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수준의 폭염이 장기간 이어지자 정부가 한시적으로나마 전기료를 인하하는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31일 관계 부처에 특별배려를 검토하라는 지시를 내린데 따른 움직임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최악의 혹서가 이어지면서 이를 재난으로 인식하는 분위기마저 나타나고 있다. 폭염으로 인해 열사병 및 일사병 등 온열질환 발생이 빈번해지고 도로파손 등 각종 시설물 손상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 그 배경이다.

폭염에도 불구하고 가정용 전기에만 적용되는 누진제 탓에 시민들이 냉방기조차 마음대로 쓸 수 없다는 불만이 쏟아지자 전기요금 체계를 다시 손보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청와대 청원 게시판 등을 통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에 고심이 깊어진 정부가 전기요금 한시적 인하라는 카드를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이 총리의 지시가 내려진 이후 주무 당국인 산업통상자원부는 갑자기 분주해졌다. 하루 전까지만 해도 누진제 개편 및 한시적 전기료 인하 등에 부정적 입장을 보였던 산자부였다.

하지만 총리의 이번 지시는 사실상 한시적 전기료 인하 방안을 강구해보라는 것인 만큼 산자부의 입장이 바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한시적 전기요금 인하는 이전 정부에서도 시행된 바 있다. 2015년과 2016년 취해진 방식은 누진제 구간을 일시적으로 일부 조정하는 것이었다. 이전 정부는 두 해 연속 전기료를 한시적으로 인하한 뒤 2016년 말 누진체계 자체를 손질했다.

산자부가 전기료 인하 조치를 취한다면 이번에도 앞선 두 차례의 한시적 조치와 유사한 방식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를테면 낮은 단계 구간의 폭을 한시적으로 늘려 일정 수준 이상의 전기를 쓰더라도 시간당 요금을 낮게 계산하는 방식을 채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정부는 현재 누진제 자체를 손보는 것은 어렵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누진제 체계를 손질한지 2년도 채 안된 상황이라는 것이 그 이유다.

하지만 더 큰 이유는 한국전력공사가 올해 들어 2개 분기 연속 적자를 내고 있는 점이라 할 수 있다. 한전은 현재 탈원전 정책에 대한 비판적 여론 탓에 그같은 속내를 마음껏 드러내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이 총리의 검토 지시가 있기 하루 전 산자부 관계자는 기자간담회를 통해 2년 전 단행된 누진제 개편의 영향을 아직 제대로 분석하지 못했음을 강조했다. 사실상 제도 개편이 쉽지 않음을 시사한 것이다.

한시적 조치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이 관계자는 “대응이 필요한지 보겠다”고 말했을 뿐 구체적 답변은 내놓지 않았다.

그러나 이 총리는 3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 석상에서 “폭염이 오래 가면서 전기요금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며 산업부를 지목한 뒤 “전기요금에 대해 제한적 특별조치를 할 수 있는지 검토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바른미래당 하태경 의원은 전기요금 개편에 대한 여론을 반영, 혹서기에 한해 누진제를 해제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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