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김기영 기자] 정부가 집값이 크게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는 취지의 경고성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이번 경고는 그간 정부 당국자가 산발적으로 집값 거품의 붕괴 가능성을 거론해온 것과 달리, 4개 부처 합동 브리핑 형식으로 발신됐다. 메시지의 구체성과 강도를 높이려는 의도가 그 배경에 깔려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2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홍남기 경제부총리 주재로 합동 브리핑을 갖고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해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발표했다. 이번 발표는 그간 정부가 스무 번 넘게 쏟아낸 부동산대책과는 다른 성격을 띠고 있었다. 새로운 추가대책을 내놓은 것이 아니라 그간 발표된 각종 대책들을 충실히 이행하겠다는 의지를 밝히면서 부동산 추격 매수 자제를 당부하는 게 주 내용이었다. 정부는 또 이번 발표를 통해 지금의 부동산 가격이 심리적 요인과 일부의 가격 띄우기 등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는 인식을 드러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등 정부 부처 수장들이 부동산 관련 합동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홍남기 경제부총리(왼쪽 두번째) 등 정부 부처 수장들이 부동산 관련 합동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이번 발표는 복합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메시지의 효과적 전달을 위한 역할 분담도 눈길을 끌었다. 홍남기 부총리가 집값의 급락 가능성을 경고하면서 추격매수 자제를 당부하자, 노형욱 극토교통부 장관이 주택 공급대책을 설명했고,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가계부채 관리대책을 설명했다. 김창룡 경찰청장도 나서 부동산 투기사범 단속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천명했다.

가장 먼저 마이크를 잡은 홍 부총리는 브리핑을 통해 부동산 시장이 일반의 예상보다 큰 폭으로 조정받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부동산 임대차3법 등의 안착이 필요하다는 전제 하에 그 가능성을 거론했다.

홍 부총리는 최근 들어 집값과 전셋값이 수도권을 중심으로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입을 열었다. 이어 시장 상황, 정책진행 상황, 향후 정책방향 및 정부의 정책실현 의지 등을 밝히면서 시민들의 이해와 협조를 당부하기 위해 브리핑을 갖게 됐다고 설명했다.

우선 홍 부총리는 이전에 비하면 지금의 주택공급 상황에 별 문제가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올해 전국 및 서울 입주 물량이 각각 46만호, 8만3000호로 이전 10년 평균치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2023년 이후엔 매년 50만호 공급이 이뤄진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홍 부총리는 그러면서 심리적 요인이 부동산 시장을 불안케 하고 있다는 인식을 다시 한 번 드러냈다. 그는 “과도한 수익 기대심리를 제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 불법적 실거래가 띄우기를 집값 상승의 한 원인으로 지적했다. 이어 “기대심리와 투기 수요, 불법거래가 가격 상승을 견인하는 상황 하에서는 집값이 지속적으로 오를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행태가 지속된다면 언젠가 집값이 조정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였다.

심리적 요인과 관련, 홍 부총리는 “주택가격전망 CSI 등 지표를 보면 막연한 집값 상승 기대심리가 형성돼 있다“며 ”과도한 기대심리를 제어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주택가격의 적정성을 보여주는 지표들이 이미 최고 수준에 도달했거나 넘어서고 있다고 역설했다.

집값 조정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홍 부총리는 국제기구의 조정 가능성 지적, 한국은행의 연내 기준금리 인상 시사,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전문가 100명 대상 설문조사 결과 등을 제시했다. 홍 부총리가 밝힌 KDI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 전문가중 94.6%는 지금의 집값이 고평가돼 있다고 답했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홍 부총리는 기자들과의 문답을 통해서도 올해 하반기의 조기 청약, 전문가들의 고점 인식, 금리인상과 유동성 관리 강화 등을 고려할 때 집값이 일정 부분 조정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또 부동산 시장의 하향 조정이 이뤄질 경우를 가정하면서 “시장의 예측보다 큰 폭으로 가격조정이 나타날 수 있겠다고 예상한다”고 말했다.

홍 부총리는 주택 구입을 고려할 때 “진중한 결정”을 해달라고 당부하면서 향후 정부는 주택공급 계획을 차질 없이 추진해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동시에 대출 관리를 보다 촘촘히 하면서 부동산 시장 교란행위가 더 이상 발붙이지 못하도록 연중 단속을 실시해나가겠다고 밝혔다.

이날 브리핑에서는 노형욱 국토부 장관과 은성수 금융위원장, 김창룡 경찰청장도 홍 부총리에 이어 차례로 담화를 발표했다. 주 내용은 부동산 공급 대책, 부동산 관련 대출 관리 대책, 시장교란 행위 엄중 단속 등과 관련된 것들이었다.

이날 정부가 정책추진 의지를 담아 합동 담화를 발표했지만 정부 말대로 향후 집값이 크게 조정될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가 집값조정 가능성을 말한 게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 우선 거론된다. 시장이 정부의 경고를 무게감 있게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의미다.

보다 중요한 문제는 정부가 숱한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정책기조를 바꿀 의지를 전혀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미 부동산정책에 대한 신뢰가 하락돼 있는 만큼 정부의 이번 발표는 시장에 유의미한 신호를 주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다수 전문가들은 기존의 부동산 정책이 안고 있는 문제점으로 규제에 의한 수요 억제, 공공주택 공급에 대한 과도한 의존 등을 지적하고 있다. 대출규제 정책 또한 실수요자의 내 집 마련 기회를 박탈하면서 현금 부자들에게만 독점적으로 기회를 부여한다는 비판을 낳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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