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이 금리 인상 가능성을 시사했다. “미국 경제가 과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금리가 다소 올라야 할지도 모른다”는 취지를 밝힌 것이다. 조심스러운 표현이었지만 내용 자체는 충격적이었다. 당사자가 미국의 경제 사령탑이었다는 점이 발언 내용에 무게를 더했다.

문제의 발언이 녹화 인터뷰를 통해 공개됐다는 점도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그의 발언은 지난 4일(현지 시각) 미국의 시사 전문지 애틀랜틱이 주최한 행사에서 나왔다. 이는 해당 발언이 돌발성이 배제된 가운데 나왔음을 말해준다.

실제로 옐런 장관은 자신의 발언이 시장에 미칠 파장까지도 미리 계산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걸 뒷받침하는 합리적 이유도 있다. 주지하다시피 그는 미국의 통화정책을 주관하는 연방준비제도(연준)의 의장을 지낸 인물이다. 기준금리 인상의 효과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을 법한 사람이란 의미다. 그는 연준 의장 재직시 금리 변동에 대한 신호를 시장에 미리 알리는데 충실했던 인물이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 [사진 = 로이터/연합뉴스]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 [사진 = 로이터/연합뉴스]

그의 발언 직후 뉴욕증시는 크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발언이 갖는 무게를 입증해준 셈이다. 그러자 당황스럽다는 듯 옐런 장관은 자신의 발언이 금리 인상을 예측한 것이 아니었으며, 연준에 대한 기준금리 인상 권고도 아니었다는 해명을 내놓았다. 연준 위원들도 줄줄이 지금은 금리 인상을 논할 때가 아니라는 메시지를 발했다.

하지만 현지 언론에서는 옐런 장관이 ‘의도된 실수’를 저질렀다는 분석이 나왔다. 인플레이션 압력과 경기 과열을 우려한 옐런 장관이 제롬 파월 연준 의장에 앞서 미리 시장에 준비태세를 갖추라는 신호를 보냈다는 것이다.

정황상으로도 옐런 장관의 발언은 시장에 대한 저강도 면역주사였다고 볼 여지를 안고 있다. 현재 미국의 각종 경제지표가 그 논거를 이룬다. 최근 미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연준의 기존 목표치였던 2%선을 넘어섰다. 지난 3월 기준으로 보면 2.6%에 이르러 있다.

미국의 올해 1분기 경제성장률(전기 대비 연율)이 6.4%에 이르렀다는 점도 현재의 경기상황을 말해주는 중요한 요소다. 기대 인플레이션이나 1분기 이후 성장률 전망치도 지금과 비슷하거나 그 이상을 나타내고 있다.

누가 봐도 미국 경제가 과열 조짐을 드러냈다고 볼 여지는 충분하다. 이런 상황에서도 조 바이든 행정부는 천문학적인 재정 투입을 계획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의회 통과를 기다리고 있는 4조 달러(약 4484조원) 이상의 재정 지출안이다.

파월 의장이 아무리 비둘기파적 입장을 유지하려 애쓴다 해도 이 정도 상황이면 내심 금리 인상 카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옐런 장관의 발언이 향후 금리 인상 신호를 발신하는 과정에서 연준이 느낄 부담을 미리 덜어주었다고 해석될 수도 있다. 일련의 과정이 ‘짜고 치는 고스톱’일 수 있다는 얘기다.

미국에서는 인플레이션 압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진지 오래다. 10년 만기 국채 금리가 머지않아 지금의 배 이상으로 뛸 것이란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주식 등 각종 자산에 거품이 끼어 있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이 모든 우려를 해소할 거의 유일한 방법은 중앙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일 수밖에 없다.

[그래픽 = 연합뉴스TV 제공/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TV 제공/연합뉴스]

문제는 그 같은 경제 환경이 미국에만 국한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우리 역시 코로나19 팬데믹이 장기화되면서 전에 볼 수 없었던 수준의 재정 투입을 연이어 실행해왔다. 아직은 아니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코로나19가 진정세에 접어들면 보복 소비가 나타날 가능성이 커진다.

더구나 우리의 경우 풍부해진 시중 유동성이 생산성 있는 곳에 투자되기보다 부동산이나 가상화폐 등 투기성 짙은 곳으로 흘러드는 현상을 겪고 있다. 언젠가는 자산 거품이 꺼지면서 일대 혼란이 초래될 가능성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한국은행은 미국의 최근 동향을 긴장어린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미국이 기준금리를 0.25%포인트만 올려도 상단 기준으로 우리와 같은 0.5% 수준에 이르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당장은 아니겠지만 외국인 자금 이탈, 그에 대한 우려 증가 속의 금융시장 혼란이 연쇄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

특히 우려되는 것이 지난해 말 기준 1700조원에 이른 가계부채다. 최근의 가계부채 증가는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수반된 소상공인들의 어려움과 긴밀히 연결돼 있다. 이들이 짊어진 부채는 당장은 상환 유예로 인해 부각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백신 공급으로 언젠가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면 또 하나의 뇌관이 될 수밖에 없다.

정부도 그 점을 감안해 가계부채 억제 정책을 서둘러 시행하고 있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제도의 차주(借主)별 관리를 강화하는 방안도 그 일환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가계대출을 마냥 조일 수만은 없다는 게 문제다.

중요한 것은 정밀한 대출 관리다. 상환 능력을 감안해 대출한다는 대원칙을 유지하되 미래의 소득에 대한 기대치에 가중치를 두는 것 등이 그에 해당한다. 그래야만 현재 소득이 상대적으로 적은 젊은 층들도 내 집 마련 등의 꿈을 간직한 채 사회생활에 임할 수 있다.

시장을 향해 미리 적절한 신호를 보내는 것도 고려해볼 만한 일이다. 낙관적 진단으로 시장을 안정시키는 것도 좋지만, 위기 징후가 보일 때는 그에 맞게 적절히 경고를 발하는 것이 더 유익할 수 있다. 경제정책 당국자의 ‘의도된 실수’도 그런 방책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대표 필자 편집인 박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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