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기자들이 기사 작성 때 습관적으로 채용하는 문장의 기본틀이 하나 있다. “경찰은 OOO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라는 정형화된 틀이 그 것이다. 이 때 굳이 ‘신청’이라는 표현을 쓰는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경찰에겐 영장 청구권이 없다는게 그 이유다. 당연히 ‘신청’을 받는 대상은 판사가 아닌 검사다.

주지하다시피 영장 청구권은 검사에게만 주어져 있다. 헌법의 기본권 조항에는 국민을 상대로 체포 구속 압수수색을 하기 위해서는 ‘검사의 신청에 의해 법관이 발부한’ 영장이 제시돼야 한다고 적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장에 관한 한 ‘신청’은 경찰의 몫이요, ‘청구’는 검사의 몫으로 인식돼 있는게 현실이다. 형사소송법이 ‘사법경찰관은 검사에게 신청하여 검사의 청구로 판사의 구속영장을 받아…’라고 명기하고 있는게 그 배경이기도 하다.

대한민국 검찰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닌 존재다. 영장 청구권은 물론 기소권까지 독점하고 있다. 게다가 경찰에 대한 수사 지휘권도 지니고 있다. 지금은 경찰에게 할애돼 있는 수사 개시권조차도 얼마 전까지는 검찰만의 권리로 한정돼 있었다. 수사 종료권은 지금도 검찰 고유의 권한으로 온전히 남아 있다.

그 위상을 반영하듯 검찰은 법무장관의 지휘 감독을 받는 청(廳) 단위 기관임에도 불구하고 장관급을 수장으로 두고 있다. 경찰청장이 차관급에 머물러 있는 것과 비교된다. 그래서 검찰의 경우 수장의 직함도 청장이 아닌 총장이다. 검찰의 최상급 기관인 대검찰청에 ‘대’자를 붙인데는 대법원과 맞먹는 위상을 과시하려는 의도가 배어 있다.

사법부 쪽에 장관급 예우를 받는 직책이 다수인 점을 감안하면 준사법기관인 검찰의 수장에게 장관급을 부여하는게 그리 이상하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검찰과 경찰 간에는 왕년의 고부관계 정도의 위상 차가 있다는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현실이 그렇다 보니 경찰관들은 볼멘 소리를 해댄다. 거칠고 험한 일은 자신들이 도맡아 하는데 정작 결정적으로 권한을 행사하는 쪽은 따로 있다는게 그 이유다. 그들은 현장에 출동해 몸 다쳐가며 범행을 제압한 뒤 피의자에게 공무집행방해 혐의 등을 적용해 구속영장을 신청하면 검사에 의해 묵살되기 일쑤라고 푸념한다.

현직 경찰관에게서 들은 불만 중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것은 직급 체계에 관한 내용이었다. 일선 경찰관들은 자신들이 공무원이면서도 9개가 아닌 11개의 직급 구조를 지니고 있음을 내세운다. 이를 토대로, 최말단인 순경은 사실상 11급 공무원이란 주장을 편다. 실제로 경찰엔 비간부 세 단계와 ‘작은 말똥’으로 표현되는 경위부터 총경까지의 네 단계, 그리고 ‘큰 말똥’ 네 단계를 합쳐 모두 11개의 계급이 존재한다. 이는 그들이 일반 행정부처 공무원보다 불리한 처우를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주된 논거 중 하나다.

선거철을 맞아 다시 불거져 나오는 경찰의 수사권 독립과 영장청구권 할애 주장은 이처럼 누적된 불만과 연결돼 있다. 경찰이 최근 들어 부쩍 목소리를 키우는 것은 최순실 게이트로 검찰에 대한 신뢰가 더 추락한 점과도 관련이 있다. 경찰로서는 지금이 대선 정국과 최순실 게이트라는 두 가지 호재를 앞세워 권한 확대를 꾀할 절호의 시점이라 할 수 있다. 

