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의 인식이 또 논란을 낳았다. 문 대통령의 유체이탈식 화법에 의한 현실 인식이 도마에 오른 것은 한 두 번이 아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이번 발언은 귀를 의심케 할 만큼 놀랄 만한 것이었다. 놀라움을 넘어 불안감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문제의 발언은 지난달 30일 이자제한법 관련 시행령안들을 의결한 국무회의에서 나왔다. 발언 내용은 청와대 임세은 부대변인의 서면브리핑을 통해 공개됐다. 임 부대변인은 브리핑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이번 시행령 개정으로 금리를 낮춘 부분은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하며 그동안 신용이 높은 사람은 낮은 이율을 적용받고, 경제적으로 어려워 신용이 낮은 사람들이 높은 이율을 적용받는 구조적 모순을 지적했다”고 밝혔다.

이날 회의에서는 이자제한법과 대부업법 관련 시행령안이 각각 의결됐다. 이로써 사인 간이든 대부업자와 개인 간이든 모든 돈거래에서는 이율이 연 20%를 초과할 수 없게 됐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문 대통령의 해당 발언이 소개됐을 때 많은 이들은 어안이 벙벙해졌을 것이다. 우리 역시 그 내용이 의심스러워 청와대 홈페이지를 통해 브리핑 내용을 다시 한 번 살펴보아야 했다. 발언 내용은 알려진 그대로였다. 대통령의 발언이 직접 화법으로 소개돼 있지는 않았지만 부대변인은 분명히 고신용 저금리, 저신용 고금리 현상을 두고 대통령이 “구조적 모순을 지적했다”고 설명하고 있었다.

논란이 커지자 청와대는 곧 해명에 나섰다. 발언 내용이 잘못 전달됐고, 대통령이 ‘모순’이란 단어를 사용하지도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논란이 사그라든 것은 아니다. 청와대 부대변인쯤 되는 이가 대통령 발언의 맥락조차 이해하지 못했을 리 없고, 브리핑이 소정의 여과 절차를 거치지 않고 바로 발표됐을 리도 없기 때문이다.

과거 문 대통령은 부동산 문제로 민심이 들끓는 상황에서 “부동산 문제는 자신 있다”고 말해 국민들을 어리둥절하게 한 바 있다. 조국 사태로 공정과 정의가 무너지게 됐다는 우려가 팽배한 가운데 그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고 밝혀 혀를 내두르게 한 적도 있다. 이때만 해도 많은 사람들은 대통령이 민심에 대해 무언가 잘못된 보고를 받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을 품었다. 여기엔 대통령의 인식 자체를 의심하고 싶지 않은 심리도 일부 작용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번 발언은 완전히 유가 다르고 차원이 다르다고 볼 수 있다. 민심을 잘못 읽고 있음을 드러낸 예의 발언과 달리 이번 건은 대통령의 인식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이번 발언이 놀라움 이상의 불안감까지 안겨주는 이유다.

문제의 발언은 금융상식을 근본부터 무너뜨린다는 점에서 심각성을 지닌다. 저신용자가 고율의 이자를 적용받는 것은 금융상식 이전에 국제사회의 일반상식에도 부합한다. 심지어 회사나 국가도 예외일 수 없다. 발행 주체의 신용이 떨어지면 회사채든 국채든 높은 이자를 주어야만 시장에서 거래가 이뤄진다. 이걸 불공정이고 모순이라며 타파하려 한다면 우리 경제는 하루아침에 무너져 내릴 것이다. 아무도 신용을 높이려 노력하지 않고 경쟁하지도 않으면서 과실만 챙기려는 아귀다툼이 벌어질 게 뻔하다.

문재인 대통령. [사진 =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 [사진 = 연합뉴스]

지금은 잠잠해졌지만 이번 일은 한때 진보 교육감들 사이에 회자됐던 국립대 네트워크화 주장을 떠올리게 했다. 사실상 대학을 평준화해 공부 좀 못해도 서울대에 갈 수 있도록 하자는 것과 다름없는 주장이었다. 대학 서열화에서 비롯된 문제를 해소하자는 취지가 담기긴 했지만 교각살우의 우를 범할 수 있는 내용이어서 다행히 큰 호응을 얻지는 못했다.

경쟁이 없는 사회는 발전도 없다는 게 역사의 교훈이다. 공산주의가 망한 이유도 경쟁의 가치를 중요시하지 않은데 있었다. 우리가 신경써야 할 일은 경쟁에서 비롯되는 부작용의 적절한 관리다. 그 연장선에서 합리적 분배에 대한 고민도 치열하게 이뤄져야 한다. 그런 가운데 경쟁이 국가 사회 발전의 동인으로 작동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러지 않고 경쟁을 깡그리 무시해버린다면 우리나라도 소련이나 동독처럼 한순간에 역사의 이면으로 사라져버릴 수 있다.

이참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고율 이자 제한에 나선 것은 긍정적 평가를 받아 마땅하다. 상궤를 벗어난 고리대금 행위는 정당한 상거래가 아니라 갈취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다만, 어디까지를 일탈적 고리(高利)로 볼 것인지는 별개의 문제다. 그 지점을 어떻게 정할지는 그 다음의 일로 우리에게 주어진 또 다른 과제라 할 수 있다.

대표 필자 편집인 박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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