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은행들의 대출 문이 급속히 좁아지고 있다. 이달부터 개인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40% 규제가 확대 시행된데 이어 은행들이 금리 인상과 신용대출 위주로 한도 축소에 나서고 대출 판매를 중단하는 등 대출 문턱을 높이고 있다.

은행권의 이 같은 움직임은 코로나19 충격파로 시작된 초저금리 환경을 끝내는, 연내 금리 인상을 앞두고 금융당국이 은행권에 한발 앞서 대출 속도 조절에 나설 것을 강력히 주문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리 상승 리스크에 미리 대비해야 한다는 게 당국의 의도지만, 정작 돈이 필요한 서민들은 은행에서 제대로 돈을 빌리지 못하고 저축은행·보험사 등 제2금융권으로 밀려날 게 우려된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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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권에 따르면 한국은행이 아직 기준금리를 올리지 않았지만 은행들은 가산금리를 조정하는 방식으로 대출 금리를 인상하고 있다. 가산금리는 은행들이 대출 관리 비용과 업무 원가 등 다양한 조건을 고려해 자체적으로 결정한다. 이에 따라 기준금리를 동결하더라도 가산금리는 은행의 자율적 판단에 따라 올릴 수 있다는 말이다. 신용도 1~2등급의 경우 가산금리(신용대출)는 신한은행이 지난 1월 2.39%에서 6월 2.56%, KB국민은행이 2.60%에서 2.87%, 농협은행이 2.21%에서 2.35%로 각각 올렸다. 같은 기간 우리은행은 가산금리를 소폭 내렸지만 우대금리 혜택을 더 크게(0.74→0.36%) 줄여 결과적으로 대출자의 부담은 더 늘어나는 셈이다. 

대출 한도도 축소하고 있다. 농협은행은 6일부터 개인 신용대출의 최고 한도를 기존 2억5000만원에서 2억원으로 하향 조정했다. ‘신나는 직장인 대출’과 전문직 대출 등 고소득자와 전문직을 대상으로 한 신용대출 한도가 그만큼 줄어든다. 농협은행은 앞서 지난달 15일부터 전세대출과 신용대출, 주택 외 부동산담보대출의 우대금리를 0.1∼0.2%포인트(p) 축소하는 금리 조정을 한 데 이어 이번에 대출 한도를 아예 낮췄다. 은행이 특정 대출의 한도를 낮추는 것은 높은 금리를 주고라도 많은 돈을 빌리고자 하는 사람을 원천 봉쇄하기 때문에 금리 조정보다 더 강한 조절 효과가 있다.

농협은행은 지난달 15일부터 주택담보대출 가운데 모기지신용보험(MCI) 대출, 모기지신용보증(MCG) 대출 상품 판매도 중단했다. MCI·MCG는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때 동시에 가입하는 일종의 보험이다. 소비자는 보험료를 내고 최우선 변제금액만큼 더 대출받을 수 있다. 최우선 변제금액은 지역별로 서울 5000만원, 용인·화성·김포·세종 4300만원 등이다. 때문에 MCI·MCG 상품을 없애면 대출 한도가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 즉, 서울에선 주택담보대출 한도가 5000만원 축소된다는 얘기다. 

대출 고삐를 죄는 것은 다른 은행들도 마찬가지다. 하나은행은 지난달 30일부터 관리비 대출, 솔져론, 하나원큐 중금리 대출, 하나원큐 사잇돌 대출 등 4종의 신용대출 신규 판매를 중단했다. 우리은행도 지난달 14일부터 5개 신용대출 상품의 금리 우대 혜택을 0.1~0.5%포인트 축소한 데 이어 이달 12일부터는 우대금리를 받을 수 있는 실적 기준을 높일 예정이다. 그만큼 우대 대상이 줄어든다. 신한은행도 지난달부터 3000만원 초과 한도의 마이너스통장 연장·재약정 때 약정 기간의 한도 사용률 혹은 만기 3개월 전 한도 사용률이 모두 10% 미만일 경우 최대 20% 한도를 감액했다.

은행들이 이 같이 대출 줄이기에 나선 것은 강화된 대출 총량 규제 때문이다. 금융위원회는 코로나19 여파로 급증한 가계부채 관리를 강화하기 위해 올해 가계대출 증가율을 5~6% 안팎으로, 내년 중에는 코로나19 이전 수준인 4%대로 낮출 것을 금융권에 주문했다. 지난해 가계부채 증가율은 7.9%였다. 은행들은 목표치에 맞추기 위해 매달 대출 총량을 관리하고 있다. 농협은행의 경우 올해 상반기 가계대출 증가율이 지난해 말 대비 5.8%에 이른다. 금융당국이 은행들에 권고한 올해 연간 증가율 5%를 상반기에 이미 넘기는 바람에 대출 죄기에 ‘총력전’을 펴고 있는 것이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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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올 들어 각국 경기 회복세가 눈에 띄게 나타났고 ‘제로금리’ 시대가 종결될 조짐을 보이면서 금융당국의 은행 압박은 더욱 강해지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지난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 인상 시기가 앞당겨질 수 있다고 내비쳤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올해 안에 기준금리를 한 두 차례 올릴 것이라고 공식적으로 언급했다. 이런 상황에서 가계대출이 가파른 증가세를 이어간다면 금리가 조금만 올라도 대출자 이자 부담이 크게 가중된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지난 1일 시중은행장과 만나 “불요불급한 가계대출 취급을 최소화해달라”고 당부했다. 도규상 금융위 부위원장이 2일 “버블이 끝없이 팽창할 수 없음은 당연한 이치”라며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풍부한 유동성과 저금리 환경이 변화해갈 것이라는 예상이 점차 현실화되고 있다. 이제 금리상승 리스크 관리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부의 가계대출 관리 방침에 따라 이달부터는 DSR 규제도 대폭 강화됐다. 규제지역에서 6억원이 넘는 집에 대해 주택담보대출을 받거나 이미 받은 대출을 합쳐 1억원이 넘는 신용대출을 받으면 DSR 40% 규제가 적용된다. 소득에 따라 대출 한도가 크게 줄어들 수 있고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을 모두 끌어쓰는 ‘영끌’ 대출도 어려워지는 셈이다.

서민들의 은행 대출 문턱이 크게 높아지면서 대출을 받으려는 실수요자는 저축은행·카드론 등 금리가 상대적으로 높은 제2금융권으로 몰릴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2금융권의 개인별 DSR 한도는 60%로 은행(40%)보다 높아 추가 대출이 가능한 까닭이다. 이는 또다시 저소득·저신용자의 연쇄 대출 제한으로 이어지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은행 대출을 받던 사람들이 2금융권으로 몰리면 기존에 2금융권을 이용하던 저소득·저신용자에 대한 대출 여력이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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