대선 후보들도 대체로 경찰권한 강화에 긍정적이다. 그들이 그같은 입장을 취하는데는 검찰개혁이라는 뚜렷한 명분이 개입돼 있다. 검찰개혁의 주된 방향은 검찰에 주어진 과도한 권한을 축소하는 쪽으로 모아진다. 검찰개혁은 많은 국민들의 요구사항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대선 후보들이 경찰권한 강화에 찬성하는 이유가 그 것 뿐일까? 그건 아닌 듯하다. 대선 후보들의 속내는 따로 있어 보인다. 명분은 검찰개혁이지만 그들의 진짜 노림수는 11만 경찰과 그 가족 친지들의 표심을 얻는 것이라 판단된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대선 주자들의 입장이 일반의 여론에 부합하는가 하는 점이다. 이에 대한 대답 역시 ‘아니오’일 수밖에 없다.  

검찰개혁에 대한 일반의 인식은 여론조사 결과를 통해 나타나 있다. 리얼미터가 ‘YTN 국민신문고’ 의뢰로 실시한 2017년 신년특집 ‘2017명에게 묻다’라는 여론조사 결과(조사기간 2016년 12월 27~29일, 전국 성인 2017명 대상, 무선 85%와 유선 15% 자동응답,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 ±2.2%P)를 보면 응답자 중 89.8%가 검찰개혁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 

검찰조직의 문제점으로는 외부 수사개입(26.4%), 전관 예우(24.3%), 기소권 독점(20.1%) 등을 주로 꼽았다. 외부영향의 주된 요인은 ‘정권’(61.1%)이었다. 검찰개혁 방향을 묻는 질문에는 ‘수사 공정성 확보’(34.5%), ‘검찰권한 축소-기소/수사권 분리’(27%), ‘비리전담기구 설치’(19.3%) 등의 답변이 제시됐다.

이 결과를 보면 일반인 다수가 검찰개혁을 바라는건 맞다. 하지만 경찰의 수사권 독립을 해법으로 꼽고 있는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답변 항목 중 ‘기소/수사권 분리’를 지목한 이들조차도 경찰보다는 비리전담기구를 염두에 둔 듯한 측면이 엿보인다.

경찰의 수사권 독립이나 영장 청구권 확보는 시민 개개인의 인권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만큼 섣불리 다룰 문제가 아니다. 검찰 못지 않게 경찰에 대한 불신이 깊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얘기다.

중인환시 하에 물대포 맞고 쓰러진 백남기 농민의 사인이 무리한 시위 진압이 아니라며 부검영장 집행을 강행하려 한 경찰의 행위는 그들에 대한 불신을 키운 대표적 사례다. 어디 그 뿐인가? 쉬임 없이 터져나오는 경찰 비리, 수사 과정에서의 인권 침해 논란, 불공정하고 무리한 수사 논란, 그로 인한 수사 이의신청 증가 등은 ‘경찰이 과연 믿을만한 존재인가?’라는 의문을 던져주고 있다.

사건 뭉개기 관행도 경찰에 대한 불신을 키우는 주요 요인이다. 시민들이 지구대나 파출소를 코앞에 두고도 굳이 112지령실로 사건 신고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경찰은 곰곰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이같은 현실을 반영, 지금처럼 경찰의 영장 ‘신청’에 대한 적절한 통제와 수사 지휘가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경찰이 이미 절도 폭력 등 민생과 직결된 사건 수사는 거의 독립적으로 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검찰이 최소한의 수사 지휘권마저 놓아버리면 부실수사 관행이 개선될 가능성은 더 낮아질 수 있다.

경찰권한 강화를 검찰개혁의 수단으로 삼으려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검찰개혁은 경찰과 무관하게 이뤄지는게 정답이다. 그 대안은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등 제3의 사정기관을 설치해 검찰이 독점하고 있는 기소권을 분산시키고, 검찰총장 임명시 국회 동의를 구하도록 관련법을 개정하는 것 등이 될 수 있다.

경찰 수사권 독립과 영장 청구권 확보는 검찰개혁과 무관할 뿐더러 현재로서는 인권친화적이지도 않다. 그런 만큼 시급한 과제라 할 수 없다. 그보다는 경찰의 신뢰회복이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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