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셰일오일 붐’이 급속히 사그라들고 있다. 국제유가가 90달러를 가볍게 돌파하고 배럴당 100달러대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는 좋은 시절에도 아랑곳없이 미 셰일원유 생산업체들이 증산에 나서지 않고 ‘강 건너 불구경’하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국제유가의 고공행진과 미 백악관의 생산량 확대 압력에도 불구하고 셰일오일 업체들이 증산에 소극적인 이유는 수익성 있는 셰일원유 유정의 고갈에 대한 우려감이 크기 때문이다. WSJ는 셰일오일이 미국을 세계 최대 원유생산국으로 만든 지 불과 3년여 만에 미 셰일원유 업체들은 ‘셰일오일 붐의 종식’이 다가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2010년대 들어 셰일오일의 등장은 국제 원유시장에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미국이 생산하는 셰일오일이 2012년 국제 원유시장에 본격적으로 공급되기 시작한 것이다. 2010년 하루 100만 배럴에도 미치지 못했던 미국의 셰일오일 생산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한데 힘입어 2019년에는 하루 800만 배럴까지 급증했다. 세계 원유 생산량의 8%에 이르는 엄청난 물량이었다. 이른바 ‘셰일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2014년 100달러를 돌파했던 국제유가는 셰일혁명의 충격파로 2016년 30달러 선이 힘없이 무너지는 등 수직하락했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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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등에 불이 떨어진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2017년 러시아 등 비(非)OPEC을 끌어들여 새로운 산유국 그룹인 OPEC+(OPEC 13개 회원국과 비OPEC 10개국)를 출범시켰다. OPEC+가 감산을 이어갔지만 셰일오일은 고유가를 지렛대로 폭발적 성장세를 구가했다. 이 덕분에 미국은 2018년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를 제치고 세계 최대 산유국 지위에 올랐다. OPEC+ 내에서는 감산 무용론이 제기됐다. OPEC+가 힘겹게 감산하면 그 빈자리를 셰일오일이 채운다는 얘기였다.

감산의 열매를 미국이 누린다는 OPEC+의 불만은 2020년 3월 결국 감산중단으로 이어졌다. 러시아가 감산합의를 거부하고 사우디가 증산으로 맞불 대응하면서 국제유가가 급락하는 ‘유가전쟁’이 일어난 것이다. 공멸의 위협을 느낀 OPEC+는 한달여 만에 감산에 복귀했다. 미국의 원유 생산량 역시 20% 가까이 급감했다.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국제유가 폭락으로 채산성이 악화되자 미 셰일오일 업체들이 생산시설 가동을 멈춘 까닭이다.

하지만 지난해 11월부터 국제유가가 치솟고 있지만 미 셰일오일 업체들은 여전히 추가 생산에 소극적이다. 미국 전체 원유 생산량에서 셰일오일이 차지하는 비중은 70%가 넘는다. 블룸버그통신은 올해 미 원유 생산량이 일일 1190만 배럴로 2년전 1297만 배럴에는 못 미칠 것으로 내다봤다. 생산업체들이 셰일오일 유정의 고갈에 대비고 있다는 게 그 이유였다. 주요 셰일업체들이 생산량을 현 수준으로 유지하면 10∼20년가량 수익성을 유지할 수 있겠지만, 해마다 생산량을 30%씩 늘려간다면 수년 안에 수익성 있는 유정이 고갈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WSJ는 분석했다.

미 최대 셰일오일 생산지인 퍼미언 분지의 셰일오일 업체인 파이어니어 내추럴 리소시스는 셰일오일 붐이 일었을 때는 생산량을 해마다 19∼27% 정도 늘려왔지만, 지금은 생산증가 폭을 5% 이하로 낮췄다. 스콧 셰필드 파이어니어 최고경영자(CEO)는 “주주들의 압력과 제한적인 유정 상황으로 인해 예전처럼 생산량을 늘릴 수 없는 상태”라며 고유가의 호시절이 왔지만 생산량 확대에 한계가 있다고 털어놨다. 그는 지난해 소규모 업체 2곳을 인수해 15∼20년간 채굴 가능한 유정을 확보했지만, 생산량을 예전처럼 연간 15∼20% 늘리면 채굴 가능 기간이 8년에도 못 미칠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 5대 셰일 생산업체인 EOG 리소시스와 데번 에너지, 다이아몬드백 에너지, 콘티넨털 리소시스, 마라톤 오일도 비슷한 상황이다. 이들 업체도 현 생산량을 유지하면 10년 정도 유전 운영이 가능하지만 생산량을 연간 15% 늘린다면 6년 안에 유정이 고갈될 것이라고 기업 데이터 분석업체 플로 파트너스가 전망했다. 에너지 컨설팅업체인 리스태드 에너지는 미 5대 셰일오일 생산지에 남아있는 최상급 채굴지역이 2016년 말 6만8000곳에서 현재 3만5000곳으로 감소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2010년 이후 눈덩이처럼 불어난 셰일오일업계의 적자도 추가 생산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에 따른 글로벌 경기 침체와 사우디·러시아 간 유가전쟁으로 국제유가가 30달러대로 떨어졌을 때 미 셰일오일 업체의 3분의 1이 파산신청을 했다. 미 셰일오일 업계는 2010년 이후 3420억 달러(약 410조원)를 퍼부었지만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230여개 업체가 1520억 달러의 빚을 지고 파산신청을 했다. 리서치 회사인 클리어뷰 에너지의 케빈 북 이사는 “미국의 대규모 셰일원유 생산은 국제유가 시장변동에 완충장치 역할을 해왔지만, 그 장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국의 탈탄소·친환경정책도 악재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첫 날 미국과 캐나다 간 원유수송 사업인 ‘키스톤 XL파이프라인 프로젝트’를 취소했다. 이어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목표로 미국 내 원유시추 제한, 화석연료기업 보조금 지급 중단, 태양광·전기차 확대 등 적극적인 친환경 정책을 내놨다. 이에 따라 지난 분기에 미 셰일오일 업체들이 운영자금을 석유·가스 시추에 투입하는 비율은 사상 최저치로 떨어졌다. 지난해 3분기 재투자율도 46%로 역대 평균 130%를 크게 밑돌았다. 전체 셰일원유 생산량 역시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최고치에 비하면 12% 적은 규모다. 유정 개발을 위한 시추기 운영도 줄였다.

여기에다 화석연료와 관련된 월가의 투자가 일제히 중단됐고, 미 셰일원유 업계는 운영자금 대출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다. 프리토리언 캐피털의 해리스 쿠퍼만 최고투자책임자(CFO)는 “바이든 대통령이 파이프라인을 없애고 (셰일오일 생산) 허가를 엉망으로 만들면서 (셰일오일 생산업체들의) 운영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추가이익에 대해 논하는 것은 기업들을 화나게 할 뿐”이라고 비판했다.

전문위원(전 서울신문 선임기자·베이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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