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대출 규제의 희생양은 결국 돈이 없는 저소득·저신용자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은행권 가계대출을 옥죈 ‘풍선효과’로 저축은행과 상호금융 등 제2금융권 가계대출이 폭증하는 바람에 대출 규제의 타깃이 은행에서 제2금융권으로 옮겨간 까닭이다.

지난달부터 시행된 은행권에 대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40% 규제 탓에 고신용자들이 2금융권으로 유입되면서 저소득·저신용자들은 이제 제2금융권에서 돈을 빌리기가 한층 더 힘들어졌다. 이에 따라 2금융권에서도 받아주지 않는 저소득·저신용자들은 불법 사금융으로 내몰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금융당국은 올 하반기 전 금융권 가계대출 증가율을 3~4%대로 집중 관리할 방침이다. 연간 목표치(5~6%) 달성을 위해 가계대출 관리에 고삐를 죄겠다는 것이다. 주요 타깃은 상반기 가계대출 증가세가 두드러진 제2금융권이다. 특히 금융당국이 주시하는 곳은 농협상호금융과 저축은행이다. 금융당국이 발표한 가계대출 동향에 따르면 제2금융권의 상반기 가계대출은 지난해 말보다 21조7000억원 불어났다. 2020년 상반기 4조2000억원 감소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2019년 상반기 증가액(3조4000억원)보다 6배가량 증가했다. 이중 지난해 상반기 4000억원 가까이 가계대출이 감소했던 농협의 증가액은 8조1600억원으로 상호금융 대출 증가액(9조4000억원)의 87%를 차지했다. 저축은행 증가액도 4조40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증가액(1조7000억원)의 2배를 훌쩍 넘어섰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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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지난해부터 금융당국이 관리해 온 은행권의 가계대출은 안정세를 보였다. 5대 시중은행의 지난해 말 대비 상반기 가계대출 증가율은 KB국민은행 1.5%, 신한은행 1.7%, 우리은행 2.1%, 하나은행 3.4%, NH농협은행 5.8%에 그쳤다.

금융당국이 연일 가계대출 관련 ‘제2금융권 옥죄기’에 나서는 것은 지난달부터 확대 시행된 DSR 규제에 따른 ‘풍선효과’가 시장에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DSR 규제 강화 등으로 은행권 대출이 어려워진 사람들이 제2금융권으로 몰려가니 제2금융권이 알아서 가계대출을 관리해 달라는 얘기다.

전체 규제지역에서 6억원을 초과하는 주택담보대출을 받거나 연소득과 상관없이 1억원 넘는 신용대출을 받는 경우 은행은 DSR 40%가 적용되지만 제2금융권은 DSR 60%까지 대출이 된다. 제2금융권에서 돈을 빌리려는 수요는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 금융위 관계자는 “상반기 상호금융사들이 신규대출을 내준 사람들의 신용도를 살펴보니 과거보다 신용등급 1등급인 사람들이 크게 늘었다”며 “은행권에서 대출을 받던 사람들이 대출 여력이 줄자 제2금융권으로부터 대출을 받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급해진 금융당국은 제2금융권의 가계대출 관리를 본격화하고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5일까지 가계부채 관련 통계를 저축은행에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신규 지급 대출액과 건수, 고소득자 신용대출, 고(高)DSR 비중 등이 포함됐다. 전세대출을 제외하고 1억원을 초과해 신용대출을 받은 사람들 가운데 소득 8000만원 이상·이하인 차주(借主)의 대출 비중, DSR이 70%·90%를 넘는 차주 비중, 투기과열지구의 주택을 담보로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사람 비중 등을 추려 제출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주택담보대출, 고소득자 신용대출 등과 관련한 수치를 요구했다는 점에서 이는 1금융권 대출 규제 강화로 인한 ‘풍선효과’를 확인하려는 취지를 담은 것으로도 해석된다.

가계대출 점검 주기도 분기 또는 한 달 단위에서 주 단위로 축소됐다. 하반기에는 가계대출 증가폭을 대폭 줄여야 하는 만큼 상황을 면밀하게 지켜보고 늦지 않게 관리하기 위해서다. 금융당국은 지난달 초부터 2주에 걸쳐 상반기 가계대출 증가율이 높은 저축은행 7곳과 규모가 큰 저축은행 7곳의 대표를 불러 면담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면담에서 저축은행들은 가계대출에 대한 ‘구두경고’를 받았고 가계대출이 급증한 일부 캐피탈사도 금융당국으로부터 주의를 받았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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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출 증가세를 잡기 위해 손쉽게 쓸 수 있는 카드가 대출 금리는 높이고 대출 한도를 낮추는 방법이다. 대형 생명보험사의 한 관계자는 “보험사의 금리는 우대금리 적용에 따라 같은 신용등급에서도 큰 차이가 난다”며 “보험사들이 우대금리 폭을 줄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동일한 대출 상품의 최고 금리가 크게 상향 조정되고 있다. 한화생명의 분할상환방식 변동금리 아파트담보대출상품의 금리 조건은 올해 1월 2.87∼3.97%에서 지난달 2.70∼4.60%로 조정됐다. 삼성생명의 일반신용대출 금리는 실제 집행 기준으로 올해 1월 4.93%에서 6월 5.09%로 상승했다. 같은 기간 아파트담보대출 고객에게 적용된 평균 금리도 2.93%에서 3.03%로 올랐다. 이 같은 자체 관리로 교보생명 등 생보사의 6월 말 기준 부동산대출채권 잔액은 3월 말보다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금융당국은 글로벌 금리 상승 가능성에 따라 대출 이용자들의 이자 부담이 커지는 것도 우려한다. 과도하게 빚을 낸 사람들이 연체자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금융사 입장에서도 부실채권이 늘어 건전성 관리에 악재가 될 수 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현재로선 제2금융권의 DSR 규제를 (은행권에 맞춰) 일률적으로 바꿀 생각은 없다”고 밝혔지만, 금융당국이 머지않아 비은행권 DSR 규제를 40%로 낮출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은행권 가계대출을 옥죌 때부터 대출자들이 2금융권으로 옮겨갈 것이 불 보듯 뻔했다”며 “서민의 돈줄인 2금융권 가계대출을 조이면 심사를 더 빡빡하게 할 수밖에 없어 저소득·저신용 서민들이 피해를 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가장 취약한 사람들이 규제의 궁극적인 피해자가 되고 있다.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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