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 28일 부동산 관련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기존의 대책 발표와 달리 정부가 전국민을 향해 ‘말씀’을 전달하는 형식이었다. 담화는 홍남기 경제부총리와 부동산 관련 부처라 할 국토교통부, 금융위원회의 수장에 의해 연이어 낭독됐다. 특기할 점은 담화 발표 현장에 경찰청장이 동석했다는 사실이었다. 그 까닭은 담화 발표가 끝나는 즉시 드러났다.

이날의 담화 발표는 잘 짜여진 한 편의 이벤트라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번 담화 발표는 정부 당국자들이 역할 분담에 의해 국민들에게 시장을 교란시키지 말라고 경고를 날리는 한편, 압박까지 가한 이벤트였다. 포문을 연 이는 홍 부총리였다. 그는 지금의 부동산 시장 현황과 정책 추진 방향, 정부의 정책실현 의지 등을 차례로 밝혔다. 이 과정에서 홍 부총리는 부동산 시장이 불안정한 모습을 이어가고 있다고 밝히며 앞으로는 집값이 크게 하락할 수 있다고 은근히 강조했다. ‘하락’이란 표현을 직접 쓴 것은 아니지만 ‘주택가격의 조정 가능성’, ‘큰 폭의 가격조정’을 운운하며 사실상 부동산 가격이 큰 폭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려 애썼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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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적 표현은 삼가려는 분위기가 역력했지만 내용은 매우 강렬했다. 그는 자신이 수차례에 걸쳐 주택가격의 조정 가능성을 거론했다고 설명하면서, 과거 환란 때나 금융위기 때 주택가격이 큰 폭으로 조정된 바 있음을 상기시켰다. 동시에 국제기구나 국책연구기관 등의 지적 및 조사결과 등을 내세우며 지금의 집값이 고평가돼 있다고 주장했다.

홍 부총리는 부동산 시장 불안정의 원인으로 공급 부족만을 지목할 수 없다는 인식을 드러냈다. 나아가 공급 부족은 주요 원인이 아니라는 주장까지 펼쳤다. 그러면서 국민들의 수익기대 심리와 투기수요, 집값 띄우기 등 시장교란 행위를 ‘부동산 시장 왜곡’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홍 부총리는 이런 상황에서는 집값이 지속적으로 오를 수 없다고 진단하면서 추격매수 자제와 ‘진중한 결정’을 주문했다. 동시에 기존의 정책과제를 엄히 이행해나가겠다고 밝혔다. 그는 또 시장 교란행위에 대한 엄단 의지를 드러내면서 부동산 시장 안정은 국민 모두가 협력해야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진 담화에서 노형욱 국토부 장관은 부동산 공급 대책 등을,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대출 관련 대책을, 김창룡 경찰청장은 시장교란 행위에 대한 엄중 단속 방침을 차례로 밝혔다. 특히 김 청장은 담화 말미에 투기근절 의지를 천명하면서 부동산 투기가 구속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상기시키는 한편 시민들의 적극적인 제보를 당부했다.

이상에서 나타났듯이 이번 담화 이벤트는 각 부처 수장들을 앞세워 국민들을 으르고 달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마지막 부분의 경찰청장 담화는 전국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면서 노골적으로 협박한다는 인상을 줄 정도였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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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정부는 이번 담화를 통해 부동산 시장 불안정을 국민 탓으로 돌리면서 기존의 정책 기조를 철저히 유지해나가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고 볼 수 있다. 규제와 단속을 강화해 정책 의지를 온전히 관철시키면 시장이 안정될 것이란 인식이 그 바탕에 깔려 있었던 것 같다.

이번 담화는 역설적으로 지금의 부동산 시장이 왜 이렇게 엉망이 되었는지를 웅변해주었다. 정부 당국의 원인 진단이 크게 잘못돼 있고, 오진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정책을 범정부 차원에서 그대로 강행하려 한다는 것을 동시에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가장 큰 문제는 정책 실패의 원인을 국민들에게서 찾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책에 오류가 없는지 성찰할 기미마저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런 상황에서 집값이 떨어질 것이란 경제사령탑의 거듭된 경고가 시장에 먹혀든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것이다. 지금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부가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실속 없이 시장과 맞서려 하기보다 시장원리에 순응하려는 자세부터 가다듬어야 한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부동산 시장 안정화의 기본논리는 수요 있는 곳에 공급이 따라줘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지금 시장이 안고 있는 문제의 핵심은 집은 많은데 아파트가 부족하고, 아파트 중에서도 서울 아파트, 서울 아파트 중에서는 강남 아파트가 많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이런 기본적 팩트를 인정하지 않고 엉뚱한 데서 문제의 원인을 찾는 한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결코 성공할 수 없을 것이다.

대표 필자 편집인 박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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