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수출국기구(OPEC)의 리더 격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주요국인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이 원유 생산량을 둘러싸고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오랜 동맹관계였던 두 나라의 불협화음이 국제유가의 불안요소로 등장한 것이다. 가뜩이나 원자재 가격 폭등에 따른 인플레이션 압력이 가중되는 판국에 유가의 고공행진은 코로나19를 딛고 경기회복을 위해 총력전을 펼치는 글로벌 경제의 발목을 잡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는 만큼 세계가 예의주시하고 있다.

사우디와 UAE의 충돌은 이달 초 열릴 에정이던 OPEC과 러시아 등 비OPEC국들의 협의체인 ‘OPEC 플러스’(OPEC+)의 증산 회의가 UAE의 반대로 취소되면서 표면화됐다. OPEC 13개 회원국과 러시아 등 비회원 산유국 10개국은 2016년 말부터 저유가 극복을 위해 산유량을 감산하거나 증산을 논의하는 OPEC+ 체제를 출범시켰다. 하지만 OPEC+는 이달 들어서만 세 차례에 걸쳐 생산량에 대해 논의했지만 결론을 내지 못했다. 이들은 내년 4월인 감산 시점을 내년 말까지 연장하는 대신 생산량은 기존보다 늘리는 방안을 고려 중이지만 UAE가 손사래쳤다. 이에 따라 현재 배럴당 70달러 중반인 유가는 9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는 비관적 전망이 나온다. 제프리 커리 골드만삭스 원자재 리서치 담당은 CNBC에 “올 여름 85~9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며 “OPEC+ 합의가 늦어질수록 가격이 더 뛸 것”이라 내다봤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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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EC+는 지난해 5월 코로나19 팬데믹을 맞아 하루 1000만 배럴의 석유를 감산하기로 결정했고 2022년 4월까지 감산폭을 줄이기로 했다. 현 감산폭은 하루 580만배럴 수준이다. OPEC+는 지난 2일 회의에서 올해 8~12월 하루 40만 배럴을 증산하고 감산 종료 기한을 4개월 앞당긴 올 12월에 끝내는 데 대부분 동의했다. 하지만 UAE가 자국의 원유 생산량을 높여주지 않으면 동의할 수 없다고 끝까지 버텨 합의가 깨졌다. UAE는 자국 기준선(320만 배럴)에 맞출 경우 원유 생산을 다른 나라들 평균치(22%)보다 훨씬 많이(35%) 줄여야 한다며 기준선을 380만 배럴로 높여줄 것을 요구했다. 사우디와 러시아의 경우 실제 생산량과 기준선의 격차가 5%지만 UAE는 18%로 훨씬 높은 감산량을 할당받았다는 주장이다. 사우디는 이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지난해 4월 감산 합의 때 UAE가 기준선 320만 배럴을 인정해 놓고 이제 와서 딴소리하는 것은 다른 나라들과의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의미다. 이 소식에 미 서부텍사스산 원유(WTI)가 13년 만에 최고치인 배럴당 75달러를 돌파하기도 했다.

UAE가 전통적 우방국인 사우디에 대드는 까닭은 탈석유 전략에서 비롯됐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사우디는 2016년 ‘비전 2030’ 전략을 발표하고 석유에 의존하지 않는 경제 건설을 선언했고 UAE 등 중동 국가들도 비슷한 전략을 세우고 있다. 특히 UAE는 지난해 아랍 국가 중에선 처음으로 화성탐사선 ‘아말’을 발사했고 관광 등 다른 산업 육성에 힘쓰는 등 탈석유 시대를 선도하고 있다. UAE가 탈석유 경제를 세우려면 유가가 비쌀 때 최대한 많이 캐서 팔아야 하는데, OPEC+가 증산을 들먹이면서도 자국의 생산량을 불공정하게 낮춰 잡아 화가 났다는 얘기다.

UAE의 원유 매장량은 980억 배럴에 이른다. 하루 500만 배럴씩 캐도 50년 이상 캘 수 있는 양이다. UAE 정부 관계자는 지금 당장 원유 수요가 급감한다고 보지 않지만 수요와 시세가 있을 때 최대한 많이 팔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UAE의 아부다비국영석유회사는 지난해 하루 원유생산을 400만 배럴에서 500만 배럴로 끌어올리기 위해 1220억 달러(약 139조원)를 쏟아부었다.

사우디와 UAE의 갈등은 원유 생산에서만 드러난 게 아니다. 예멘 내전 때부터 균열은 시작됐다. 예멘 내전은 후티족 반군을 지원하는 이란(시아파)과 예멘 정부군을 지지하는 사우디(수니파) 간 대리전 양상으로 진행됐다. UAE는 사우디를 도와 2015년 수니파 9개국과 연합해 내전에 개입했다가 2019년 군대 대부분을 철수시켰다. 사우디만 외롭게 이란과 후티족 반군에 맞서 싸우게 만들었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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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외관계에서도 둘의 입장은 엇갈린다. 사우디와 UAE는 2017년 “테러리즘을 지원한다”는 이유로 카타르와 단교했다가 사우디 주도로 지난해 초 국교를 정상화했다. UAE는 사우디에 동의했지만, UAE의 토후국인 아부다비는 “화해가 너무 빠르다”며 난색을 표했다. 반면 UAE가 지난해 9월 이스라엘과 국교정상화(아브라함협정)에 나선 것은 사우디에 눈엣가시였다. 사우디는 이스라엘과는 아직 관계정상화를 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사우디가 글로벌 기업에 중동 본부를 리야드로 이전하라고 압박한 것도 UAE를 자극했다. 사우디는 UAE의 또 다른 토후국인 두바이에 거점을 둔 글로벌 기업에 “리야드로 본사를 옮겨오지 않으면 정부계약을 끊겠다”고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OPEC+ 회의에서 UAE의 이런 앙금이 폭발했다는 것이다. 압둘칼레크 압둘라 두바이 정치과학 교수는 “UAE는 40년 간 OPEC에서 사우디의 의도를 잘 따라갔다”며 “그러나 UAE가 이제는 자체 원유 생산 할당량에 대해 단호하게 대처하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다만 올 여름이 끝나기 전에 OPEC+가 증산 규모에 합의할 가능성도 있다. 원자재 투자회사 어게인캐피탈은“(감산한) 현 상태를 이어가지는 않을 것”이라며 러시아가 원유 증산을 주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OPEC+가 원유 생산을 늘리지 않는다면 미국이 나설 가능성도 있다. 컨설팅 업체인 리포 오일 어소시에이츠의 앤드루 리포 대표는 “유가가 90달러가 된다면 페르미안뿐 아니라 바켄과 로키에서의 시추가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곳들은 미국의 거대 셰일오일 개발 지역이다. OPEC+가 원유 증산에 실패해 유가가 오르면 미국이 셰일오일 생산을 늘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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