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 돌아 또 다시 100% 지급인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재난지원금(상생국민지원금) 전국민지원안을 밀어붙이려 하고 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80% 지급안을 고수하자 “재정독재”라는 독설까지 퍼부으며 압박을 가했다. 그래도 물러서지 않자 일부 여당 의원들은 부총리직 퇴진 요구까지 하고 나섰다. 강하게 밀어붙이면 홍 부총리가 이전처럼 여당의 방침을 수용할 것이란 인식이 그 바탕에 깔려 있는 것 같다. 이런 와중에 우군인 듯 했던 김부겸 총리마저 슬쩍 여당 쪽으로 돌아서고 말았다. 홍 부총리로서는 또 한 번 사면초가에 몰린 셈이다. 주지하다시피 80% 지급안은 당·정협의를 통해 내려진 결론이었다.

하지만 여당은 전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을 당론으로 확정했다. 지난 14일부터 본격화된 국회의 2차 추경정예산안 심사를 앞두고 내린 결정이었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송영길 민주당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전국민지원 방안에 합의 아닌 합의를 해준 것을 빌미 삼으려는 기류도 엿보인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사진 = 연합뉴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사진 = 연합뉴스]

하지만 추진 주체가 누구이든 전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안은 재정 운용의 정치화란 근본적인 문제 제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재정 운용의 정치화는 망국병인 포퓰리즘과 직결된다. 이는 재정 운용을 통한 정치적 이상 실현과는 별개의 문제다. 굳이 목적성을 따지자면 표심을 향한 부당한 구애라 할 수 있다.

전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이 옳지 않다는 것은 이제 삼척동자도 다 알 만큼 널리 공유돼 있다. 포괄지원은 국가의 재정건전성을 해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도의적으로도 옳은 일이 아니다. 넘쳐나는 나랏빚을 후대의 부담으로 떠넘기면서 당장 손에 쥔 약간의 현금마저 있는 대로 쓰고 보자는 심사의 발로로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부·여당은 재난지원금 지급 명분으로 국민 위로와 소비 진작을 내세우지만 합리성과는 거리가 멀다. 재난지원금을 위로 차원에서 나눠준다는 건 그 자체로 난센스다. 국민들의 주머니에서 나온 돈이 되돌려지는데 불과하다는 게 그 이유다. 재정을 뿌려댈 바에야 처음부터 세금을 덜 걷는 게 더 낫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구태여 나눠준다 하니 ‘안 받으면 손해’라는 생각에 지원금을 받을 뿐 국민들이 대통령이나 정부에 감사한 마음을 갖는 것도 아니다. 전국민 지원이 소비 진작에 도움이 안 된다는 건 이미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분석을 통해 확인된 바다. KDI가 1차 지원금 용도를 분석한 결과 소비로 이어진 것은 전체의 30%뿐이었다.

특히 중위소득 이상의 계층에 주어지는 재난지원금은 대부분 저축을 늘리는데 쓰인다는 연구결과도 나와 있다. 이는 재난지원금 지급과 관련한 기재부 초안이 번번이 소득 하위 50% 지급에 맞춰지는 이유가 되어왔다. 소득 하위 50%선 이상의 계층에 대한 재난지원금 지급은 소비 진작 효과를 거의 내지 못한다는 게 기재부의 기본입장이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기재부의 이런 입장은 합리성을 담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1차 재난지원금 지급 당시부터 여당에 의해 묵살됐다. 여당의 100% 지급 주장에 압도된 결과였다. 당시에도 재난지원 방안은 소득 하위 70%안을 거쳐 종국엔 여당의 총선 공약이었던 100% 지급으로 결론지어졌다. 지금의 여권 내 기류도 그와 흡사하게 조성되어가고 있다.

하기야 재난지원금을 80% 국민에게 주든 100%에게 지급하든 큰 차이가 없다고 볼 수도 있다. 정책목표 차원에서 보나, 정치적 목적 면에서 보나 유의미한 차이가 있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비교적 합리성을 담보한 50% 지급 방안에 비하면 두 가지 모두 여당의 정치적 이익에 더 잘 부합한다고 볼 수 있다. 정치적 타산으로 따지더라도 오십보백보란 의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80% 지급안은 일말이나마 선별지원 명분을 담고 있고, 소액일망정 나랏빚을 갚을 수 있는 방안이란 점에서 평가받을 여지를 갖고 있다. 이 점이 홍 부총리가 알량하게 남은 마지막 소신을 지키는 게 여전히 중요하게 여겨지는 이유다. 이번만큼은 홍 부총리가 끝까지 소신을 지켜 ‘홍백기’니 ‘홍두사미’니 하는 오명을 털어내길 기대한다.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일부 여당 의원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자진사퇴하는 것도 소신을 지키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대표 필자 편집인 박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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