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이 코로나19로 초래된 자영업자들의 손실을 보상해줄 법적 장치 마련에 주도적으로 나서고 있다. 그 정점엔 정세균 총리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 총리의 요즘 언행을 보면 이 제도 도입에 사활을 건 듯한 인상을 받게 된다. 그런 탓에 일각에서는 그가 이 사안을 자신의 정치적 입지와 연관시키고 있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사실 장기간의 사회적 거리두기로 어려움에 처한 자영업자들을 정부가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것은 그 자체로 좋은 일이다. 그 취지에 반대할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이다. 특히 법률로써 새로운 제도를 만들고자 할 때는 합당한 절차에 입각해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 법률이란 일단 만들어지면 강제성 및 항상성을 띠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 번 만들어진 법은 각종 부작용이 있다 할지라도 한동안 우리 사회 전체를 규율하는 속성을 지닌다.

정세균 국무총리. [사진 = 연합뉴스]
정세균 국무총리. [사진 = 연합뉴스]

여권이 추진 중인 자영업자 손실 보상제 역시 예외일 수 없다. 손실 보상이 법제화되면 당연히 우리나라의 재정엔 엄청난 부담이 가해지게 된다. 손실 보상의 강제적 이행이 나라의 곳간 사정과 무관하게 진행될 수밖에 없다는 게 그 이유다.

어떤 사안을 법제화하려 할 땐 명료성도 고려해야 한다. 세부적인 내용을 시행령에 위임한다 할지라도 지원 범위 및 대상을 두고 혼선이 빚어지지 않도록 법 조항에 대한 세심한 사전 조율이 이뤄져야 한다는 의미다. 그러지 않으면 순기능은 간 데 없고, 법률 규정이 본래 취지와 달리 역기능만 가져다주는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여권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보고 있노라면 불안감이 앞서는 게 사실이다. 특히 우려스러운 점은 대통령의 위임 하에 행정부를 총괄하는 국무총리가 정당한 논의 절차를 무시하려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세균 총리는 기획재정부 김용범 1차관이 해외의 유사사례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을 문제 삼으며 “이 나라가 기재부의 나라냐”고 역정을 냈다고 한다. 심지어 언론 인터뷰를 통해 기재부를 “개혁 저항 세력”으로 몰아붙이기까지 했다.

정 총리의 이 같은 태도는 국가 재정에 심대한 부담을 안길 전대미문의 제도를 도입하면서 재정정책 주무 당국의 의견을 아예 묵살하겠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기재부 차관이 재정정책과 연관된 주요 사안에 대해, 그것도 기자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한 발언을 문제시했다는 점까지 감안하면 더더욱 그렇다.

오죽하면 홍남기 경제부총리까지 나서서 “재정은 화수분이 아니다”라며 기재부 차관의 발언을 사실상 두둔하는 입장을 표명했겠는가. 기재부는 제한적인 재정을 최대한 아끼면서 효율적으로 운용해야 하는 책무를 받은 곳이다. 그러라고 만들어 둔 부처가 기재부다. 나라 곳간의 문지기 역할을 보다 확실히 하도록 독려하기 위해 기재부 수장에겐 부총리 직급까지 부여했다. 따라서 김용범 차관은 직책에 충실한 발언을 했다고 보아야 한다. 그 발언을 문제 삼으며 당사자와 해당 부처를 반개혁 세력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일이다.

현재 우리의 재정상황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 언론과 전문가들이 누차 지적했듯이 올해 본예산 기준으로만 해도 우리나라의 국가채무는 956조원으로 늘어나게 돼 있다. 이를 토대로 산정한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이전 정권까지 마지노선으로 삼아온 40%선을 훌쩍 넘는 47.3%나 된다. 40%선 유지의 필요성은 과거 문재인 대통령도 야당 의원 시절 강조했던 바다.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 [사진 = 연합뉴스]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 [사진 = 연합뉴스]

입장이 바뀌자 문 대통령은 “40%의 기준이 뭐냐”고 되묻고 나섰다. 이 말이 출발 신호라도 된 듯 우리의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전례 없는 속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국경제연구원 같은 민간 연구기관에서는 우리처럼 기축통화국이 아닌 나라의 경우 그 비율을 38% 내외로 유지하는 것이 적정하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우리는 달러화나 유로화 같은 기축통화를 찍어낼 수 있는 미국이나 유로존 국가들과는 입장이 다르다는 것이 그 의견의 배경이다.

국가채무 비율 산정이 중앙 및 지방정부 부채의 합(D1)을 기준으로 이뤄진다는 점도 되씹어봐야 한다. 엄청난 규모의 공기업 부채나 연기금 부채 등을 생각하면 우리의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보다 보수적으로 계산할 필요가 있다.

현실을 고려할 때 자영업 손실 보상제는 기재부 일각에서 제기된 대로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마련되는 프로그램에 따라 운용하는 방식을 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연간 수십조, 많게는 100조원에 육박하는 재정을 손실보상제 운용에 투입한다면 우리도 곧 국가부도 사태에 직면할 수 있다. 우린 이미 남미나 유럽 일부 국가들의 사례를 통해 그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그들 나라를 망가뜨린 근본 원인은 집권세력의 포퓰리즘 정책이었다. 그리스 사례에서 보았듯이 국가 재정 형편을 살피지 않은 채 돈을 뿌린 것 외에 공무원을 마구 늘린 것도 중요한 패착이었다. 우리에게도 이미 그런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큰 선거가 다가올 때면 돈 뿌리기 징후가 더욱 뚜렷해지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더니 이젠 총리 입에서 돈 뿌리기에 제동을 걸려는 곳간지기를 향해 “개혁 저항 세력” 운운하는 질타까지 나왔다. 돈 뿌리기가 곧 개혁이라는 의미의 해괴한 반어적 표현이 등장한 셈이다. 납세자 입장에서 보자면 해괴할 따름이지만, 관련 부처 공무원들 입장에서는 참으로 등골이 서늘해지는 말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대표 필자 편집인 박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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