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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ial-우리 생각엔…] 지금 필요한 건 재정준칙 아닌 재정건전화법
[Editorial-우리 생각엔…] 지금 필요한 건 재정준칙 아닌 재정건전화법
  • 박해옥
  • 승인 2020.10.09 15: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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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재정준칙을 도입하겠다고 밝히자 정치권이 비판의 목소리를 쏟아내고 있다. 여야가 따로 없다. 단, 그 이유는 제각각이다. 제1 야당인 국민의힘은 준칙 내용이 너무 느슨한데다 적용 시점마저 현 정권 임기 이후인 2025년으로 잡은 점을 문제삼았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정부가 스스로 재정 운용폭을 좁히는 게 말이 되느냐고 반발한다. 느슨하게나마 돈줄을 죄는 것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지난 5일 도입 방침을 밝힌 재정준칙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을 60% 이하로 유지하거나 통합재정수지 적자 규모를 GDP 대비 3% 이하 선에서 관리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기획재정부 장관이 업무보고를 하고 있는 모습. [사진 = 연합뉴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회의에서 여야 위원들이 기획재정부로부터 업무보고를 받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재정준칙 내용은 공개되자마자 경제 전문가들로부터 숱한 비판을 받았다. 실제로 재정준칙안의 내용은 많은 문제를 안고 있었다. 산식이 복잡해 한마디로 설명하긴 어렵지만, 국가채무비율 60%와 통합재정수지 3% 기준도 ‘AND’ 관계가 아니다. 경우에 따라 둘 중 하나가 기준선을 넘어도 되는 구도로 짜여졌다.

그간 정부가 금과옥조로 삼아온 관리재정수지 대신 통합재정수지를 전면에 내세운 것도 문제로 지적됐다. 정부의 진정한 살림 솜씨를 보여주는 관리재정수지 운용 실태를 부각시키지 않으려는 속내가 엿보이는 행태다.

가장 큰 문제는 재정준칙 내용이 너무 느슨하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적용 시점마저 2025년으로 정함으로써 사실상 현 정부에 마음껏 재정을 운용하도록 곳간 문을 활짝 열어젖혀 주었다고 볼 여지가 있다. 당장 제1 야당에서 거센 반발이 나오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이것 말고도 정부의 재정준칙안은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그중 하나가 준칙의 세부 수치를 법률이 아닌 시행령으로 정하도록 한 것이다. 이는 국회 논의나 의결 없이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그 수치를 손질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재정준칙 도입 근거를 국가재정법에 두고 있는 만큼 국회가 국가재정법 개정에 동의해야 하지만, 그 이후엔 정부 마음대로 국가채무 비율의 기준 등을 바꾸겠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문재인 대통령은 야당 대표 시절 국가채무 비율 40%를 강조하며 박근혜 당시 대통령을 공격한 바 있다. 그 뜻을 받들어 문재인 정부 1기 경제사령탑인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도 재임시 국가채무비율 40%선 고수 의지를 밝혔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취임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이 기준은 힘없이 무너졌다. 적극적인 증세 정책을 펼쳐왔음에도 불구하고 거듭되는 슈퍼 본예산에 추가경정예산이 줄줄이 편성된 것과 관련이 깊다. 문제는 진보정권의 큰 정부 지향성과 상황 논리를 감안하더라도 국가채무 비율이 너무 빠르게 올라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마당에 정부가 재정준칙을 앞세워 국가채무 비율의 마지노선을 60%로 대폭 후퇴시키려 하니 사방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지금에 와서는 문재인 대통령부터가 입장을 바꿔 “40%의 근거가 뭐냐”고 따지고 있지만 이 기준은 오랜 세월 경제관련 국내외 기관이나 경제전문가들의 논의를 거쳐 도출됐다. 여권에선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들의 예를 거론하지만, 그들은 애시당초 우리의 비교 대상이 아니다.

우선 미국이나 유로존의 선진국, 일본 등은 기축통화국이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기축통화 발권 능력으로 인해 최소한 국가부도 사태에 처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그들 국가를 비교대상에 놓는 것부터가 잘못이다. 앞서 거론한 선진국들이 우리와 달리 제각각 엄청난 해외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도 무시해선 안 되는 요소다. 누누이 거론돼왔지만 우리의 경우 공기업이 국가경제의 많은 부분을 담당하고 있고, 그들이 안고 있는 부채가 천문학적 규모라는 점도 간과해선 안 된다. 공기업 부채는 국가채무로 잡히진 않지만 스스로 해결하지 못할 경우 결국은 국가 재정으로 해결해야 할 짐이다.

최근 국제신용평가기관 피치가 지적했듯이 우리나라의 빠른 인구 고령화도 심각한 문제로 다가오고 있다. 우리사회가 세금 낼 사람은 줄어드는데 나랏돈을 쓸 사람은 많아지는 구조로 급변해가고 있으니 재정을 아껴 써야 한다는 얘기다. 피치의 지적대로 우리에겐 숙명 같은 한반도 리스크가 있다는 점, 경제성장이 둔화 추세를 보이고 있는 점 등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최근 국회의 기획재정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이광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올해 1~4차 추가경정예산으로 64조원이 편성됐는데 이를 만원권 지폐로 쌓으면 에베레스트 80배 높이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산더미 같은 돈을 마련하기 위해 국민의 피와 땀을 모았으니 알뜰히 써야 한다는 취지에서 한 발언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쌓여가는 국가채무는 우리와 우리의 후손들이 허리띠를 졸라매가며 차근차근 갚아나가야 할 빚이다. 나름 필요하다고 판단해 나랏돈을 쓰겠지만 대통령이나 정권은 국가채무를 갚아주지 않는다. 그러니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정부 의도대로 주무를 수 있는 재정준칙이 아니라 재정건전화법이다. 이 법의 제정을 다시 한 번 촉구한다.

대표 필자 편집인 박해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