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최진우 기자] 국가재정이 최악의 상황에 이르렀다. 재정건전성에 빨간 불이 켜진 것이다. 지난해 국가부채는 2000조원에 육박했고 연간 국가부채 증가폭은 240조를 넘겼다. 둘 모두 사상 최대치다. 재정건전성 악화를 반영하듯 작년 통합재정수지와 관리재정수지의 적자 규모도 나란히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재정건전성의 지표처럼 인식돼온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D1) 비율은 이전 정부까지 마지노선으로 삼았던 40%를 훌쩍 넘어 44%를 기록하게 됐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여전히 우리의 재정건전성에 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선진 외국들과 비교할 때 우린 비교적 양호한 편이라는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과 빠른 고령화 현상을 무시한 아전인수식 분석이라 할 수 있다.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국가재정 상황이 빠르게 악화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출구 전략조차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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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정부가 국무회의에서 심의·의결한 ‘2020회계연도 국가결산보고서’에 의하면 지난해 우리의 국가부채는 1985조3000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증가폭은 241조6000억원이다. 발생주의 회계로 국가 재무제표를 작성하기 시작한 2011회계연도 이후 최대 수치들이다. 발생주의 회계란 현금이 오간 것이 아니라 거래가 발생한 기간을 기준으로 삼는 회계 방식을 지칭한다. 이런 회계방식이 국가재정 상황을 보다 합리적으로 설명해준다는 게 일반적 평가다.

국가 재무제표상 부채는 확정부채와 비확정부채로 나뉘는데 지난해엔 이들 모두 큰 폭으로 증가했다. 확정부채는 111조6000억원, 비확정부채는 130조원 증가했다. 비확정부채란 장차 지급해야 할 돈을 현재가치로 환산해 집계한 부채를 말한다.

지난해 국가부채의 큰 폭 증가는 코로나19 팬데믹 극복을 위해 네 차례에 걸쳐 도합 67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한 것에 크게 기인했다. 이로 인해 국채발행이 111조6000억원 증가했다. 여기에 공무원연금 및 군인연금 등에 대한 연금충당부채까지 100조5000억원 늘어나면서 국가부채는 더욱 커지게 됐다.

국가부채의 일부인 국가채무는 지난해 846조9000억원으로 늘어났다. 전년 대비 증가폭은 123조7000억원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국가채무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채무 합계인 D1을 의미한다. 이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GDP 대비 국가채무를 말할 때 쓰는 개념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오랜 동안 이 비율이 40%를 넘어선 안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조차 야당 시절 이 기준의 준수를 박근혜 정부에 촉구했었다. 그러나 작년 한 해 동안 우리나라의 국가채무 비율은 6.3%포인트나 올라 44%선에 도달했다.

이 비율은 올해와 내년을 거치면서 더 가파르게 올라갈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올해 국가채무 증가폭을 119조원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런 추세는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는 게 정부의 계산이다. 정부 추산에 따르면 국가채무는 내년엔 125조3000억원, 2023년엔 125조9000억원, 2024년엔 130조7000억원 늘어난다.

재정수지도 크게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통합재정수지는 71조2000억원, 관리재정수지는 112조원의 적자를 각각 기록했다. 이들 수치 모두 2011년 이후 최대치다. 이전의 최대 적자 기록은 통합수지의 경우 12조원(2019년), 관리재정의 경우 29조5000억원(2014년)이었다. 이를 보면 지난해 재정수지 적자 규모의 증가가 얼마나 가팔랐는지 가늠할 수 있다.

통합재정수지의 산정 기준이 된 지난해 총수입은 478조8000억원이었고 총지출은 549조9000억원이었다. 총수입이 5조7000억원 늘어나는데 그쳤으나 총지출은 64조9000억원이나 커짐에 따라 통합재정수지 적자가 71조를 넘어서게 된 것이다. 정부의 실질적 살림살이 솜씨를 대변해주는 관리재정수지는 이보다 더 큰 적자폭을 나타냈다. 이는 정부의 씀씀이가 그만큼 컸음을 보여주는 요소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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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써 지난해 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은 통합재정수지가 -3.7%, 관리재정수지가 -5.8%를 기록하게 됐다. 통합재정수지는 1982년의 -3.9% 이후 가장 나쁜 기록이고, 관리재정수지는 이 개념 도입 이래 최악의 수치에 해당한다.

하지만 정부는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확장재정에 따른 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은 3.1%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또 이 비율이 선진국의 4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반면 이 수치를 긍정적으로 보기엔 무리가 따른다는 것을 말해주는 기준도 있다. 이를테면 유럽연합(EU)이 ‘안전과 성장에 관한 협약’을 통해 유로존 회원국들에게 요구하는 GDP 대비 재정적자(통합수지) 기준선은 3%다. 이는 우리의 경우 최소한의 EU 회원국 기준에도 못 미친다는 점을 상기시켜주고 있다.

이날 정부가 밝힌 국가 재무제표 결산 결과에서 또 하나 눈길을 끈 점은 작년 국가부채가 GDP(1924조원)를 넘어섰다는 것이었다. 국가부채 규모가 GDP를 넘어선 것은 2011회계연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재정 상황이 이처럼 악화일로를 걷고 있지만 우린 아직도 마땅한 출구전략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기획재정부가 재정준칙을 준비해 그 내용을 공개한 바 있지만 야당 등으로부터 재정을 엄격히 관리하기는커녕 오히려 정부 곳간을 활짝 열어젖히려 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 기준이 너무 느슨해 마음껏 돈을 갖다 쓰라고 정부를 독려하는 결과만 가져올 것이라는 게 비판 이유였다.

당시 정부가 내놓은 안은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을 60% 이하로 유지하거나 GDP 대비 통합재정수지 적자 비율을 3% 이내로 유지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나마 두 요소는 ‘And’가 아닌 ‘Or’ 관계를 맺고 있어서 비판 목소리를 더 키웠다.

이 일 이후 우리는 아직까지 재정준칙의 근거가 되는 국가재정법을 손질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재정건전화법을 별도로 제정해 보다 엄격한 재정관리 기준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이 역시 별다른 진척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재정 의존도가 워낙 높은 탓에 여당도 재정건전화법 제정엔 적극성을 보이지 않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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