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김기영 기자] 요즘 시중에서는 인플레이션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심심찮게 들린다. 인플레이션과 함께 다시 고금리 시대가 도래하는 것 아닌가 하는 성급한 진단도 나오고 있다. 저금리 시대의 종식이 실현된다면 경제 주체들은 한동안 심리적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당장 자산 포트폴리오를 재구성하는 작업에 나서야 할 수도 있다. 변동금리 대출이 많은 사람은 고정금리로 갈아타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인플레에 대한 우려는 현실 상황을 바탕에 두고 있다. 근래 들어 국제유가와 농산물 등의 가격이 크게 오른 데다 원자재 가격도 심상찮은 흐름을 보이고 있다. 미국에서의 시장금리 상승세 또한 인플레 압력을 강화하는 요인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한·미 통화정책 당국자들은 인플레이션이 나타날 가능성을 낮게 본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당분간 물가가 더 올라가더라도 인플레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특히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연준) 이사회 의장은 최근 그 같은 메시지를 뚜렷이 전달했다. 파월 의장은 지난 23일(이하 현지 시각) 미 하원 금융위원회에 출석해 증언하면서 올해엔 물가가 상승할 것이라 예상했다. 그러면서도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정도는 아닐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심지어 과도한 물가상승이 나타날 가능성을 거론하면서도 그 같은 입장을 유지했다. 과도한 물가 상승으로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대처할 수단을 갖고 있다는 것이었다.

얼핏 들으면 그의 말은 모순된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물가가 오르겠지만 인플레이션이 일어날 가능성은 낮다는 게 발언 요지인 탓이다. 한국은행 이주열 총재도 비슷한 맥락의 입장을 내보이고 있다. 이 총재는 24일 내놓은 ‘주요 현안에 대한 문답’이란 서면자료를 통해 “억눌렸던 수요가 분출되면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으로 높아질 수 있겠지만 지속 확대될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표현상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파월 의장의 진단과 궤를 같이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표현의 차이란 인플레이션이란 단어의 구사에서 엿보인다. 우선 이 총재는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으로 높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수위가 높든 낮든 인플레가 나타나되 지속되거나 확대되지는 않을 것이란 의미다. 반면 파월 의장은 물가가 오르더라도 인플레가 나타나지는 않을 것이란 표현을 쓰고 있다.

두 사람의 말은 다른 듯 보이지만 사실을 같다고 할 수 있다. 이 총재가 물가상승과 인플레를 동일한 개념인 듯 말하고 있는 반면 파월 의장은 둘을 분리해 사용하고 있을 뿐이다. 이 총재의 표현 방식은 일반의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 취해진 것으로 보인다.

이론적으로 따지자면 파월 의장의 발언이 정확하다 할 수 있다. 다만, 그의 발언은 일반인들에게 혼란을 안겨줄 여지가 있다. 일반의 인식 속에선 ‘물가상승 = 인플레이션’이란 등식이 존재하는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물가상승과 인플레이션은 분명 다른 개념이다. 그 차이는 인플레의 정확한 개념을 이해하면 얼른 느끼게 된다. 인플레는 물가가 단발적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일시적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올라가는 현상을 지칭한다. 보다 정확히 설명하자면 물가 상승 추세 속에서 하나의 물가가 다른 물가를 연쇄적으로 자극해 물가가 전반적으로 장기간 상승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인식을 갖고 있다면 “물가가 올라도 인플레는 없을 것”이란 취지의 파월 의장 발언은 전혀 어색하지 들리지 않는다.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의장. [사진 = AFP/연합뉴스]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의장. [사진 = AFP/연합뉴스]

파월 의장은 올해 미국의 소비자물가가 2.4%까지 오를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은 바 있다. 일반적인 물가상승률 목표치(2%)를 한동안 상회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면서도 인플레 가능성을 낮게 본다는 것은 고물가 현상이 장기간 추세적으로 나타나지는 않을 것이라 믿고 있다는 얘기다.

한국은행은 물가 흐름과 관련해 파월 의장과 비슷한 스탠스를 유지하고 있는 듯 보인다. 한은 역시 물가 상승이 나타나더라도 일시적 현상이 될 것이라는 인식을 드러내고 있다. 이는 지금의 물가 움직임에 대한 원인 분석에서 잘 드러난다. 한은은 물가 상승 압력 증가의 원인으로 ▲지난해의 유가하락이 가져다준 기저효과 ▲코로나19로 억눌렸던 수요 분출 ▲주요국들의 확장적 재정정책과 코로나19 백신 접종에 의한 글로벌 경기 회복 등을 지목했다.

이 같은 분석에 따라 한은은 당분간 지금의 완화적 통화정책을 지속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아직은 우리 경제가 코로나19 충격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판단이 그 배경에 깔려 있다.

한은의 경기에 대한 진단은 파월 의장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파월 의장은 미 의회에 제출한 청문회 답변을 통해 “기대보다 빠르게 경기가 회복되고 있다”고 평가하면서도 “아직 완전한 회복과는 거리가 멀다”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당분간은 경제 회복을 위한 조치를 이어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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