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지금까지의 시간은 많은 이들에게 힐링과 정화의 연속이었다. 세월호 기간제 교사 순직 인정, 교과서 국정화 철회,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대일(對日) 특사를 통한 한일 위안부 합의 불수용 뜻 전달, 대통령 일가의 청와대 생활비 자비 부담 조치 등등….

이같은 조치들을 두고 ‘증세 없는 복지’라는 재치 있는 촌평을 내놓은 이도 있었다. 세금 한푼 들이지 않으면서 국민 다수를 감동시키고 아린 상처들을 보듬었음을 강조하는 한편 직전 대통령의 실정(失政)까지 풍자했으니 가히 촌철살인의 평이라 할 수 있다.

문재인이 취한 조치 중에서도 압권은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실행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이었다. 대통령과 유가족, 그밖의 참석자들이 다 함께 손잡고 이 노래를 제창하는 것을 보고 있자니 절로 가슴이 후련해지며 눈물이 흘렀다.

이보다 더 절절히 보는 이들의 심금을 울리는 해원굿이 따로 있을까 싶었다. 해원굿이 사실상 살아남은 자의 상처받은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펼쳐진다는 점에서 보자면 올해 기념식은 최고의 굿판이었다.     

대통령이 묘지 입구에서부터 걸어들어감으로써 민주열사들의 영령 앞에 극진한 예를 갖춘 일, ‘임’으로 승화한 아버지를 부르며 눈물지은 유족을 안아주는 모습 등도 감동적이었다. 대통령 품에 안겼던 그 유족은 “아버지 품처럼 따뜻했다.”고 말했다.   

따지고 보면, 문재인이 보여준 이같은 행동들은 비정상의 정상화에 불과했다. 대통령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고, 5.18 희생자 유족의 아픔을 어루만져주면서 공권력이 저지른 잘못을 미안해 하는 행위는 너무나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다만, 그 이전까지는 비상식이 상식을 구축해왔을 따름이었다.

상식 회복의 의지와 함께 위의 조치들이 거침 없이 줄줄이 내려진데는 문재인 특유의 심성도 작용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후보 시절 그가 내세운 공약이나 취임 후 행동들을 상기하면 문재인은 감성이 풍부한 인물인 듯 보인다. ‘광화문 대통령’ 공약은 그의 감성적 측면을 대변해주는 사례다. “샤이한 사람”이라는 주변의 평가 역시 그의 내면적 감수성이 꽤나 예민하게 발달해 있음을 시사한다. 취임 후 지금까지 그가 내린 일련의 지시들도 그의 순수하고 섬세한 감성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이 크다. 한편으로는 흐뭇하면서도 왠지 그 점이 우려스럽다. 감성은 이성과 양립하기 어려운 속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감성은 많은 장점을 지닌 인간 정신의 한 축이다. 감성은 인간미를 유지시키고, 공감 능력을 키우는데 기여한다. 그러나 감성은 사람의 행동을 예측 불가능하게 만들곤 한다. 이성이 비록 매몰차지만 예측 가능한 행동을 보장하는 것과 대비된다. 이성이 사람의 행동을 시시각각 통제한다면 감성은 사람을 통제불능의 상태에 빠뜨리곤 한다. 합리성 측면에서 보더라도 감성은 이성보다 한 수 아래에 자리한다. 합리성을 훼손하는 감성의 최대 독소는 독선이다.

실제로 감성적 의지가 앞선 나머지 독선을 드러낸 사례들도 눈에 띈다. 공직 배제 5대원칙의 자의적 적용, 입장이 다를 수밖에 없는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의 비정규직 관련 목소리에 대한 과도한 적대감 노출 등이 그 것이다.
     
새 정부의 조치들 중에서도 가장 우려스러운 것이 4대강 사업에 대한 대통령의 정책감사 지시다. 구체적 우려의 대상은 정책감사 자체보다 정책감사를 통해 표면화될 적폐 청산, 특히 인적 청산 의지다. 청와대는 벌써부터 감사 과정에서 불법적인 요소들이 발견되면 상응하는 후속 조치를 취하겠다고 으르고 있다. 그로 인해 감사가 시작되기도 전부터 현 정권과 전전 정권 세력간 사생결단식 전쟁 분위기가 싹텄다. 지금의 작은 균열이 사회 전반으로 번질까봐 우려스럽다. 

이런 분위기를 만들 이유가 있을까? 청와대가 ‘상응하는 조치’라는 말을 구태여 입 밖에 내는 까닭을 알 수 없다. 응분의 조치는 정책감사 과정에서 국민적 공분을 살 비리가 발견되면 청와대가 원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이어질 필연이다. 적폐 청산을 하려거든 그렇게 해야 한다. 감성적 판단에만 의존할 경우 적폐의 개념이나 대상이 진영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도 감안해야 한다.

감사원을 통해 정책감사를 시도한다는 자체도 우려스럽다. 지금처럼 감사원이 대통령 직속으로 있는 한 그 곳의 감사 결과는 사실상 주문자생산(OEM) 방식으로 ‘제조’될 개연성이 있다. 지난 세 차례의 4대강 감사 결과가 그 개연성을 웅변으로 말해준다.

4대강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는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국민 다수도 그 것을 바란다. 그들 또한 무엇이 진실인지 혼란을 느끼고 있다. 혼란은 전문가를 자임하는 다수의 학자들조차 진영 논리에 매몰돼 극과 극의 주장을 펼치는데서 비롯됐다. 그 바람에 어느 전문가의 말도 선뜻 믿기 어려운 환경이 조성돼버렸다.  

지금 문재인 정권이 추진하는 감사는 기존의 혼란과 정쟁만 더 키울 가능성이 크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네 차례의 감사중 하나라는 제한적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게 그 이유다.

감사원이 법적 독립성을 확보한 기관이라는 점으로 인해 이번 대통령 지시가 타당했는지를 두고도 논란이 일고 있다. 대통령의 감사 지시가 행정부 소속이지만 독립성이 보장된 검찰에 직접 수사 지시를 내리는 것에 비유될 수 있어서이다.

4대강 사업에 대한 새로운 조사 만큼은 불가역적 결과를 도출한다는 각오로 진행해야 한다. 그러려면 여야, 진영을 막론하고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방식을 취해야 한다. 반드시 정부 기관의 감사 형식을 택해야 한다는 법도 없다.

여러 방안이 가능하겠지만 사회 각계가 두루 참여하는 특별조사위원회를 만든 뒤 역할을 맡기는 것이 우선 검토될 수 있다. 곧 진행될 개헌 과정에서 감사원을 아예 국회 소속으로 옮긴 뒤에 정책감사를 실시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감사원 업무의 국회 이관은 행정부의 권한 남용을 효율적으로 견제하면서, 예결산 심의와 함께 국회의 주요 기능중 하나인 감사 기능을 강화시켜준다는 차원에서 긍정적이라 할 수 있다.

적폐 청산은 정권을 초월해 이뤄져야 할 상시 과제다. 중요한 것은 합리성과 적절성이다. 마땅한 때에, 마땅한 방법과 목적으로, 마땅한 대상을 타깃 삼아 이뤄질 때 적폐 청산은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통해 강조한 중용(Mesotes)의 미덕을 차용해 설명하자면 그렇다는 얘기다.

 

저작권자 © 나이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