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호 경제부총리가 경영자단체 회장단에게 경쟁적 임금 인상 자제를 당부하자 비판의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민간기업 임금은 노·사가 알아서 결정할 일이지 정부가 간섭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유시장경제원리를 존중한다는 보수 정권의 경제사령탑이 할 처신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원론적으로는 틀린 지적이 아니다. 정부의 지나친 간섭은 관치경제 시비를 낳을 수 있고, 그 결과는 부정적 결과로 이어지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정부의 간섭이 절대 금기는 아니라는 점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모든 규제가 악이 아니듯 정부의 간섭도 무조건 나쁘게만 볼 일은 아니라는 얘기다. 더구나 지금같은 비상한 상황에서는 비상한 수단을 고민해야 하는 게 정부에 주어진 임무이기도 하다.

논란을 부른 건 추경호 부총리가 지난 28일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회장단과 가진 조찬 간담회에서 한 발언이었다. 이 자리에서 추 부총리는 “최근 들어 일부 정보기술 기업과 대기업을 중심으로 높은 임금 인상 경향이 나타나면서 (이런 흐름이) 여타 산업과 기업으로 확산될 조짐이 보인다”고 우려했다. 추 부총리는 그 주체로 ‘잘나가는’, ‘여력이 있는’, ‘상위 기업’ 등을 지목했다. 이어 “과도한 임금 인상은 고물가를 심화시킬 뿐 아니라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 격차를 더욱 확대해 중소기업과 근로 취약계층의 상대적 박탈감을 키운다”고 말했다. 이것이 결국 사회적 갈등을 키운다는 지적도 덧붙였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사진 = 연합뉴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사진 = 연합뉴스]

하나하나 맞는 이야기들이다. 더구나 지금처럼 고물가가 국가경제의 근간을 흔들 정도로 심각해진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렇다고 할 수 있다. 다만, 민간의 분석가나 평론가가 아닌 경제사령탑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왔다는 점이 논란을 초래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달리 해석하면 ‘오죽 다급한 상황이면 경제부총리가 그런 말을 했을까’라고 받아들여질 여지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굳이 문제를 삼자면 간접적 신호가 아니라 이해 당사자들 앞에서 직접적으로 임금 인상 자제를 권유했다는 점을 거론할 수 있을 것이다.

추경호 부총리의 말이 아니더라도 현 정부는 총리를 필두로 물가 안정을 위한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시장에 직접 개입하지 않는다는 대원칙 하에서 물가 안정을 경제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세워두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한덕수 총리도 최근 기자들과 만나 인플레이션 기대심리 제어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물가가 오르면 인플레이션 기대치가 가산되고 임금 인상 요구도 강해진다”고 우려한 바 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역시 비슷한 발언을 했다. 그는 인플레이션 기대심리의 제어가 필요하다고 강조하면서 임금과 물가 간 상호작용의 강화 가능성을 거론했다. 이들의 연이은 우려 표명은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상징적으로 말해준다.

에두른 표현이지만 두 사람의 발언은 한결같이 과도한 임금 인상 경쟁을 자제해달라는 메시지다. 추경호 부총리의 이번 발언도 그런 성격의 것이었다. 표현 수위도 경제사령탑으로서 충분히 범접할 수 있는 정도였다. 비정상적으로 임금 인상 경쟁을 벌이는 몇몇 특정 기업을 연상시킨다고 할 수는 있겠지만, 일반적인 기업을 적시해서 한 발언도 아니었다.

현재 국내 경제상황을 말할 때 자주 거론되는 표현이 ‘퍼펙트 스톰’이다. ‘퍼펙트 스톰’ 구성 요소 중 하나가 장기간 이어지고 있는 고물가 현상이다. 당장 발등의 불이 된 물가를 잡기 위해 한국은행은 경기 침체 가능성을 무릅쓰면서 금리 인상을 단행하겠다는 신호를 잇따라 내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은이 이달 중 기준금리를 한 번에 0.50%포인트 인상할 가능성을 말하고 있다. 금리가 크게 오르면 취약계층을 포함한 다수의 서민들이 더 큰 고통을 겪게 된다.

정부나 기업도 예외일 수 없다. 정부는 긴축 기조에 발맞춰 재정 지출을 최대한 줄여야 하고, 기업들은 금융비용 증가로 인한 수익성 악화를 견뎌내야 한다. 그런 상황에서 대개의 기업들은 고용을 꺼릴 수밖에 없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현재 몇몇 정보기술(IT) 대기업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비정상적 임금 인상 경쟁은 고용시장의 양극화와 미스매치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고임금 기업엔 원하는 인재상과 무관하게 지원자가 몰리고, 다른 한쪽에선 구인난에 시달리는 현상이 더 뚜렷해지고 있는 것이다. 생산성 증대 이상으로의 임금 인상은 기업에도 이롭지 못하다. 인건비 비중의 과도한 증가는 장기적으로 기업의 시장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기술개발 투자 여력을 갉아먹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물가를 잡기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할 입장에 처해 있다. 물가를 성공적으로 관리해야 곧 닥칠지 모를 세계적 불황기에 경제를 연착륙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야만 우리가 포스트 코로나 이후 재편될 세계경제 질서 속에서 새로운 강자로 부상할 수 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말이 아니더라도 지금은 너 죽고 나부터 살자는 식의 도 넘은 임금 인상 경쟁을 자제해야 할 시점이다. 그런 가운데 해당 분야의 인재 부족 등 고용시장의 미스매치 문제는 기업과 정부가 머리를 맞대고 차근차근 풀어나가야 할 것이다. 마침 새 정부도 그 점에 적극성을 보이고 있으니 상황이 나쁜 것도 아니다.

대표 필자 편집인 박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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