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민주화 항쟁 이전에 설립된 한 신문사의 사사(社史)를 읽다가 흥미로운 기록들을 접한 적이 있다. 사사에는 군사독재 정권 시절 자사 신문이 정간(停刊) 당한 일들까지 세세히 정리돼 있었다. 그 당시 신문사들은 며칠씩 간행 정지를 당하곤 했다.정간 이유가 대단한 것도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헛웃음이 나올 만큼 어이없는 일로 정간을 당하는 일이 많았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대통령’을 ‘대령’으로, ‘여사’를 ‘여시’로 잘못 표기한 채 신문을 발행했다가 당국으로부터 치도곤을 맞곤 했다. 한자 표기가 일반화돼 있었던 까닭
윤석열 대통령이 불통의 벽을 하나하나 쌓아가고 있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 출발은 요란했으나 용두사미식으로 소통 의지가 흐지부지되어가고 있는 듯 보인다. 우려의 배경엔 출근길 문답 중단, 대통령 출근 통로와 기자실 간 가벽 설치, 특정 언론사 대통령 전용기 탑승 배제, 신년 기자회견 생략, 조선일보와의 신년 단독 인터뷰 등등의 심상찮은 전개 과정이 자리하고 있다.조선일보와의 신년 인터뷰는 특히 실망적인 사건이었다. 소통의 유용한 수단인 인터뷰가 역설적으로 불통의 끝판 격이 되어버렸다. 신년 기자회견을 대체한 것으로 보이는 이 회견은
특별사면(특사·特赦)을 둘러싼 정치권의 진흙탕 싸움이 볼만했다. 명단 발표 전부터 빚 독촉하듯 사면 내용을 제시하는 촌극이 벌어지더니 결과를 두고 또 티격태격이었다. 한쪽은 ‘범국민적 통합’을 주장했지만 다른 한 쪽에선 ‘갈라치기 사면’이니 ‘내편 챙기기 사면’이니 하는 볼멘소리와 독설을 쏟아냈다. 여·야, 좌·우 가를 것 없이 눈 뜨고 봐주기 힘들 정도로 역겨운 행동들이었다. 그 중심에는 진영별로 묻지마식 팬덤에 기대어 철면피한 행동을 일삼는 정치인들이 자리하고 있었다.남우세스럽기 짝이 없는 악다구니 소동은 진작부터 예상됐었다.
언론이 넘쳐나고 있다. 비온 뒤 죽순 돋아나듯 생겨나는 유튜브 다수가 언론을 자처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유튜브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1987년 민주화 이후 언론 과잉 시대를 살아오고 있었다. 여기에 더해 뉴스를 다루는 유튜브 채널이 폭증하면서 언론이 홍수를 이루는 지경에 이르렀다. 1도1사(一道一社: 도 단위로 1개 언론사만 두게 함)란 희한한 원칙 하에 정부가 언론사 설립을 제한했던 시절을 생각하면 상전벽해가 이런 것인가 생각될 정도다. 행정관청도 아닌데 언론사 설립을 정부가 제한한 것도 문제였지만, 자칭·타칭 언론이 지
일본인들이 ‘와’(和)를 좋아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와’는 화합을 의미한다. 일본의 연호에도 ‘와’란 글자가 심심찮게 등장한다.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연호로서 역대 최장 기록을 지녔다는 ‘쇼와’(昭和)나 지금의 연호 ‘레이와’(令和)에도 ‘와’가 포함돼 있다.일본인들이 일상에서 ‘와’를 실천하는 모습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붐비는 지하철이나 스포츠 경기장 등에만 가 봐도 그들이 안내원의 지시를 얼마나 잘 따르는지를 금세 실감하게 된다. 그들의 질서정연한 행동을 보고 있자면 부럽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각자가 모
요즈음 윤석열 대통령이 연일 강조하는 것 중 하나가 ‘약자복지’다. 틈만 나면 이 단어를 입에 올리고 있다. 약자복지를 윤석열 정부의 복지철학으로 확립시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 아닌가 생각된다. 대통령실도 열심히 추임새를 넣고 있다. 내년도 복지분야 예산에서 중앙정부 가용재원의 90% 이상을 약자복지에 투입하겠다는 등 홍보에 열심이다. 급기야 ‘약자복지 글로벌 버전’이란 추임새까지 등장했다. 윤 대통령이 유엔총회 기조연설을 통해 한국의 국제사회 책임론을 강조하자 그 말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대통령실 관계자가 사용한 표현이었다. ‘꿈
