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이선영 기자] IBK기업은행 낙하산 행장 임명에 따른 후폭풍이 다시 거세질 기미를 보이고 있다. 낙하산 행장 한 명 내리꽂자고 정권이 무리수를 둔 것이 화근이었다.

소동의 중심에 선 이는 윤종원 행장이다. 소동은 지난해 1월 초 청와대가 그를 금융공기업인 기업은행의 수장으로 임명하면서 시작됐다. 절차상 금융위원회 제청이 있었다지만 청와대의 의지가 반영된 인사라는 게 중론이었다. 윤 행장이 누구보다도 권력과 가까운 인물이라는 점이 그 배경을 이뤘다. 과거 이력을 일일이 따질 것도 없었다. 그의 직전 직책이 청와대 경제수석이었다는 사실 하나만 보더라도 그를 낙하산이라 단정하기에 충분했다.

물론 당사자가 적정한 자격을 갖추었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윤 행장은 그 때까지 금융실무 경험이 전무했다는 점에서 낙하산 인사의 전형이라 할 만했다. 당시 기업은행 노동조합도 이 점을 들어 낙하산 반대 입장을 표했다.

[사진 = 연합뉴스]
[사진 = 연합뉴스]

노조는 낙하산 임명이 강행되자 윤 행장 출근을 몸으로 저지하는 방법을 택했다. 그렇게 시작된 출근저지 투쟁은 한 달 가까이 이어졌다. 윤 행장은 회사 건물 바깥에 따로 임시사무실을 마련해 업무를 진행해야 하는 수모를 겪었다. 취임식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출근 저지 투쟁이 26일간 이어지자 윤 행장은 마침내 노조와 굴종에 가까운 약속을 해주고서야 본관 건물 입성에 성공할 수 있었다. 윤 행장이 택한 해결 방법은 노조와 ‘6대 노사 공동선언’이란 이름의 합의문을 작성하는 것이었다. 주요 경영 행위에 대해 노조의 의견을 반영한다는 것이 골자였다. 약속한 6개 항목 중엔 ‘노조추천 이사제 추진’도 있었다.

이 항목이 낙하산 저지 사태 1년여가 지난 지금 망령처럼 되살아나 윤 총장, 나아가 정권의 발목을 잡아당기고 있다. 지난 2월과 3월 잇따라 공석이 발생한 사외이사 자리에 두 명을 새로 채워 넣는 과정에서 갈등이 재발한 것이다. 원인은 이번 사외이사 충원에서 노조 추천 인물이 배제됐다는 점이었다.

이에 노조는 지난 12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항의의 뜻을 밝혔다. 노조 추천 인물 배제가 “명백한 합의 파기”이자 “10만 금융노동자에 대한 기만”이라는 것이었다. 노조의 주장은 윤종원 행장과 기업은행 노조 간 6개 항 합의 당시를 되돌아보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공동선언문 합의가 이뤄지던 자리엔 기업은행장 제청권자인 은성수 금융위원장과 이인영 당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도 동참했었다.

당시 상황을 연상하면 노조로서는 이번 사외이사 결정을 두고 자신들이 배신당했다는 인식을 가질 수 있다. 이번 사외이사 선임 과정에서 윤 행장은 노조추천 인물을 인사 대상에 포함시킨 뒤 그 명단을 금융위원회에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노조의 불만은 윤 행장과 금융위를 넘어 청와대에까지 이르고 있다. 그 기저엔 모종의 짬짜미가 있었을 것이란 의심이 자리하고 있는 듯 보인다.

이런 의심과 불만 탓에 기업은행 노조는 윤 행장 출근 저지 카드를 다시 만지작거리고 있다. 향후 투쟁 방향을 묻는 기자 질문에 노조 관계자는 그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았다. 이 관계자는 “아직 구체적 날짜는 정해지지 않았다”면서도 “상황에 따라 출근 저지 집회도 진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노조 측의 강력한 분노를 표출하기 위해서라도 출근 저지 투쟁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었다.

기업은행 측은 노조의 행동을 하릴없이 지켜만 보고 있다. 사측 관계자는 노조추천 이사 선임 불발에 대해서도 “저희 입장은 따로 없다”고만 말했다.

이번 기업은행 사태는 두 가지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 그 하나는 전례가 없는 금융공기업 노조추천 이사 임명이 우리사회의 주요 의제로 부상했다는 사실이다. 이 의제는 보다 많은 공론화 과정을 거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태가 주는 보다 중요한 시사점은 낙하산 인사를 내려보낸 데 대한 대가의 혹독함이다. 낙하산의 무사 안착을 위해서는 노조에 무리한 약속을 해주어야 하고, 그 약속은 두고두고 당사자뿐 아니라 임명권자에게까지 부담을 안겨줄 수 있다는 의미다.

정작 중요한 문제는 그 같은 혼란으로 인한 피해가 금융공기업의 불안정과 파행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그로 인한 최종 피해가 누구의 몫인지는 거론할 필요조차 없다. 그 근원인 낙하산 인사야말로 하루 속히 정리해야 할 적폐 중의 적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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