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 중이 아닐 때에도 라디오를 자주 듣는 편이다. 즐겨 선택하는 채널 중 하나가 원음방송이다. 원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그냥 특정한 프로그램을 즐기다 보니 익숙해진 채널이다.사실 종교방송들에 대해 호감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택시에 탔을 때 종교방송이 나오면 기사에게 한사코 채널을 돌려달라고 요구한다. 특정 신앙을 강요당하는 느낌을 받는게 싫어서이다.아무래도 종교방송이다 보니 원음방송은 중간중간에 종교색이 깃든 ‘말씀공양’을 내보내곤 한다. 신도들이 프로그램의 일정 시간대를 구입함으로써 편성되는 일종의 광고방송이다. 하지
사건기자들이 기사 작성 때 습관적으로 채용하는 문장의 기본틀이 하나 있다. “경찰은 OOO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라는 정형화된 틀이 그 것이다. 이 때 굳이 ‘신청’이라는 표현을 쓰는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경찰에겐 영장 청구권이 없다는게 그 이유다. 당연히 ‘신청’을 받는 대상은 판사가 아닌 검사다.주지하다시피 영장 청구권은 검사에게만 주어져 있다. 헌법의 기본권 조항에는 국민을 상대로 체포 구속 압수수색을 하기 위해서는 ‘검사의 신청에 의해 법관이 발부한’ 영장이 제시돼야 한다고 적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장
종이신문 기자로 일하던 1990년대 중반, 덩샤오핑(鄧小平) 어록을 수년에 걸쳐 수집 관리하는 일을 맡은 적이 있다. 그가 죽으면 즉시 사망 관련 기사로 출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 당시 덩은 죽음을 눈앞에 둔 구순 언저리의 노인이었다. 세계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작은 거인’의 죽음은 예고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체가 경천동지할 뉴스일 수밖에 없었다.‘등소평 어록’이라는 이름으로 관리했던 당시 파일 속의 명언 중 가장 유명한 것이 ‘흑묘백묘론’이었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그만이라는 뜻의 말
얼마 전 사회학자인 송호근 교수(서울대)가 모 신문의 지상(紙上) 대담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의식의 일단에 대해 평한 적이 있다. 대통령 후보 시절의 박근혜를 만났을 때 “국민이란 말 대신 시민이란 말을 쓰라.”고 권고했다며 한 이야기였다. 돌아온 대답은 “그건 전주시민, 대구시민(을 말할 때 쓰는 용어) 아니냐.”는 것이었단다. 송호근은 그 일을 회상하며 박근혜가 역사적 개념으로서의 ‘시민’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풀이했다.송호근의 평가와 지적대로, 박근혜는 지금 대한민국 시민에 대한 인식 부재의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현대 사회학에서 불평등 또는 사회변동 주제를 논할 때 동원되는 주요 관점 중 하나가 갈등론이다. 개념을 한마디로 정리하긴 어렵지만, 정책개발 측면에서 바라보자면 갈등론은 사회구조 개혁을 제1 과제로 삼으려는 견해다. ‘태백산맥’ 등 조정래의 소설에 종종 등장하는 “하늘과 땅이 맞붙어 다글다글 맷돌질이나 했으면 좋겠다.”라는 민초들의 푸념은 갈등론적 시각의 한 단면을 드러낸다. 세상을 리셋하지 않으면 공정한 사회 구현이 어렵다는 생각이 그 바탕에 깔려 있다.한동안 자주 들렸던 “이게 나라냐?” 하는 한탄 역시 구조개혁 필요성에 대한
불가(佛家)의 윤회사상은 윤리를 기본 바탕으로 삼는다. 불교식 윤리의 작동 원리는 상선벌악(賞善罰惡)이다. 모든게 인과응보의 법칙에 따라 움직일 때 세상사는 공정해지고 정의로워지며 예측 가능해진다. 그 기본틀은 모든 사유와 도덕이 이성을 기반으로 이뤄진다는 서양의 이성철학과 궤를 같이한다. 그같은 원리가 응축돼 만들어진 것이 세속의 법이다. 법은 사회 구성원들의 합의에 의해 이루어진 것으로서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적용된다.법도 진화 과정을 겪는다. 법의 진화가 이뤄지는 과정에서는 갈등이 일기 마련이다. 기존의 것을 보다 오래 유지하려
