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선심성 현금 살포 움직임이 도를 넘어도 한참 넘어서고 있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기가 닥치자 또 다시 전국민 재난지원금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것이다. 재난지원을 횟수로 치면 벌써 다섯 번째다. 코로나19 팬데믹 1년 남짓 동안 이미 네 번이나 재난지원금이 살포됐다. 그러고도 양에 안 차는지 이제 또 한 차례 전국민에게 재난지원금을 뿌리겠다고 나서고 있다. “재정은 화수분이 아니다”라는 경제사령탑의 과거 경고는 귓전으로 듣고 만 듯하다.

5차 재난지원금 지급을 주도하는 쪽은 여당이다. 하지만 제반 정황을 보면 여당의 움직임은 청와대와의 교감 속에 이뤄지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교감을 넘어 문 대통령이 현금 살포를 독려했다고 볼 정황도 있다. 공식 석상에서 “국민 위로”니 “소비 진작”이니 하면서 지원금 지급 검토를 언급한 게 그것이다. 발언 내용이 일괄지원을 시사했다고 볼 여지도 다분했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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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국가재정전략회의 석상에서 나온 대통령의 발언도 그 연장선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문 대통령은 세수 상황을 거론하면서 “추가적인 재정 투입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한다”고 말했다. 머뭇거리는 재정관리 당국을 향해 아끼지 말고 재정을 투입하라는 주문을 낸 것으로 해석될 만한 발언이었다.

대통령이 분위기를 띄워주자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신바람이 난 듯 돈 쓸 궁리에 여념이 없다. 대선이 수개월 앞으로 다가왔으나 지지율이 뜨지 않자 만만한 현금 살포 카드를 다시 꺼내들었다고 볼 수 있다. 여당은 지난해 4·15 총선을 앞두고도 전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을 약속해 톡톡히 재미를 봤다. 그 바람에 작년의 1차 재난지원금은 홍남기 경제부총리의 선별지원 주장을 묵살한 채 일괄지원 방식으로 집행됐다.

당시 얻은 학습효과 때문인지 여당은 이번에도 다시 한 번 현금 살포 구상을 구체화하고 있다. 그 내용도 꽤나 현란하다. 전국민에게 재난지원금을 주는 한편 코로나19로 피해를 본 자영업자들에게 제도적으로 손실을 보상하는 방안도 강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더해 피해업종에 대해 선별지원하는 방안도 함께 고려하고 있다 한다. 내세우는 명분은 내수 부양과 소상공인 지원 등이다.

사실 재난지원을 두고 횟수를 따지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다. 필요하다면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지원해야 한다. 단, 이는 적재(適財)가 적소에 배분된다는 것을 전제로 성립되는 논리다. 돈을 쓰되 코로나19로 피해를 입은 이들을 꼼꼼히 선별해 보다 충분한 지원을 함으로써 재정 운용의 효율성을 최대한 높여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지금 여권이 구상 중인 재정 투입 방안은 효율성과 거리가 멀어 보인다. 전국민 재난지원을 통해 내수를 진작하겠다고 하지만 그런 논리는 성립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거듭된 지적이다. 심지어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마저도 전국민 재난지원금의 경기부양 효과가 미미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KDI 분석이 맞다면, 여권의 이번 구상은 효과도 별로 없이 재정 상황만 악화시키는 결과를 낳을 게 뻔하다. 굳이 효과를 따지자면 포퓰리즘 정책에 의한 여권 지지율 상승 정도일 것이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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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재정 상황은 건강성을 잃은 지 오래다. 문재인 정부 출범 당시 660조원이던 국가채무는 1000조원을 넘보게 됐고, 40%대를 밑돌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50%에 육박하기에 이르렀다. 수준 자체도 문제지만 더 큰 우려를 낳는 것은 국가채무의 증가 속도다. 이에 대해서는 국제적 신용평가사들로부터도 숱한 지적이 있었다. 야당에서는 현 정부의 행태를 두고 ‘재정중독’이란 비판까지 쏟아내고 있다.

정부의 재정 남용은 도의적으로도 옳지 못하다. 말 많고 탈도 많다지만 증세는 그래도 현세대가 감당할 일이다. 그러나 국채 남발로 생긴 부채는 경우가 다르다. 국채를 마구 찍어내며 국가채무를 늘리면 그 부담이 다음 정권, 길게는 우리의 아들딸들에게 돌아간다는 점에서 그렇다. 대개의 국채가 현실적으로 30년 만에 원금 상환 단계에 들어간다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가 새롭게 받을 재난지원금은 지금의 청소년들이 미래에 갚아야 할 돈이다. 더구나 우린 감염병 사태를 핑계 삼아 이미 그들 앞으로 많은 부담을 예약해두었다.

이제 감염병 사태가 어느 정도 진정되어가는 마당이라면 그들에게서 미리 당겨쓴 빚을 조금이라도 갚는 데 최우선 순위를 두어야 할 것이다. 그건 선심이나 배려가 아니라 현 세대에게 주어진 최소한의 도리다.

대표 필자 편집인 박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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