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하상가 상인들과 서울시가 오랫동안 갈등을 빚어온 권리금 문제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일단은 서울시의 의지가 관철된 상태로 결론이 났다. 서울시가 조례 개정을 통해 공유재산인 관할 지하상가의 권리금을 인정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29일 서울시가 밝힌 바에 따르면 시는 지난 19일부터 ‘서울시 지하도상가 관리 조례 일부개정조례’를 공포하고 시행에 들어갔다. 요약 정리하면 기존의 조례를 개정해 이제부터는 지하상가 임차인이 바뀔 때 그들끼리 권리금을 주고받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권리금은 우리사회의 커다란 논쟁거리였다. 법적 근거가 없으면서도 오랜 세월에 걸쳐 임차인들끼리 권리금을 주고받는 것을 당연시해왔다. 불법 행위가 당연시되는 왜곡된 현실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자 2015년엔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이 개정되면서 권리금을 합법화했다.

점포사업자가 상가를 비우면서 다음 임차인에게 받는 권리금은 기존의 시설이나 비품, 영업상의 지리적 이점, 신용, 영업으로 발생할 미래의 이익 등의 경제적 가치를 돈으로 환산한 금액이다. 상인들 사이에서는 권리금을 바닥권리금과 시설권리금으로 나누기도 한다. 바닥권리금은 상가가 위치한 ‘목’에 대한 가치를 인정한 금액이고, 시설권리금은 말 그대로 기존 시설을 그대로 이용할 경우 새로운 임차인이 이전 임차인에게 지불하는 금액이다.

하지만 대개는 그냥 구분 없이 권리금이란 이름으로 통용되며 상가 계약을 할 땐 부동산중개업소를 통해 권리금 계약서를 따로 작성하는 게 보통이다. 이 권리금 계약서는 임차인이 후일 상가를 비울 때 새로 들어오는 임차인에게 권리금을 요구하는 근거가 되곤 한다.

하지만 건물주 중 상당수는 권리금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을 보인다. 권리금이 과도해지면 계약기간 만료 후 자신이 필요할 때 임차인을 내보내는데 장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건물주가 직접 영업을 하겠다며 점포를 비우라고 요구할 때가 있다. 이 경우 임차인은 건물주에게 권리금을 요구해야 하는데, 건물주로서는 그같은 리스크를 처음부터 남겨두고싶어하지 않는 게 보통이다. 실제로 임차인에게 권리금을 일부라도 주는 건물주는 거의 없다.

이로 인해 중개업소에서 임대차 계약서를 작성할 때면 코미디 같은 상황이 연출되곤 한다. 우선 중개업자를 사이에 두고 건물주(임대인)와 새 임차인이 마주 앉아 임대차 계약서를 작성한 뒤 돈을 주고받는다. 그 다음 건물주는 아무것도 모르는 채 자리를 비우고, 대신 이전 임차인이 나타난다. 이 때 전임과 후임 임차인이 중개업자와 같이 앉아 권리금 계약서를 작성하고 소정의 권리금을 주고받는다.

이렇게 함으로써 건물주는 공식적으로 권리금을 인정하지 않은 게 되고, 후임 임차인은 권리금 지불 근거를 마련하게 되는 것이다.

권리금은 점포 사업자가 사업을 접고 새로운 사업을 모색할 때 종잣돈이 된다. 이는 점포 사업을 하는 상인들이 권리금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다.

그같은 이유로 인해 서울시 지하상가 상인(임차인)들과 서울시는 권리금 문제를 둘러싸고 오랫동안 갈등을 빚어왔다.

서울시는 시내 지하도 상가는 공유재산이기 때문에 영업권을 매매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불합리하고 형평성의 원칙에도 어긋난다는 입장을 유지해왔다. 행정안전부도 서울시 관련 조례에 대한 유권해석을 통해 지하상가 권리금 관행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서울 지하상가는 대부분 민간이 개발해 조성한 상가를 일정 기간 동안 사용한 뒤 시에 기부채납하는 조건으로 형성됐다. 현재 서울시의 관리를 받는 지하상가는 25개 장소에 산재한 2700여개 점포로 구성돼 있다.

이곳에서 영업을 하고 있는 상인들 중엔 수억원의 권리금을 주고 임차인으로 들어간 이들도 상당수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은 “우린 앞으로 가게를 비울 때 빈손으로 나가라는 것이냐?”라며 볼멘 소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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