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 정책자금 지원 시스템의 난맥상이 그대로 드러났다. 국책은행의 정책자금이 옥석을 가리지 않은 채 아무 기업에나 마구 지원되고 있음이 확인된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더불어민주당 박광온 의원실이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제출받은 하도급법 위반 현황과 국책 금융기관들의 정책자금 지원 실태를 분석함으로써 밝혀졌다. 박 의원실 조사 결과 2016년 이후 하도급법 위반 사실을 적발당한 업체 중에서도 439곳이 정책금융기관들로부터 2조8322억원의 자금을 지원받았다.

더불어민주당 박광온 의원(왼쪽). [사진 =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박광온 의원(왼쪽). [사진 = 연합뉴스]

하도급법 위반 업체는 공정거래법 위반 업체와 함께 공정위로부터 각종 제재를 받는다. 공정위로부터 벌점 등 제재를 받은 기업은 공공입찰 참여 자격 등에서 제한을 받는다. 결국 한쪽에서는 하도급법 위반 등으로 제재를 가하는 동안 다른 한쪽에서는 그들 기업에 정책자금을 마구 뿌리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갑질 등 대기업의 부당한 행위에 대한 공정위의 제재 의미가 퇴색될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그러지 않아도 하도급법 위반 등을 저지른 기업에 대한 공정위의 제재가 미약하다는 의견이 많았던 터였다.

박 의원에 따르면 2016년부터 올해 8월까지 하도급법 위반 업체에 지원된 정책자금 중 90%가량인 2조5567억원은 산업은행을 통해 지원됐다. 이런 부조리한 현상은 산업은행의 치밀하지 못한 관리 시스템에서 비롯됐다. 산업은행은 하도급 모범 업체에 우대금리 등 혜택을 부여하고 있지만 법 위반 업체에 대해서는 아무런 페널티를 부과하지 않고 있다. 기술보증기금도 마찬가지다.

반면 또 다른 정책금융기관인 기업은행과 신용보증기금은 하도급법 위반 업체에 대해 등급 하향 등의 페널티를 부과하고 있다. 제도 개선이 시급함을 알 수 있다. 산업은행의 부실한 행태도 문제지만 정책자금을 하도급법 위반 여부와 상관없이 지원받도록 돼 있는 현행 제도를 속히 손질해야 한다는 의미다.

문제로 지적된 산업은행의 행태는 국민의 혈세를 함부로 운용한다는 비난을 살 만하다. 박광온 의원도 정책자금을 마구 지원하는 것은 법을 준수한 기업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산업은행은 이 문제 말고도 대기업들에게 중소·중견기업 전용 대출 상품 혜택을 부여해 물의를 빚은 바 있다. 또 이동걸 회장은 지난달 열린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 전기만화 출판기념회에 참석해 ‘가자, 20년’ 구호를 제안함으로써 정치행보 논란을 자초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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