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느닷없이 ‘2050 탄소중립’ 비전을 밝혔다. 전혀 예고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시급한 과제가 산적한 우리의 현실을 감안하면 뜬금없는 일이란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2050 탄소중립 비전의 골자는 2050년까지 산술적으로 탄소배출 제로 사회를 구현한다는 것이다. 탄소중립은 배출한 탄소의 양만큼 환경을 되살리는 활동을 펼침으로써 사실상 탄소배출량이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가 되도록 한다는 의미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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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저녁 황금시간대에 지상파 3사 등을 통해 생중계된 탄소중립 선언(더 늦기 전에 2050)은 여러 면에서 비판의 여지를 남겼다.

당장 문제로 지적할 수 있는 것이 실현 가능성이다. 전문가적 시각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구현한다는 것은 난센스다. 탈원전 정책을 유지하면서 당초 계획보다도 앞당겨 탄소중립을 실현하는 것은 누가 봐도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현재 원전 의존도를 급속히 줄여가면서 신재생 에너지란 이름의 자원을 이용한 발전을 늘려가고 있다. 하지만 오히려 탄소 배출량은 늘어가고 있는 게 현실이다. 탄소 배출량이 제로에 가까워 지구온난화와 가장 거리가 먼 원자력을 제쳐두고 액화천연가스(LNG) 사용량을 늘린 탓이다. LNG 사용량 증가는 풍력이나 태양광 등 신재생 에너지가 갖는 발전능력의 한계에서 비롯됐다. 신재생 에너지 발전은 오히려 태양광 패널 폐기물로 인한 환경 파괴와 패널 설치 자체로 인한 삼림 파괴, 풍력 발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소음 등 각종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원자력 발전량 감축은 전력 생산 비용을 늘려 우리의 산업 경쟁력을 갉아먹는 요인이 되고 있다. LNG와 신재생 에너지는 원자력에 비해 두 세 배가량 비싼 비용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늘어나는 전기료 부담으로 경쟁력이 약화된 기업들은 탄소중립 목표 시점이 앞당겨지면 막대한 탄소세 부담까지 조기에 떠안게 된다. 결국 탈원전과 탄소중립 조기 구현은 양립할 수 없는 목표라 할 수 있다. 탈원전 정책을 폐기하지 않는 한 2050 탄소중립은 헛구호에 그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탄소중립 선언의 방법도 여러 모로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냉정한 논리가 아니라 감성에 호소하는 방법으로 탄소중립의 필요성을 강조한 점이 특히 그랬다. 문재인 대통령은 픽션에 불과한 재난영화를 보고 눈물지으며 탈원전 결심을 굳혔다고 한다. 이성보다는 감성이 정책 결정의 동인이 됐다고 볼 여지를 남긴 일화다.

감성에의 호소는 문재인 대통령의 주특기가 된지 오래다.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희생자의 딸을 포옹하는 제스처로 눈물샘을 자극하는 등 각종 연출에 무척이나 신경쓰는 모습을 드러내곤 했다. 대통령 후보 시절엔 광화문으로 대통령 집무실을 옮기고, 퇴근길에 국민들과 술잔을 기울이겠다는 실현 불가능한 꿈같은 이야기로 시민들을 열광시켰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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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탄소중립 선언도 그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실현 가능성에 대한 논리적 접근보다는 온갖 연출을 동원해 감성을 자극함으로써 소구효과를 얻으려는 의도를 드러냈다. 대통령의 발언이 시작되면서 곧바로 TV 화면이 흑백으로 바뀌게 연출한 일부터가 그랬다. 미세먼지로 시커멓게 변한 하늘색을 연상시키기 위한 연출 기법이었다고 한다. 대통령은 폐플라스틱 원단으로 만든 넥타이를 매고 연설에 나섰다.

대통령의 책상에 놓인 소품도 시청자들의 눈길을 잡아끌었다. 대통령이 연설하기 위해 앉은 책상에는 현대차가 만든 수소차 ‘넥쏘’와 풍력발전기 모형이 놓여 있었다. 책상 앞에 놓인 시계도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이 시계는 지구환경 위기 시각을 나타내는 용도로 개발된 것이다. 시계는 오후 9시47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 시계는 위기의 정점인 밤 12시를 코앞에 두고 있음을 강조하기 위한 소품으로 동원됐다.

문 대통령은 연설을 통해 “탄소중립과 경제성장, 삶의 질 향상을 동시에 달성하는 비전을 마련했다”며 “기후위기 대응을 포용적이고 지속가능한 성장의 기회로 삼아 국제사회를 선도하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탄소중립 실현 의지를 관철하기 위한 3대 목표를 제시했다. 목표 실행을 위한 과감한 투자도 다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이 같은 다짐은 그 자체로는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 문제는 실현 가능성이 없다는 점이다. 탈원전을 밀어붙이면서 조기에 탄소중립을 실현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수소차에 집착하면서 탄소중립을 강조하는 것도 모순이다. LNG 개질(改質-Reforming)을 통해 수소를 생산할 때 온실가스가 다량 배출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상식이다. 수소차가 전기를 이용해 수소연료를 생산하고 그렇게 생산된 수소연료로 다시 전기를 만들어 움직이는 복잡한 시스템으로 인해 선진국 다수의 관심권 밖으로 밀려나 있다는 점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 점 역시 탄소중립 조기 선언이 감성보다 중요한 논리를 상당 부분 결여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탄소중립은 우리뿐 아니라 인류 전체가 이뤄야 할 지상 과제다. 중차대한 과제인 만큼 치밀한 계획과 논리로 국민을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감성에 호소하는 것만으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만만찮은 목표라 할 수 있다.

대표 필자 편집인 박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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