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오락가락하면서 시장의 불신을 키우고 있다. ‘재건축 2년 실거주 규제’가 1년 만에 백지화됐고, 임대사업자 등록제도 운영도 재검토하기로 했으며,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 후보지 내 현금청산 기준일을 변경하는 등 정부가 ‘앞장 서서’ 시장의 혼란을 부추기는 양상이다. 특히 촘촘한 정책으로 시장 불안을 해소해야 할 책무를 지닌 정부가 오히려 ‘리스크’의 주체로 등장하면서 정부 정책을 철석 같이 믿고 따랐던 일부 시민들만 극심한 좌절감에 빠졌다.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정부가 지난해 6·17 부동산 대책의 핵심사항으로 발표한 재건축단지 조합원의 2년 실거주 의무가 국회 입법 과정에서 백지화되면서 애꿎은 피해자만 양산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재건축 투기를 막기 위해 투기과열지구 내 재건축단지 조합원이 분양권을 받으려면 2년을 실거주하도록 하는 내용을 ‘도정법’(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개정안에 넣기로 했다. 하지만 1년 만인 지난 13일 열린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는 투기자금 유입이라는 본래 취지보다 세입자 주거 불안 우려가 더 크다는 이유로 관련 내용이 삭제된 도정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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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권 재건축 단지의 경우 2년 실거주 규제가 도입된다는 소식에 집주인들이 부랴부랴 이사를 들어왔고 졸지에 전셋집에서 쫓겨난 세입자들이 속출했다. 이에 시장에서는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며 재건축 2년 실거주 규제가 집값만 들쑤시고 사라졌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 정책은 발표 당시부터 전·월세 시장을 흔들어 집값 불안을 부채질할 것이라는 우려를 낳으며 반대 여론에 부딪혔었다.

결과적으로 집주인들은 실거주 요건을 채우기 위해 기존 세입자를 내보내면서 전·월세 시장 불안을 키웠고 이 규제를 피하고자 강남구 압구정동·개포동, 서초구 반포동 등 강남의 주요 노후 아파트들이 재건축조합 설립 인가를 서두르면서 주요 재건축 추진 단지의 가격이 급등했다. 강남구 대치동의 한 공인중개사는 “전세로 있다가 재건축 2년 실거주 규제 때문에 집주인이 들어온다고 해서 급하게 잠실 쪽으로 월세를 찾아준 경우도 있다”며 “개발 기대감에 재건축 단지 집값은 오르고 2년 실거주 조항 때문에 재건축 주변 단지 전세값도 뛰면서 새 아파트와 구축 아파트 가격이 한꺼번에 올라갔다”고 설명했다. 갈팡질팡하는 정부의 정책을 믿고 따랐던 집주인들과 하루아침에 다른 전·월세를 구하느라 속이 까맣게 타들어갔던 세입자들만 손해를 보게 된 것이다.

정부 부동산 정책이 오락가락 행보를 보인 적은 전에도 있었다. 정부의 임대사업자 제도 운용이 대표적인 사례로 거론된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초기인 2017년 말 서민·무주택자의 주거를 안정시키겠다며 등록 임대주택 활성화 방안을 내놓았다. 세제와 대출 등에서 다양한 특혜를 주면서 민간 임대사업을 권장했다. 하지만 지난해 7·10대책에서 단기임대(4년)와 아파트 매입임대(8년)를 폐지한 데 이어 지난 5월에는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민간 매입임대의 경우 모든 주택 유형에 대한 신규 등록을 폐지하기로 했다. 임대사업자에게 다양한 세제 혜택을 준 게 일종의 조세회피처로 작용했고, 그 여파로 시장에 매물 잠김 현상이 유발돼 집값을 올리는 요인이 됐다는 연유에서였다. 임대사업자들이 무주택자 주거안정 공로자에서 한순간에 투기의 몸통이 된 셈이다. 이에 임대사업자들은 거세게 반발했고 전세 시장에 미치는 충격이나 세입자 보호 문제가 불거지자 정부와 민주당은 임대사업자 제도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기로 한 것이다.

정부 2·4공급대책의 주요 방안인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공공주택사업) 후보지 내 현금청산 기준일을 변경한 것도 시장의 혼란을 불렀다. 투기 차단을 위한 기준일을 번복한 것이 투기의 길을 터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는 지난달 18일 ‘공공주택특별법’ 개정안을 수정 의결하며 공공주택사업 후보지 내 입주권 부여 기준일을 기존 ‘2월5일’에서 ‘국회 본회의 의결일’로 수정했다. 지난달 29일 국회 본회의에서 2·4대책 후속법안이 통과되며 이날까지 공공주택사업 후보지 내 부동산을 취득한 사람들은 아파트 입주권을 받게 돼 오히려 ‘투기를 부추겼다’는 비아냥이 나온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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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하는 공급 대책도 정책 신뢰 추락에 일조했다. 주민 반발로 인해 정부과천청사 유휴 부지 4000가구 주택 공급 계획은 취소됐다. 태릉골프장에 1만 가구를 짓는다는 계획도 공급물량 축소로 사실상 확정되는 분위기다. 주민과 지방자치단체가 반발하면 공급계획도 무산될 수 있다는 선례를 남긴 것이다. 강남구 서울의료원 부지(3000가구), 마포구 서부면허시험장(3500가구), 상암DMC 미매각 부지(2000가구), 용산 캠프킴 부지(3100가구), 여의도 LH 부지(300가구) 등에서도 주민들의 거센 저항이 잇따랐다. 공공재개발도 예외는 아니다. 공공재개발 최대 규모로 꼽히는 동작구 흑석2구역의 경우 전체 토지의 70%를 보유한 비상대책위원회 주민들이 “사람 수로 개발을 밀어붙이는 것은 개인 재산권 침해”라며 공공재개발에 반대하고 있다. 공공재개발이 빌라 시장만 자극해 서민 보금자리를 사라지게 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는 배경이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정부가 수요와 공급 논리로 시장을 바라보지 못하고 표심을 잡기 위한 정책만 남발하다 결국 국민들의 신뢰를 잃어버리고 집값을 과열시켰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투기수요는 억제하고 실수요자를 보호하겠다고 강조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임대차3법 부작용 등 정책적 피해가 고스란히 서민들에게 전가됐다는 얘기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는 “현 정부가 부동산정책을 다루는 것은 잘못된 진단에서 비롯된 약 처방이 부작용을 일으키는 것과 유사하다. 병원에서 의사가 환자에게 감기인줄 알고 약을 처방했는데 알고 보니 원인이 배탈이었다. 그렇다면 잘못 처방된 약은 회수하고 환자에게 맞는 배탈약만 제공해야 하는데 두 가지 약을 그대로 쓰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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