그 정도에서 멈춘게 그나마 다행이다. 대통령 선거 출마를 포기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이야기다. 반기문의 대선 불출마는 그가 대선에 출마했을 때, 또는 당선됐을 때 대한민국이 치러야 할 엄청난 기회비용을 아껴주었다. 그에 비하면 짧은 기간 동안 대권 도전을 향한 행보를 취함으로써 날려버린 매몰비용은 아무 것도 아니다. 반기문은 대권 도전을 포기하는 순간 비로소 대한민국의 소중한 자산으로 되돌아왔다. 20일간의 대권 가도 행보 중 찰과상을 입긴 했지만 그의 ‘전직 유엔 사무총장’으로의 귀환은 반가운 사건이다. ‘온전히 상처받지 않
마르크스와 그 추종자들이 예언한 종말론은 반 쯤은 맞았고 반 쯤은 틀렸다. 그들은 일찍이 자본주의 사회가 빈부격차 심화와 빈곤의 고착화로 인해 제풀에 무너질 것이라고 예단했다. 경제적 불평등과 빈곤의 상시화, 일반화는 자본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능력주의 가치마저도 훼손할 것이라는게 그들의 예상이었다.그같은 예상의 논거 중 하나는 자본의 수익률이 노동 소득률을 앞서가는 상황의 구현이었다. 실제로 돈이 돈을 버는 세상에서는 금전적 기반이 없는 개인의 노력과 의지는 초라해질 수밖에 없다. 그 다음에 나타나기 쉬운 것이 빈곤층 서민들의 자포
2001년 6월 10일, 필자는 일본 요코하마 종합경기장에 있었다. 2002한일월드컵축구대회 개막을 1년 앞두고 리허설을 겸해 열린 2001컨페더레이션스컵 축구대회 결승전을 보기 위해서였다. 결승 진출국이 일본과 프랑스였던 만큼 그 날 저녁 요코하마 경기장 주변은 인파로 북적였다. 일본이 당시 세계 최강이던 프랑스와 미니 월드컵으로 불리던 컨페드컵 대회 우승을 다투게 됐으니 그럴 만도 했다.인파에 부대끼는데다 도쿄만(灣)에서 신요코하마 쪽으로 밀려오는 비릿하고 후텁지근한 공기가 불쾌지수를 높였지만, 일본인들은 놀라울 만큼 질서정연했
연말이 다가오면서 경제연구소들이 일제히 내년 경제전망을 내놓았다. 이들 경제연구소의 2017년 전망은 온통 잿빛으로 가득하다. 내년엔 세계적인 보호무역주의 확대 등으로 수출 부진이 이어지는 데다 그동안 성장을 견인 해왔던 내수의 신장세마저 꺾일 기미가 뚜렷해 저성장 기조를 탈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연구소들은 예측했다.얼마 전 LG경제연구원이 밝힌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2.2%였다. 이보다 앞서 나온 한국경제연구원(2.1%)의 전망치보다는 조금 높지만, 한국금융연구원(2.5%), 한국개발연구원(KDI·2.4%) 전망치보다는 낮은
남녀의 생물학적 차이는 불가피한 것이다. 만인의 평등을 추구하는 현대법에서도 성차이 만큼은 널리 인정된다. 인정하는 폭이 갈수록 넓어지는 추세를 보인다는게 보다 정확한 표현이다. 성차이는 성차별과는 다른 개념이다. 모든 법적 평등은 성차이를 비롯해 성년과 미성년의 차이,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차이, 부자와 가난한 자의 차이 등을 전제로 한 상대적 평등을 의미한다.성차이에 기반을 둔 상대적 평등의 정신이 뚜렷이 나타나 있는 법률이 남성에 한해 병역의무를 부과하는 병역법이다. 여성에게만 생리휴가를 주도록 규정한 근로기준법도 예외일 수 없
종교를 갖고 있지는 않지만, 혼자 절에 들를 기회가 생기면 부처님 전에 삼배(三拜)를 올리곤 한다. 예전엔 일부러 절에 찾아가 참선을 하거나 108배, 540배를 하는 일도 종종 있었다. 참선도 괜찮았지만 특히 배 의식을 좋아했다. 오체투지의 몸짓인 배는 가장 낮은 자세로써 완성된다는 점에서 늘 특별하게 느껴졌다.배 의식을 통해 알 수 있듯이 부처님은 그 앞에 서는 모든 이에게 겸양을 가르친다.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유아독존’(唯我獨尊)을 강조한다. 모든 사람은 각각 하나 뿐인 존재이니, 차별 없이 소중하다는 뜻이다. 궁극적으
미국의 조지 H. W. 부시 행정부 시절 대통령 경제보좌관을 지낸 토드 부크홀츠는 정치에도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한다고 주장한 사람이다. 그가 말한 건 소위 ‘정치적 보이지 않는 손’ 이론이다. 요지인 즉, 선출직 공무원은 유권자의 눈치를 살피게 되고, 유권자는 자신의 이익을 대변해줄 사람에게 투표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정치는 공공선을 위해 작동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그의 이론대로라면 정치인의 본색은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속내가 무엇이든 실제로 드러나는 언행이 유권자들의 이익에 부합하면 그만이다. 정치 지도자가 거짓말
