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김기영 기자] ‘글로벌 최저 법인세’가 국제사회의 새로운 의제로 부상했다. 세계 주요국들이 뜻을 모아 전세계적으로 적용될 법인세 하한선을 설정하자는 것이 주 내용이다. 간단히 말하면 특정국 정부만 법인세를 올리는 게 부담스러울 수 있으니 주요국들이 일제히 법인세 인상을 시도해보자는 의도가 담긴 제안이다. 일종의 법인세 인상 담합 추진이라 풀이할 수 있다.

이 아이디어를 처음 제안한 사람은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이다. 옐런 장관은 지난 5일(현지시각) 시카고 국제문제협의회(CCGA)에서 행한 연설을 통해 각국의 법인세 하한선 설정을 위해 주요 20개국과 협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 [사진 AP/연합뉴스]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 [사진 AP/연합뉴스]

이는 미국의 법인세를 인상하려는 조 바이든 행정부의 구상과 직결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새 행정부는 법인세 최고세율을 지금의 21%에서 28%로 올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전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35%이던 미국의 법인세 최고세율을 21%로 크게 낮춘 바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대적 감세정책의 일환이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미국 우선주의를 기치로 내세우며 미국 기업의 국제무대 경쟁력 제고를 위해 법인세 인하를 단행했다.

옐런 장관 제안의 대외적 명분은 공정성 확보다. 주요 기업들이 어디에서 사업을 하든 예외 없이 일정 정도의 세금을 내도록 하자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러나 미국의 제안을 두고 일종의 물귀신 작전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그런 분석이 오히려 더 큰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게 사실이다. 실제로 옐런 장관은 미국 기업들에 대해서만 법인세 인상을 단행하면 자국 기업의 국제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게 된다는 점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미국은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큰 정부를 지향하며 확장적 재정 운용 방식을 구사할 것이 확실시된다. 당장 2조3000억 달러에 육박하는 인프라 투자 계획만 추진하려 해도 많은 세금 징수가 필요한 상황이다. 나아가 세수 확대를 위해 가장 손쉬우면서도 효과적인 방법이 법인세를 올리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세금의 급격한 인상엔 으레 조세저항이 따르기 마련이다. 이 점을 고려해 미국 정부가 구상한 또 하나의 방안이 지금의 21%와 트럼프 행정부 이전의 35% 중간선까지 법인세를 올리는 것이었다. 또 경쟁국 기업들의 법인세를 일제히 올려 미국 기업들의 불만을 최대한 잠재우려는 것이 미국 정부의 속셈인 것으로 풀이된다.

옐런 장관의 제안에 몇몇 주요 선진국들은 반색하는 분위기를 나타내고 있다. 독일과 프랑스가 대표적이다. 국제통화기금(IMF) 역시 그와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이런 분위기는 코로나19로 세계 각국이 재정 지출을 늘리면서 세수 부족에 시달리게 된 현실과 연관돼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불감청고소원일 수 있다는 의미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반면 미국의 이 같은 제안에 반발하는 국가들도 적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과 각을 세우고 있는 중국이나 러시아 등이 대표적 사례국이 될 수 있다. 이들 국가는 자국 기업의 국제 경쟁력을 유지하거나, 오히려 키워주기 위해 상대적으로 낮은 법인세를 유지하려 할 수 있다.

우리 정부는 아직 미국의 제안에 대해 구체적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일의 진척 상황을 보아가며 다자주의적 관점에서 현명한 결정을 내리겠다는 것이 정부의 현재 입장인 것으로 비쳐진다.

우리 정부는 옐런 장관의 제안으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울 것이란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우리의 경우 법인세가 비교적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 그런 분석의 배경을 이룬다.

우리나라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법인세를 기존의 22%에서 25%로 올린 바 있다. 우리의 법인세 최고세율은 지방세를 포함하면 27.5%에 이른다. 소득세 최고세율을 두 차례에 걸쳐 45%까지 끌어올린 것에 비하면 낮은 수준이라 볼 수 있지만 세계 주요국과 비교했을 땐 느낌이 달라진다. 일례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법인세 최고세율은 23.5%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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