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최진우 기자] 가상화폐가 또 한 번 유용성 시비에 휘말렸다. 사실상 화폐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는 평을 들은 것이다. 부정적 평가를 한 이는 미국의 통화정책을 주도하며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연준) 이사회 의장이다.

CNBC에 따르면 파월 의장은 22일(현지 시각) 국제결제은행(BIS)이 디지털뱅킹을 주제로 연 화상 토론회에서 가상화폐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그는 “가상화폐들은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유용한 가치저장 수단이 아니다”라며 “어느 것도 가상화폐를 뒷받침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가상화폐의 가치를 보장해줄 장치가 아무 것도 없으므로 화폐로서의 온전한 가치를 지니기 어렵다는 얘기였다.

파월 의장의 가상화폐에 대한 인식은 그 다음 발언에서 더욱 뚜렷이 드러났다. 그는 가상화폐의 성격에 대해 설명하면서 “달러화에 비해서는 기본적으로 금의 대체재인 투기적 자산에 가깝다”고 말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의 “내재가치가 없다”라는 최근 평가와 맥을 같이하는 것으로 이해되는 발언이었다.

[그래픽 = 연합뉴스TV 제공/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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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화폐에 대한 부정적 평가는 파월 의장이나 이주열 총재에 국한돼 있지 않다. 주요국 재무장관이나 중앙은행장들은 대체로 비트코인과 같은 가상화폐를 부정적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따라서 섣부른 가상화폐 투자를 삼가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연준 의장 출신의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도 최근 가상화폐를 위험한 투기자산이라 규정했다. 유럽중앙은행(ECB)을 이끌고 있는 크리스틴 라가르드 총재 역시 비슷한 의견을 낸 바 있다.

이들의 연이은 경고는 최근 가상화폐의 대표 격인 비트코인의 가격이 고공행진을 이어간 것과 연결돼 있다. 지난해 말부터 폭등하기 시작한 비트코인은 다소간의 등락을 거쳤지만 23일 현재 개당 6만 달러 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이날 오전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인 빗썸에서는 1비트코인 가격이 6000만원 선을 살짝 넘었다.

비트코인 가격의 상승세는 미국의 전기차 회사 테슬라가 비트코인을 대량 구입하면서 탄력을 받았다. 테슬라는 자사 전기차 판매시 비트코인을 결제수단으로 인정하겠다는 구상을 밝히기도 했다. 모건 스탠리 같은 세계 굴지의 금융회사가 비트코인에 투자할 뜻을 밝히고 나선 것도 가격 급등을 부추기는 작용을 했다.

하지만 지난달 하순 경 개당 6만 달러를 향해 올라가던 비트코인 가격은 하루에 10% 이상 폭락하는 사태를 겪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가상화폐 가치에 대해 오락가락하는 입장을 드러낸 것도 시장의 혼란을 야기하는데 일조했다.

각국 중앙은행들이 구상중인 디지털 화폐(CBDC·Central Bank Digital Currency)는 가상화폐의 미래에 의문을 품게 하는 또 하나의 요소다. 양론이 존재하지만 디지털 화폐가 생활 속에 정착되면 가상화폐의 설자리는 더욱 좁아질 것이란 의견이 적지 않다. 지폐를 대체할 디지털 화폐는 수명 제한이 없고 거래 편의성이 높다는 점에서 미리부터 호평을 받고 있다. 다만, 익명성이 제한된다는 점에서 거부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익명성 제한은 곧 자금 거래의 투명성을 증대시킨다는 것과 같은 의미이므로 이를 긍정적 측면으로 이해하려는 목소리도 있다.

[그래픽 = 로이터/연합뉴스]
[이미지 = 로이터/연합뉴스]

미국의 경우 2년 뒤면 디지털 화폐의 최종 모델이 공개될 것으로 점쳐진다. 파월 의장은 이날 BIS 디지털 뱅킹 서밋에서 이같이 전망하면서 디지털 화폐 도입까지는 몇 가지 관문이 남아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일을 진행하려면 의회와 정부, 대중으로부터 승인을 얻어야 한다”며 “아직은 대중적 참여 작업이 시작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파월 의장은 그러면서도 디지털 화폐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는 입장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코로나19 사태가 더욱 신속히 자금을 이동시킬 수 있는 결제수단의 필요성을 부각시켰다는 것이다.

파월 등의 기대대로 향후 디지털 화폐가 새로운 결제수단으로 자리잡는다면 가상화폐의 위상에 변화가 나타날지 모른다. 중앙은행이 가치를 보증하는 디지털 화폐가 지폐뿐 아니라 가상화폐까지 대체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상화폐가 추후에도 가치저장 수단으로 존재할 것이란 전망 역시 만만찮다. 지금의 지폐와 그러하듯 추후 디지털 화폐와도 공존 관계를 이어가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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