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인 없는 결과가 있었던가. 결국 본격적인 여권발 증세론이 터져나왔다. 이제나 저제나 하고 지켜봐온 터라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다 하는 생각이 앞선다. 지금은 전국민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는 시기라는 점을 생각하면 한심스럽기까지 하다.

한편으론 오죽 다급했으면 저럴까하는 생각이 든다. 당초 문재인 대통령 등 집권세력은 임기 5년 동안 돈을 마구 써대도 그 뒷감당은 다음 또는 그 다음 정권이 하게 되리라 여겼을 수 있다. 그런데 그 씀씀이가 너무 헤프다 보니 남은 임기 1년여를 더 견디지 못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큰 선거를 목전에 두고 증세론을 들먹이는 걸 보면 그 다급함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하게 된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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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대통령 임기가 일부 남은 시점에서 증세 카드를 꺼내드는 것은 정권 스스로 재정운용 실패를 인정하는 것과 같다. 혹여나 감염병 사태라는 특수 상황을 핑계 삼으려 할지 모르나 지금의 증세론은 코로나19 이전의 재정운용에서 주로 기인했다. 현 정부 취임 3년 수개월 만에 국가채무가 대략 300조원이나 늘어났다는 점이 그런 정황을 말해준다.

실제로도 국가채무 증가속도에 대한 우려는 현 정권 초기부터 줄기차게 제기돼왔다. 이전 정부들이 누대에 걸쳐 수십 년간 쌓아온 국가채무는 660조원이었다. 그런데 이의 절반 정도에 해당하는 국가채무가 문재인 정권 3년 10개월 만에 추가됐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국가 재정상황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놓고도 누구 하나 자성의 목소리를 내는 이조차 없다. 오히려 당연하다는 듯 거리낌 없이 증세론을 말하고 있다. 증세론에 불을 댕긴 이는 여당 소속의 국회 기획재정위원장이다. 그가 운을 떼자 기다렸다는 듯 여당 내부에서 증세 주장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이런 난국에 국민들의 고혈을 짜내려 하면서도 누구 하나 미안해하는 기색조차 드러내지 않는다. 그저 신이야 넋이야 나름의 증세론을 내세우기에 정신이 팔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여권에서 거론되는 증세 방법 또한 가관이다. 일부 의원의 증세안에서 특유의 정치적 술수가 여지없이 발휘되고 있어서이다. 그 와중에서도 편가르기 수법을 이용해 정치적 이득을 취하려는 야비한 정략이 드러나고 있다는 얘기다.

요는 소수의 부자와 나머지 다수를 대립시킨 뒤 소수파인 부자들을 적대시하며 몰아붙이려 한다는 것이다. 그 속엔 그걸 여론이랍시고 앞세워 국민을 두 패로 나누면서 다수의 지지를 얻어내려는 꼼수가 숨어 있다. 이를 대변하는 것이 여당의 유력 정치인인 이상민 의원의 증세안이다. 이 의원은 고소득자·대기업을 겨냥한 문제의 증세안을 정리해 국회에 법안으로 제출하려 하고 있다.

부자 증세는 합리성 여부를 떠나 현실적으로 국민 다수의 지지를 얻기 쉬운 방안이다. 위정자 입장에서 보자면 이보다 더 손쉽고 편리한 증세 방안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부자를 공연히 적으로 인식되도록 만드는 문제를 안고 있다. 자칫 온당한 땀의 대가를 부정하는 그릇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어서이다. 자본주의 국가의 정상적인 정부라면 함부로 시도해서는 안 되는 짓이다.

부자 증세가 그간 소리 소문 없이 이뤄져왔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이후 이미 법인세와 소득세 최고세율을 대폭 인상한 바 있다. 소득세 최고세율의 경우 두 차례에 걸쳐 인상 조치가 이뤄졌다. 이로써 법인세와 소득세 최고세율은 각각 25%, 45%로 올라갔다. 미-중 경제전쟁으로 인한 글로벌 경기 부진과 코로나19 대유행 속에서 주요국 정부들이 감세 정책을 주로 펼치고 있는 것과 대조되는 행보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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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 두 번째 소득세 최고세율 인상 등은 구렁이 담 넘어 가듯 이뤄졌다. 여당도 조금은 민망했던지 지난 정기국회 때 소득세법 개정안을 예산부수법안으로 묶어 티 안 나게 통과시켰다. 소득세법뿐이 아니었다. 종합부동산세법, 상속세 및 증여세법 등 다수의 세금 관련 법안을 예산부수법안으로 묶어 처리했다. 사람들의 관심이 예산에 집중될 것이란 점을 노려 세금 관련 법안들을 일괄처리했다고 볼 수 있다.

증세가 무조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부자 증세도 마찬가지다. 필요하다면 국민의 양해를 구해 얼마든지 증세를 할 수도 있다. 다만, 부자를 적대시하는 기조가 그 바탕에 깔려 있다는 게 문제다. 징벌적 증세라는 비판이 심심찮게 나오는 것도 그와 무관치 않다. 즉, 증세를 정략적으로 활용하려는 심보가 나쁘다는 뜻이다.

정도가 심하다는 것도 문제로 지적할 수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현 정부의 부자 증세는 이미 과할 만큼 나아간 측면이 있다. 부동산 관련 세금의 경우 그 여파가 중산층에게까지 밀려든 상태에 있다. 그로 인한 마지막 파장은 서민생활에까지 이르게 됐다. 주택 보유세 인상으로 인한 임대료 인상이 그 방증이다.

툭 하면 재벌 증세를 거론하지만 우리의 재벌가에 매겨지는 상속세율은 최고 60% 수준에 이르렀을 만큼 한계상황에 다가가 있다. 가히 세계 최고 수준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말하듯 과세의 기본원칙은 ‘넓은 세원, 낮은 세율’이다. 소득이 적으면 적은대로, 많으면 많은 대로 최대 다수가 세금을 내도록 제도를 손질하는 것이 지금 시점에서 정부가 해야 할 최우선 과제다. 어느 누구도 세금으로 인해 특단의 고통을 느끼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게 정상적인 국정 운영의 방식이다. 그게 위정자에게 주어진 임무이기도 하다.

세금 부담 경감은 태평성대의 기본조건이다. 진정으로 국민을 섬기는 정치 지도자라면 세금을 쓸 때와 부과할 때, 특히 증세를 고려할 때 삼가고 또 삼가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내 돈 아니라고 세금을 함부로 쓴 뒤 아쉬울 때마다 국민들을 쥐어짠다면 그것만으로도 국가 지도자 자격이 없다고 평가받아 마땅하다. 항차 거기에 편가르기 심보까지 가세한다면 더 말할 것도 없다.

대표 필자 편집인 박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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