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타이어가(家)의 경영권 분쟁이 본격화되는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 막내인 조현범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사장이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의 지배권을 강화하며 승계구도를 굳히려는 기미가 보이자 형과 누나가 반기를 든 것이다.

분쟁의 단초는 지난 6월 조현범 사장이 시간 외 대량매매를 통해 아버지 조양래 회장으로부터 그룹 지분 23.59%를 물려받은 일이었다. 이 일이 있기 전까지 조씨 형제들의 지분은 장남 조현식 그룹 부회장 19.32%, 조현범 사장 19.31%, 차녀 조희원씨 10.82%, 장녀 조희경 한국타이어나눔재단 이사장 0.83% 순이었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러나 조현범 사장이 그룹 지분율을 갑자기 42.90%로 늘리자 분위기가 묘해졌다. 이때부터 조현범 사장이 형을 제치고 그룹의 후계자로 사실상 낙점된 것이란 시각이 대두된 탓이다.

아니나 다를까 조현범 사장의 지분율 확대 한 달여 만에 갈등 기미가 나타났다. 가장 먼저 반발 움직임을 보인 이는 큰 누나인 조희경 이사장이었다. 지난 7월 조 이사장이 서울가정법원에 고령의 조 회장(82)에 대한 한정후견 개시 심판을 청구했던 것이다.

이는 곧 조 회장이 건강상 이상이 없는 상태에서 조현범 사장에게 지분을 양도했는지를 따져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한정후견제는 노령 등의 문제로 인해 판단능력이 결여된 성인에 대해 후견인을 붙여줌으로써 재산관리 등을 대신하도록 해주는 제도다.

조 이사장의 한정후견 개시 심판 청구 이유는 명료했다. 아버지가 평소 보유 주식을 공익재단 등을 통해 사회에 환원할 뜻을 밝혀왔는데 그와는 너무 다른 결정이 내려졌다는 게 그것이었다.

조현범 사장. [사진 = 연합뉴스]
조현범 사장. [사진 = 연합뉴스]

이렇게 촉발된 형제 간 갈등은 장남의 참전(參戰)으로 더욱 큰 관심을 끌게 됐다. 재계에 따르면 조현식 부회장은 5일 서울가정법원에 아버지 조 회장에 대한 성년후견인 신청과 관련해 참가인 자격으로 의견서를 제출했다. 후견 관련 심판 과정에 적극 가담할 뜻을 밝힌 셈이다.

한정후견 심판에서 참가인은 청구인과 같은 자격을 갖게 된다. 이를 암시하듯 조 부회장은 지난 8월 발표한 입장문을 통해 “성년후견 심판 절차에 가족의 일원으로 참여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조현범 사장 역시 누나와 형의 반격에 적극 대응할 의지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해서는 조 사장도 지난달 말 서울가정법원에 의견서를 낸 것으로 전해졌다. 내용이 공개되진 않았지만 아버지에 대한 후견인 지정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전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에 한정후견 심판에 장남이 적극 가세함에 따라 한국타이어가의 경영권을 둘러싼 형제 간 갈등은 한층 격렬해질 것으로 보인다.

한편 법원은 정확한 상황 판단을 위해 이날 가사조사 명령을 내렸다. 이는 조 회장에게 진정 성년 후견이 필요한지를 살펴보기 위한 과정의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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