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발 금융위기가 신흥국으로 번질 가능성이 제기되는 가운데 터키 당국이 긴급 처방에 나섰다. 외국인들의 급격한 외화 유출을 막기 위해 자국 은행들로 하여금 외화-터키리라화 거래를 제한하기 시작한 것이다.

13일 로이터 등 외신들에 따르면 터키 은행규제감독국(BDDK)은 달러와 유로 등 외화 유출을 막기 위해 자국 은행들에게 외화-터키리라화 스와프 거래는 물론 현물 및 선물 외환거래 등의 유사 스와프 거래도 은행자본의 50%까지만 할 수 있다고 통보했다.

터키 리라화. [사진 = 연합뉴스]
터키 리라화. [사진 = 연합뉴스]

BDDK는 당국이 정한 기준을 충족하지 않는 한 신규 거래가 불허된다고 밝혔다.

터키 당국은 이번 조치가 리라화 폭락으로 인해 가장 큰 타격을 받은 자국의 중소기업과 실물경제를 위한 것임을 강조했다. 조치를 시행하기에 앞서 터키 재무 당국은 “시장의 안정에 필요한 조치를 발표하고 이를 시장과 공유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베라트 알바이라크 터키 재무장관은 그러나 외화예금을 동결 또는 전환하지는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이는 터키 당국이 외화 거래 동결 등 자본통제에 들어갈지 모른다는 일각의 우려를 불식시키려는 의도를 담은 발언으로 해석됐다.

알바이라크 장관은 현재의 금융시장 불안이 외부의 공격에 의한 것이라는 투의 불만을 토로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터키리라화 폭락 사태에 대해 “경제 데이터로는 설명될 수 없다”고 말했다.

그의 발언은 최근 터키에 대해 공격적인 발언과 조치를 내놓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터키산 철강과 알루미늄 제품에 대한 관세를 두 배로 올릴 것을 교역 당국에 지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0일 트위터를 통해 “터키와의 관계가 좋지 않다”고 밝힌 뒤 자신의 그같은 지시 내용을 공개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 글 게재 이후 터키리라화 가치는 당일에만 20% 이상 급락했고, 터키 국내 은행에서는 외화를 빼가려는 사람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스파이 혐의로 논란을 빚은 미국인 목사의 석방 문제를 두고 에르도안 타이이프 터키 대통령과 갈등을 빚어왔다.

하지만 터키의 금융불안이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의한 것만은 아니라는 분석도 적지 않다. 터키 기업들의 채무 상환 능력에 대한 회의와 심각한 인플레이션, 나아가 터키 중앙은행의 독립성에 대한 의구심 증폭 등 내재된 악재가 보다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게 그같은 분석의 근거다. 기반이 취약하다 보니 트럼프 대통령의 한마디에 터키 경제가 심히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얘기다.

어쨌든 금융불안이 지속되는 가운데 터키리라화 가치는 13일 오전 아시아의 외환시장에서 한때 달러당 7.24리라까지 떨어지며 역대 최저기록을 경신했다.

그러나 터키 당국의 외화거래 제한 조치가 발표된 이후 진정세로 돌아서며 13일 오전 현재 다시 6리라대 후반으로 돌아갔다.

터키에서 금융위기 기미가 보이자 즉각 유럽 증시가 하락 장세를 연출했고, 현 상황이 이어질 경우 터키발 위기가 신흥국 전체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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