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말기로 접어들면서 경제정책 당국 간에 손발이 따로 노는 모양새가 나타나고 있다. 통화완화 기조의 정상화를 위한 금리인상을 예고해 놓고는 확장 재정정책을 펴질 않나, 가계부채를 줄이겠다 해놓고 서민들의 대출 문턱은 낮추고 친환경차 세제혜택 연장은 적극으로 검토하면서 전기차 충전요금을 올리는 등 각 정책 당국들이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 1일 임시 국무회의를 열고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상생과 피해회복 지원을 위해 33조원 규모의 ‘2021년도 제2차 추가경정예산안’을 의결했다. 2차 추경은 올해 더 걷히는 추가 세수 31조 5000억원 등을 재원으로 한다. 주요 내용은 코로나19 피해지원 3종 패키지에 15조7000억원, 백신·방역 사업에 4조4000억원, 고용·민생안정에 2조6000억원, 지역경제 활성화에 12조 6000억원 등을 배정한다는 것 등이다. 기정예산을 활용한 취약계층 주거·생계 부담 대책까지 포함하면 전체 규모는 모두 36조원 수준에 이른다. 기획재정부는 지난달 28일 내놓은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서 추경예산을 편성해 상생국민지원금과 소상공인 피해지원, 상생소비지원금으로 구성된 코로나19 극복 3종 패키지를 집행하겠다고 밝혔다. 이른바 ‘코로나 극복 상생 3종 패키지’를 통해 소비를 살리고 내수에 활기를 불어넣겠다는 것이 기재부의 복안이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사진 = 연합뉴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사진 = 연합뉴스]

반면 한국은행은 기준금리 인상을 예고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달 24일 “연내 기준금리 인상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가 기준금리 인상 시점과 관련해 공식적으로 ‘연내’라고 못박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총재는 “지금 금리 수준은 지난해 코로나19 이후 실물경제가 급격히 위축되기 시작했을 때 상황에 맞춰 이례적으로 (유동성을) 확대한 것”이라며 “경기 회복세에 맞춰 통화정책을 정상화하는 것은 당연한 과정”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다양한 정책을 통해 유동성을 공급하는 반면 중앙은행은 돈줄 조이기에 나서면서 엇박자 정책을 펴고 있는 셈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와 이 총재는 정부가 여러 가지 사항을 고려해 추경안을 편성하고 한은도 나름대로 금리인상 여지를 보이고 있는데 이를 정책 간 엇박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강하게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전국민 대상’ 소비 진작책을 추진하면서 과도한 유동성 공급이 물가상승 압력을 부추길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나온다. 한은의 연내 금리인상 구상 이유엔 가파른 물가 상승도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는 돈을 풀어 물가를 자극하고 있고, 한은은 계속해서 긴축 신호를 보내고 있다”며 “재정과 통화정책이 상충되는 모습을 보인다”고 지적했다.

가계부채를 안정화하려는 방안은 서민가구의 대출 문턱을 낮추는 정책과 정면 충돌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이달 1일부터 대출자 단위의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40% 적용을 확대해 개인별 대출 규제를 강화했다. DSR은 대출 받으려는 사람의 상환 능력을 평가하는데, 1년 소득 중에 원금과 이자(원리금)를 갚기 위해 쓴 돈을 비율로 표시한 것이다. 예컨대 연 소득이 1억원인 A씨가 갚아야 할 원리금이 5000만원이라면 DSR은 50%라는 얘기다. 대출에는 주택담보대출과 학자금, 마이너스통장 대출, 자동차 할부, 카드론 등이 모두 포함된다.

주택담보대출 규제는 이달부터 투기지역과 투기과열지구 9억원 초과 주택에만 적용하던 것에서 전 규제지역(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조정대상지역) 6억원 초과 주택으로 확대했다. 또 소득과 상관없이 1억원 넘게 신용대출을 이용한다면 40% 규제를 받게 된다. 다만 총대출액을 계산할 때 전세자금 대출과 예·적금 담보대출, 보험 계약 대출은 제외한다. 햇살론처럼 정부에서 제공하는 대출과 300만원 미만의 소액대출도 예외로 한다. 청년층의 경우 소득이 적어 DSR 규제로 피해를 볼 수 있는 까닭에 계산 시 미래소득을 추가로 반영한다. 올해 1분기 말 기준 가계 부채가 2045조원까지 치솟는 등 부실화 우려가 제기되자 지난 4월 내놓은 가계부채 관리 방안에 따라 시행하는 대책들이다. 정부는 이를 통해 올해 가계 부채 증가율을 5~6% 수준으로 낮추기로 했다.

홍남기 기획재정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 [사진 = 연합뉴스]
홍남기 기획재정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 [사진 = 연합뉴스]

하지만 정부는 서민들의 대출 확대를 유도하는 정책도 함께 내놨다. 서민이 받을 수 있는 보금자리론과 디딤돌대출 한도를 상향하고, 햇살론 등 서민금융 공급을 확대한다는 것이다. 국토건설부는 디딤돌 대출, 곧 주택 구입자금 기금 대출의 지원 한도를 상향했다. 디딤돌 대출은 기본 2억원, 2자녀 이상은 2억6000만원까지 지원되지만 지원액이 5000만원씩 올라가고 보금자리론 지원 한도도 3억원에서 3억6000만원으로 높였다. 여기에다 오는 26일부터 저신용·저소득층이 은행권을 통해 이용할 수 있는 서민금융상품 햇살론뱅크가 출시돼 하반기에 3000억원이 공급될 예정이다. 가계부채가 문제시되는 것은 돈을 못 갚은 사람이 많아지는 경우인데, 서민들에게 돈을 더 빌려주면서 가계부채를 관리하겠다고 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친환경 자동차 정책도 갈팡질팡하고 있다. 현재 전기차와 수소차는 140만원, 하이브리드카는 40만원 한도 내에서 취득세를 감면받을 수 있지만 관련 혜택은 올해 12월 31일 종료된다. 하이브리드카를 대상으로 최대 100만원을 감면해주는 개별소비세 혜택도 올해까지 적용된다. 기재부는 미래차 산업 육성을 위해 세제 혜택을 내년 이후까지 연장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기로 했다.

하지만 한국전력은 7월부터 전기차 충전요금을 인상했다. 지난달 말까지 50% 적용되던 전기차 충전료 특례 할인이 25%로 줄어든 것이다. 전기차 충전용 전기요금 기본료가 ㎾당 완속충전기(7㎾ 기준)는 1195원에서 1782.5원으로, 급속충전기(50㎾)는 1290원에서 1935원으로 오른다. 70kWh급 배터리를 장착한 차량을 급속으로 완전히 충전할 경우 2만5000원이 필요한 셈이다. 결국 내연기관차의 30~40%이던 충전 비용이 40~50% 선까지 오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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