문이 막힌다.

궤변과 요설이 판치는 사회는 건강성을 유지할 수 없다. 궤변과 요설은 건전한 상식을 훼손하고 정의에 대한 개념조차 왜곡시킨다. 그러다가 종국엔 사회전체에 신뢰 상실이란 화를 남기게 된다. 이는 곧 현대사회에서 경제적 자본 못지않게 중시되는 사회적 자본을 고갈시키는 결과로 이어진다. 달리 말하면 사회적 합의로 만들어진 온갖 규범이 무력화되면서 기본질서가 무너지게 된다는 뜻이다.

진영논리도 좋고 이념도 좋지만 학자들만큼은 무조건 권력을 편드는 억지논리 개발에 나서지 말아야 한다. 더구나 북한의 반인륜 행위의 죄값을 희석시키려는 언행은 국익을 해치는 부역에 해당한다. 또 하나 지적하고 싶은 건 그게 바로 어용이자 곡학아세라는 점이다.

편집인

저작권자 © 나이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