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상장기업들이 주주들에게 공짜로 주식을 나눠주는 무상증자를 ‘남발’하고 있다. ‘무료 주식’으로 주주들의 마음을 얻는 동시에 기업의 가치도 높이고 주가도 띄울 수 있는 만큼 그야말로 ‘누이 좋고 매부 도 좋은’ 까닭이다.

회사를 경영하려면 운영자금이 필요하다. 운영자금을 조달하는 방법은 대략 세 가지가 있다. 은행권에서 빌리는 방법(차입), 회사 명의로 채권을 발행하는 방법(회사채 발행), 주식을 추가로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는 방법(유·무상 증자)이 있다. 이들 방법 중 기업들이 가장 선호하는 것은 유·무상증자다. 은행권에서 대출을 하거나 회사채를 발행하면 막대한 이자를 물어야 하고 원리금 상환도 오랜 기간 끌고 갈 수가 없다. 더군다나 대출과 채권은 재무제표상 부채로 잡히는 탓에 부채가 늘어나는 만큼 재무 건전성은 악화된다. 반면 유·무상증자는 원금과 이자 상환의 부담이 거의 없는 편이다. 배당금 정도가 나가는데 국내 기업의 배당금 수익률(주가 대비 배당금 비율)은 2% 수준에 불과하다. 특히 유·무상증자를 통해 마련한 자금은 재무제표상 자본으로 잡히는 덕에 자본이 증가한 만큼 부채비율이 떨어져 재무건전성은 개선되는 이점이 있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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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코스피가 상승한 올해 상반기 상장법인의 무상증자 발행 규모는 83개사, 9억2800만주에 이른다. 지난해 같은 기간(29개사, 2억5988만주)보다 회사수는 186%, 주식수는 257% 각각 늘어났다. 이 가운데 무상증자 주식수가 가장 많았던 기업은 에이치엘비(5297만주), 제넨바이오(5279만주), 대한제당(4808만주) 순이다.

무상증자는 신주를 발행해 주주들에게 공짜로 배부해 주식 수를 늘리는 것을 뜻한다. 회사의 수익이 많이 났을 경우 기업은 이를 잉여금으로 놔두지 않고 자본금으로 옮기고 싶어 할 때가 있다. 자본금이 늘어나면 그만큼 주식수도 늘어나는데 이를 기존 주주들에게 무료로 나눠주는 것이다. 무상증자를 하면 회사 자산은 변화가 없지만 기업은 늘어난 자본금만큼 회사에 재투자를 할 수 있다. 무상증자는 회사의 자금사정이 좋을 때 가능하기 때문에 시장에 긍정적인 시그널을 주고 주주들은 공짜로 주식을 더 받을 수 있게 돼 자신의 재산이 더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무상증자는 주가 부양에 호재로 작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물론 무상증자가 직접적으로 주가를 끌어올리는 것은 아니다. 무상증자로 유통주식 수가 늘어나는 만큼 주당 가격을 낮춰 거래가 재개된다. 그렇지만 거래 재개 시점에 주주들이 보유한 전체 주식 가치는 무상증자 전과 동일하다. 다만 유통 물량이 늘어나고 주가는 싸지면서 거래가 이전보다 활발해지는 경우가 많다. 이 덕분에 무상증자 자체를 시장에서는 호재로 받아들여 통상적으로 주가가 상승하는 경향이 있다. 게다가 무상증자 권리락(무상으로 신주를 교부받을 수 있는 권리를 뜻하는 무상교부권이 없어진 상태) 이후 주식 값이 싸 보이는 착시 효과로 인해 해당 종목 가격이 상승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최근 무상증자를 공시한 기업들의 주가는 급등세를 타고 있다. 지난 5일 무상증자를 공시한 에이루트는 3일 연속 상종가를 치며 공시 이후 119%나 치솟았다. 노랑풍선 역시 무상증자를 공시한 7일 이후 소폭 상승을 이어오다 22일에는 상한가를 기록했다. 노랑풍선은 공시 이후 44.3% 급등했다. 에코프로에이치엔(20.4%), 큐브엔터(15.6%), 세원이앤씨(7.5%) 등도 무상증자 결정 이후 각각 상승했다. ‘무상증자’ 카드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는 셈이다. 주가를 끌어올리기 원하는 기업이 무상증자에 관심을 보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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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무상증자에 나선 기업 대부분은 보유주식 한 주당 1주 이하의 신주를 발행했다. 하지만 최근엔 더 많은 신주를 발행하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노랑풍선이 구주 한 주당 신주 2주를 주겠다고 제시(무상신주 발행 비율 1 대 2)한 데 이어 15일엔 에코프로에이치엔이 구주 한 주당 신주 3주를 배정하는 무상증자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더욱이 에이루트는 주주들에게 보유주식 한 주당 신주 5주를 발행하기로 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그렇다고 무상증자가 반드시 주가 상승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닌 만큼 지나친 낙관론은 금물이라는 지적도 있다. 실적이 좋지 않거나 자본에 문제가 있는 기업엔 오히려 주식 가치를 떨어뜨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지난 19일 무상증자를 공시한 쎄미시스코는 이후 약 12% 하락을 기록 중이다. 쎄미시스코는 무상증자 사유로 ‘상반기 주가가 급등한 덕분에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무상증자 재원으로 활용하는 자본잉여금에 여유가 있는 편이 아니고 실적도 그리 좋지 않다는 우려감에 주가가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더네이쳐홀딩스 역시 무상증자 공시 다음 날 17%나 곤두박질쳤다. 주가 급락 이유는 테일러메이드 골프그룹 인수 관련 전략적 투자자 선정 및 출자확약서 철회 공시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세원이앤씨는 무상증자 후 주가가 소폭 상승세를 이어오다 권리락으로 주가가 낮아지자 3일 연속 하락을 기록했다. 위더스제약과 영화테크 등도 무상 신주가 상장된 이후 주가가 줄곧 내리막을 타고 있다.

설비투자와 배당 여력이 줄어들 수도 있다. 무상증자에 따른 자본잉여금과 이익잉여금 등이 감소해 기업가치를 한단계 끌어올릴 수 있는 기회를 잃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무상증자로 늘어난 주식이 상장·등록 후 유통시장에 쏟아지면 해당 업체 주식 값이 급락할 가능성도 있다. 증시 전문가들은 무상증자가 주주에게 이익을 환원하고 유동성을 늘린다는 긍정적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최근 시장 분위기처럼 테마주로 인식되며 가격이 무차별 급등하는 것은 비정상적이라고 지적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무상증자는 회계적인 변화일 뿐 기업의 본질적 가치를 바꿀 수 있는 요소가 아니기 때문에 주가에 중립적이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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