미국 프린스턴대학에서 도덕철학을 강의했던 현대 철학자 해리 프랑크푸르트는 거짓말보다 허튼소리를 더 경계했다. 그는 ‘허튼소리에 대하여’를 통해 허튼소리를 진실의 가장 큰 적으로 단정하고 있다. 거짓말쟁이는 진실이 무엇인지 또렷이 의식하고 행동하지만, 허튼소리하는 사람은 그렇지 못하다는게 그의 지론이다. 그에 의하면 헛소리꾼은 오직 목적 달성에만 관심을 둔다. 사실 여부나 합리성 따위는 안중에 없다. 그래서 허튼소리가 더 위험하다는 것이다.정치인 박근혜의 행적을 되돌아보면 프랑크푸르트의 주장이 잘 맞아떨어진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최
‘순실접신’최순실씨의 '말씀자료' 첨삭 사실이 대통령의 대국민사과를 통해 확인된 다음 부산의 한 지하철역 출입구 계단에는 이 문구가 들어간 대자보가 나붙었다. 최순실 파문을 비웃으며 세태를 풍자한 이 대자보 내용은 지난 26일 하루 종일 인터넷을 떠돌며 눈길을 끌었다. ‘나라 꼴이 무지개 같아서 감탄 중인 젊은이’가 쓴 대자보 내용을 읽어가다 ‘연설은 순실접신’이란 부분에 이른 순간 전율이 느껴졌다. 무언가 섬찟함이 뇌수와 척수를 거쳐 전신을 훑고 내려가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접신(接神)은 사람 몸에 다른 이의 영혼
말랑말랑한 주제 같지만 그 중요도 만큼은 어느 국정 현안 못지 않은게 한자 표기 문제다. 이 주제는 민감성으로 따져도 다른 현안들을 압도한다. 주제의 속성이 그렇다 보니 워낙 의견이 팽팽히 맞서 있어서, 끝장 토론이 가능할 것 같지도 않다.따라서 안타깝지만 이 문제를 놓고 정색하며 논쟁을 벌이는 것은 과히 생산적이지 못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굳이 논란에 끼어들 생각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를 새삼 거론하는 건 한자가 사라져 가는데 대한 일종의 두려움 탓이다.한자가 빠르게 사라져 가는 대표적 현장이 국회다. 한자 추방을
최근 포털 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 리스트에는 ‘김영우’란 이름이 빈번히 오르내렸다. 새누리당 소속 김영우 의원은 국회 국방위원장이다. 당위(當爲)로 치면 국회와 대한민국 정치의 핵심축으로서 주목받아야 할 자리가 국회 상임위원장이다. 하지만 그건 우리의 정치현실과는 거리가 먼 얘기다. 우리의 정당정치 현실에서 국회 상임위원장직은 3선급 이상 의원들에게 적당히 ‘가오’를 세워주기 위해 배분되는 자리일 뿐이다.반면 없어도 무방한 - 적어도 필자 생각은 그렇다 - 당 대표 등 당직자들이 주목받는게 우리 정치계의 기이한 현상이다. 그러다 보
연암 박지원의 ‘양반전’에는 조선시대 양반들이 일상에서 지켜야 했던 갖가지 행동양식들이 상세히 기술돼 있다. 그 내용을 읽고 있노라면 앓느니 죽는게 낫다는 속담이 떠오른다. 물론 소설 속의 마을 군수가 감히 양반 신분을 넘보려는 돈 많은 상민에게 겁을 주기 위해 양반의 법도를 과장되게 표현한 측면도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양반전’이 픽션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능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그 점을 염두에 두더라도 ‘양반전’은 당시 양반들 스스로 만든 법도가 얼마나 처절하고 엄격했는지를 엿보게 해준다. 꼭두새벽인 오경(五更)에 일어나
조선 말의 정치가이자 문장가였던 김매순은 ‘응객’(應客)이란 글을 통해 ‘기세의 설’과 ‘이도의 설’을 비교하며 군자의 덕목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응객’은 그가 손님에게 이야기하는 형식을 빌려 경세가들이 갖추어야 할 기본 자세를 강조한 글이다. 요즘 말로 풀이하자면 ‘기세의 설’은 ‘형세의 논리’, ‘이도의 설’은 ‘도리의 논리’ 정도가 될 것이다.‘형세의 논리’는 세력에 따라 이합집산이 이뤄지는 시속의 이치를 가리킨다. 반면 ‘도리의 논리’는 시속의 이해를 초탈한 자만이 취할 수 있는 논리다. ‘응객’은 ‘형세의 논리’에 갇
20세기 말 미국 사회에서는 대학가를 중심으로 이색적인 운동이 대대적으로 펼쳐졌다. 우리나라에는 ‘정치적 올바름’ 또는 ‘정치적 광정’이란 이름으로 번역돼 소개됐던 ‘Political Correctness’(이하 PC) 운동이 그 것이었다. PC 운동이 설정한 목표는 거창하지 않았다. 정치적 관점에서의 편견과 차별 일소가 운동 주체들이 내건 목표였다.목표 달성을 위해 동원된 수단도 독특했다. 그 건 언어의 올바른 사용이었다. 편견이나 혐오스러운 의미가 담긴 기존의 단어들을 새로운 단어로 대체하는게 주된 실천목표였다. 완전히 뿌리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