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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행복한 사회의 조건
모두가 행복한 사회의 조건
  • 나이스경제
  • 승인 2017.05.01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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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 중이 아닐 때에도 라디오를 자주 듣는 편이다. 즐겨 선택하는 채널 중 하나가 원음방송이다. 원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그냥 특정한 프로그램을 즐기다 보니 익숙해진 채널이다.

사실 종교방송들에 대해 호감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택시에 탔을 때 종교방송이 나오면 기사에게 한사코 채널을 돌려달라고 요구한다. 특정 신앙을 강요당하는 느낌을 받는게 싫어서이다.

아무래도 종교방송이다 보니 원음방송은 중간중간에 종교색이 깃든 ‘말씀공양’을 내보내곤 한다. 신도들이 프로그램의 일정 시간대를 구입함으로써 편성되는 일종의 광고방송이다. 하지만 ‘말씀공양’ 또한 신앙 강요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어 특별히 거부감을 주지 않는다.

비신도이면서 수년 동안 원음방송을 청취하게 된 데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가 있다. 원불교 특유의 타종교에 대한 포용이 그 것이다. 나와 다른 남을 인정하는 행위가 그렇듯, 다른 종교 신자들을 포용하고 인정하는 원불교의 교풍(敎風)은 마음을 넉넉하게 만들어준다.

나와 다른 남을 인정하는 것은 공존과 공영의 필수조건이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한데 어울려 조화를 이루며 사는 곳이 살맛 나는 세상이다. 이는 민주사회의 이상적 모습이기도 하다. 사람 냄새 물씬 풍긴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람사는 세상’ 이야기에 때때로 환멸을 느꼈던 이유는 지독한 편가르기와 배제 논리였다. 그런 사람들이 많은 세상은 늘 시끄럽게 마련이다.

최근 5당 대선 후보 TV토론회에서는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동성애 합법화에 반대한다는 뜻을 밝혀 논란을 일으켰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가 동성애 찬성 여부를 묻자 그가 처음 내놓은 대답은 “반대하죠.”였다. 확인하듯 다시 묻는 말에 문재인은 “저는 뭐, 좋아하지 않습니다.”라고 답했다. 기습적인 질문에 엮였다는 자각이 들었던지 이후 그의 말은 미묘한 변화의 흐름을 보였다. “합법화 찬성하지 않습니다.”, “동성혼은 합법화할 생각 없습니다.”, “차별은 반대합니다.”라는 말이 순차적으로 그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문재인으로서는 거두절미하고 마지막 대답만 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란 생각을 하며 두고두고 후회했을 성 싶다. 그러나 어쩌랴, 즉문에 이어진 즉답으로 이미 그의 진짜 속내가 만천하에 공개되고 말았으니…. 이 일로 우리 사회 일각에선 문재인을 향해 ‘진정한 진보가 맞나?’라는 물음을 던지는 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일이 이념의 문제일까? 그건 아니다. 정의당 심상정 후보의 지적대로 동성애는 단순한 성 정체성의 문제다. 양성애도 마찬가지다. 동성애나 양성애가 이성애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건 단지 사회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다는 것 한가지다.

동성애자나 양성애자들, 소위 퀴어들은 우리 사회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소수자들일 뿐이다. 왼손잡이, 장애자, 거인(巨人), 난쟁이, 다문화가정 구성원, 그리고 사회의 한 귀퉁이로 몰려 있는 노약자나 극빈자 등등처럼…. 그들은 이상한 사람들이 아니라, 상대적 불편을 운명처럼 안고 사는 이들이다. 따라서 그들보다 덜 불편한 삶을 사는 사람들은 그들에게 조금씩 양보하는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다.   

