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최진우 기자] 미국의 금리인상 가능성이 한층 커졌다. 중앙은행이 테이퍼링(국채 등 자산매입 축소)을 시작한 뒤 그 다음 단계로 기준금리 인상을 시도할 확률이 보다 높아졌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되려면 물가상승 행진의 지속이라는 전제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그러나 시장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미국 내 인플레이션 압력의 증대다. 인플레 압력 증대는 연방준비제도(연준)의 금리 인상 가능성을 높이는 직접적 요인이다. 다만, 어디까지가 내압의 한계 지점인지는 연준이 판단할 일이다. 이 점 때문에 시장은 연준의 반응을 주의 깊게 살피고 있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시장을 긴장시킨 결정적 요소는 12일(현지시각) 미국 노동부가 발표한 4월 소비자물가지수(CPI)다. 올해 4월 미국 CPI는 전년 동기 대비 4.2%, 전월 대비로는 0.8% 상승했다. 이 정도의 소비자물가 상승은 십수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전년 동기 및 전월 대비 상승률은 각각 2008년과 2009년 이후 기록된 가장 높은 수준이다.

미국의 4월 CPI 상승률은 월가의 예상을 크게 뛰어넘었다. 이로 인해 시장은 특히 더 놀라는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 발표가 나오기 직전 월가에서 형성된 4월 CPI 관련 컨센서스는 전년 동기 대비 3.6%, 전월 대비 0.2%였다.

당초 월가에서는 예상치 만으로도 기존의 완화적 통화정책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왔었다. 그 정도의 물가흐름만 조금 더 이어져도 연준이 출구전략을 모색할 것이라 내다보았던 것이다.

그랬던 분위기를 감안하면, 이번 노동부 발표 내용은 ‘서프라이즈’급에 해당한다. 노동부 발표 내용 중에서도 특히 주목해야 할 부분은 근원물가 상승률이다. 연준이 금리 인상의 전제조건 중 하나로 그토록 강조하는 물가목표가 근원물가 수준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다. 근원물가는 가격 변동성이 큰 에너지와 음식료품을 제외하고 산정한 물가를 지칭한다. 연준이 설정해둔 근원물가 목표 기준은 2%이다.

다만, 연준은 최근 들어 이 기준을 보다 폭넓게 해석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장기간에 걸쳐 목표 수준 이상으로 물가가 고공행진을 할 경우라야 금리 인상을 고려하겠다는 게 연준의 요즘 입장이다.

이날 발표된 4월 근원물가의 전년 동기 대비 인상률은 3%나 됐다. 전월 대비로는 +0.9%를 기록했다. 1년 전 대비 3%는 연준의 기존 물가수준을 크게 뛰어넘는 수준이다. 이 정도면 정부와 통화정책 당국이 아무리 ‘일시적 현상’이라는 주장을 펼쳐도 시장이 선뜻 수긍하기 어려울 수 있다.

미국 정부와 통화정책 담당자들은 지난 3월 CPI가 발표됐을 때도 물가 상승이 일시적 현상일 뿐이라는 반응을 내놓았었다. 고물가가 추세적 현상으로 인식될 때까지는 테이퍼링이나 금리 인상을 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발신함으로써 시장을 안정시키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미 정부나 연준의 그 같은 메시지는 갈수록 무게를 잃어가고 있는 게 사실이다. 당국을 못 믿는다기보다 그 전망이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는 시장의 의구심이 점점 커져가고 있는 게 그 원인이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회의 모습. [사진 = 연합뉴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회의 모습. [사진 = 연합뉴스]

이를 입증하듯 4월 CPI가 발표되자 뉴욕증시에서는 3대 주요지수들이 2% 내외의 하락세를 보였다. 이와 함께 달러화 가치가 올라갔고, 1.6%대를 살짝 웃돌던 미국의 10년물 국채 금리도 1.7%를 넘보는 수준으로 급등했다.

미국의 금리인상 가능성이 커지면 크게 압박을 받을 곳 중 하나가 한국은행이다. 당장은 아닐지라도 미국이 연내에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하면 한은은 심각한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미국이 ‘베이비 스텝’으로 금리 인상을 조심스럽게 실행한다고 가정할지라도, 단 한차례의 인상만으로 미국과 우리의 기준금리는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다. 현재 미국(0.00~0.25%)과 한국(0.50%)의 기준금리는 상단 기준으로 0.25%포인트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

이로 인해 여차하면 한·미 간에 금리 역전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역전 방지를 위해 금리를 올리자니 한은으로서는 아직 냉기가 가시지 않은 국내 경기와 가계 부채 등을 줄줄이 염려해야 할 판이다. 반면 그대로 있으면 외화자금 이탈이 염려되는 상황을 맞게 된다.

국내 전문가 일부는 연준이 올해 하반기 금리 인상을 단행한다면 한은도 따라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 국내 물가 역시 미국에는 못 미치지만 심상치 않은 흐름을 보이면서 금리인상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한은 내부에서도 자산가격 상승 등을 고려해 선제적으로 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조심스레 나오고 있다.

한은이 느끼는 고민의 깊이와 대응책 등은 통화정책 방향을 논의하기 위해 이달 27일 소집되는 금융통화위원회 회의를 통해 드러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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