글씨기를 업으로 삼는 이들 사이에서 강조되는 경구 중 하나가 ‘글을 무서워하라’는 것이다. 책임감을 갖고 글을 써야 한다는 의미가 담긴 말이다. 그들 사회에서 통용되는 말 중엔 ‘일물일어(一物一語)’라는 것도 있다. 하나의 사물 또는 상황에 가장 적합한 단어는 하나밖에 없으니 글 쓰는 이는 그걸 골라내기 위해 고심해야 한다는 의미가 담긴 표현이다. 이 모두는 말에 비해 글이 보존성 면에서 우월하다는 점을 고려한 교훈이다.하지만 이들 경구는 유명 정치인이나 공직자 등 명사들에게는 부족한 교훈일 수 있다. 그들의 경우엔 입을 통해 나오
윤석열표 ‘공정과 상식’에 대한 신뢰가 크게 훼손된 듯하다. ‘공정과 상식’은 윤석열 대통령이 정치에 뛰어들면서 앞세운 대표 구호다. 그 구호에 대한 신뢰에 금이 간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에게는 치명적인 일이다.신뢰 훼손의 가장 큰 원인은 인사다. 이를 새삼스레 확인시켜주는 것이 최근 한국갤럽이 발표한 대통령 지지율 관련 여론조사 결과다. 한국갤럽이 공개한 7월 넷째 주(26~28일)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윤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한 긍정평가 비율은 28%에 그쳤다. 부정평가 비율은 62%로 집계됐다. (표본오차 95% 신뢰수
‘여씨춘추’ 임수편에 나온다는 공자와 관련된 일화 한토막.공자가 곤궁에 처해 수일째 곡식 한 톨도 먹지 못하고 있을 때의 일이었다. 제자 안연(본명 안회)이 어찌어찌 쌀을 구해와 밥을 짓고 있었다. 이를 모르던 공자가 밥 냄새에 이끌려 방 밖을 내다보니 때마침 안연이 밥을 한 움큼 입에 넣고 있었다. 공자는 안연을 의심했다. 스승에 대한 공경심이 남다른 줄 알았던 그가 자신보다 먼저 음식에 입을 대는 것이 이상해 보였던 것이다. 그래서 안연이 밥상을 들고 방으로 들어왔을 때 공자는 시치미를 떼며 “밥이 깨끗하다면, 아버님께 먼저 제
잘잘못을 논할 때 양시양비론은 당당한 논리가 될 수 없다. 책임 소재를 불분명하게 함으로써 문제 해결을 어렵게 하는 결함을 안고 있어서이다. 이럴 경우엔 양분론이 양시론이나 양비론보다 적절하다. 잘잘못은 엄격한 잣대를 통해 재단하는 게 사회 정의에도 부합한다. 경계해야 할 일은 선택의 영역인 호오(好惡) 또는 이념을 근거 삼아 피아를 가르는 일이다.불가의 기본철학인 윤회설의 기저를 이루는 정신도 이분법적 개념인 상선벌악(賞善罰惡)이다. 전세에서 현세로, 현세에서 내세로의 윤회를 통해 잘 한 일로는 상을 받고 잘못에 대해서는 벌을 받
이런 적이 있었나 싶다. 아무리 기억을 되돌려 봐도 이전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장면이었다. 임기를 보름여 남겨둔 대통령이 언론 인터뷰를 통해 후임자에 대한 비방을 늘어놓은 일을 말하는 것이다. 너무 생소하고 비현실적이어서 기사화된 인터뷰를 읽는 내내 낯선 느낌과 함께 ‘이건 뭐지?’ 하는 의문이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문재인 대통령이 지난주 언론과의 마지막 인터뷰에서 한 발언들은 황당하기 짝이 없는 것들이었다. 한 순간의 감성에 사로잡혀 한 말들이라 여기기엔 시종 너무도 차분하고 냉정하게 전개됐다. 감성이 즉흥적일 수밖에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 재임 시절 관광차 모스크바 크렘린궁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소련(소비에트연방)이 해체되고 러시아연방이 새롭게 출범한 지 2년 남짓한 때의 일이었다. 당시만 해도 ‘철의 장막’이니 ‘죽(竹)의 장막’이니 하는 유행어로 상징됐던 공산권 국가들의 폐쇄성이 강하게 남아 있던 시기였다. 더구나 ‘크렘린’이란 말은 일반명사화돼 ‘속을 알 수 없는 사람 또는 장소’를 비유하는 단어로 쓰이곤 했다. ‘크렘린 같은’이란 말은 극단적 폐쇄성을 강조하는 대표적 수사였다.그런 시절이었던 만큼 ‘붉은 광장’에 처음 도착했을 때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