사람 머릿속 생각을 지배하려 해서는 안되듯, 개개인의 성 정체성을 지배하려 해서는 안된다. 특정한 성 정체성 주입을 밀어붙이는 것 역시 안될 일이다. 왼손잡이에게 오른손 사용을 강제해서는 안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오히려 그들을 배려하며 함께 살아가려 노력하는 사회가 선진 사회다. 그들 사회의 구성원들이 장애자를 ‘Disabled’가 아닌, ‘Handicapped’로 부르는데는 배려와 공존의 의미가 배어 있다.

성 정체성은 개개인의 행복 추구권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기본권적 권리의 영역에서 이해해야 한다. 앞서 언급한 TV토론회에서 홍준표가 동성애를 에이즈와 연결시켜 발언한 것은 억지와 편견을 바탕으로 한 다수자의 횡포다. 일일이 통계 수치들을 들먹일 필요조차 없이, 에이즈의 발병 원인이 비정상적인 성 행위임은 과학적으로 입증돼 있다. 동성애 자체가 직접적 원인은 아니라는 얘기다.   

동성애나 양성애는 찬반 논쟁의 대상이 될 수 없다. 특정한 성 정체성에 대해 사람마다 호오가 엇갈리는 걸 굳이 문제시할 것도 없다. 그러니 문재인의 예처럼 이성애자가 동성애자를 싫어하는 것을 그르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부자나 중산층 시민들이 가난한 이들의 생활 방식과 접하길 꺼려하며 끼리끼리 모여살려고 하는 것도 비슷한 논리에서 이해될 여지는 있다.

하지만 동성애가 에이즈의 발원이라 여기는 것은 부자나 중산층 시민들이 빈곤문화의 개념 - 예를 들면 마약 및 알코올 중독, 남존여비, 충동에 대한 자제력 부족 등 - 을 특정한 뒤 그 것을 빈민가의 자생적 산물로 단정하는 것 만큼이나 위험하고 독선적인 태도다.

행복 추구는 모든 사람의 헌법적 권리다. 그런데 행복을 추구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다. 결국, 행복한 사회는 각자의 개성이 최대한 존중되는 사회라 할 수 있다. 개성의 존중은 사회 구성원 각자가 다름을 인정하는데서 출발한다.

그런 맥락에서 보자면, 동성애를 포함한 모든 부류의 소수자가 활기차게 생활할 수 있는 여건이 잘 갖추어진 곳이 모두가 행복한 사회라 할 수 있다.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이 없기로 소문난 북유럽 국가들의 국민 행복도가 높다는 것은 이를 방증한다.

지난해 말 한국보건연구원이 발간한 ‘OECD 국가의 복지수준 비교연구’에 의하면, 34개 OECD 회원국 중 삶의 만족도 순위 상위 10개국에 든 나라 중 8개국이 동성혼을 합법화한 나라였다. 공동 5위권에 포함된 7개국 중에서는 스위스를 제외한 6개국(노르웨이, 덴마크, 아이슬란드, 핀란드, 캐나다, 뉴질랜드)이 동성혼 허용국이었다.

동성혼이 한 사회의 행복도를 결정하는 절대적 척도는 아니다. 하지만 동성애자와 같은 소수자가 차별 없이 사는 나라에서 행복도가 높게 나오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2015년에야 동성혼 허용국이 된 미국에서 일찍부터 샌프란시스코가 가장 살기좋은 도시 중 하나로 꼽혀왔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샌프란시스코는 흔히 소수자 천국으로 불리는 곳이다. 다민족 국가인 미국 안에서도 특히 다양한 인종이 모여들어 끼리끼리 집단을 이룬 채 어울려 살아가는 국제도시가 샌프란시스코다.

이상의 예에서 보듯, 각자 향유하는 문화가 무엇이든 성 정체성이 어떠하든 모든 사람이 서로를 인정하고 어울려 살아갈 수 있다면 그 곳이 곧 현실 속의 지상낙원이 아닐까? 제각각 획일화된 기준을 정한 채 그들끼리 살아가는 세상에서는 결코 구현될 수 없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