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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문연대 명분이 뭔가?
비문연대 명분이 뭔가?
  • 나이스경제
  • 승인 2017.04.03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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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신문 기자로 일하던 1990년대 중반, 덩샤오핑(鄧小平) 어록을 수년에 걸쳐 수집 관리하는 일을 맡은 적이 있다. 그가 죽으면 즉시 사망 관련 기사로 출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 당시 덩은 죽음을 눈앞에 둔 구순 언저리의 노인이었다. 세계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작은 거인’의 죽음은 예고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체가 경천동지할 뉴스일 수밖에 없었다.

‘등소평 어록’이라는 이름으로 관리했던 당시 파일 속의 명언 중 가장 유명한 것이 ‘흑묘백묘론’이었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그만이라는 뜻의 말이었다. 자본주의든 공산주의든 중국 인민들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체제 또는 이념이라면 호불호, 긍불긍을 가리지 말고 수용하자는 그의 실용주의적 생각이 함축된 표현이었다.

연관된 그의 어록 중 또 하나 기억나는 것은 “모든 인민들이 식사 후 과일 몇쪽을 먹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당시 중국 인민들의 현실적 욕구를 실감나게 대변한 표현이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논리였음에도 불구하고 흑묘백묘론이 중국 인민들로부터 공감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뚜렷한 명분 덕분이었다. 미국과 양강을 이뤘던 소련(蘇聯)의 하릴 없는 붕괴는 흑묘백묘론의 명분을 더욱 강화시켜주었다.

요즘 한국 정치에서도 흑묘백묘론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흑묘든 백묘든 문재인만 잡으면 그만이라는 논리가 정치권을 휘젓고 있다는 얘기다. 딱히 누군가가 이 표현을 쓴 것은 아니지만, 요즘 정치판의 작동 원리를 들여다보면 영락 없이 흑묘백묘론이 대세라는 생각이 든다.

정치판의 흑묘백묘론은 덩샤오핑의 그 것처럼 이념적 색깔이 무엇인지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무조건 더불어민주당 유력 주자인 문재인만 잡을 수 있으면 그 걸로 족하다는 논리다. 흑묘든 백묘든 색깔 가리지 말고 하나의 커다란 텐트에 모여들어 힘을 겨뤄본 뒤 가장 힘센 고양이를 선봉으로 내세워 함께 상대를 잡고, 기여도대로 논공행상을 하자는게 국내 정치판 흑묘백묘론의 요지다. 소위 비문연대론이 그 것이다.

문제는 명분이다. 지금의 비문연대론에는 유권자들의 심금을 울리며 공감을 얻을 명분이 없다. 그러니 감동이 있을리 만무하다. 정치판 흑묘백묘론자들이 억지로라도 내세워야 할 명분은 하나다. 문재인을 잡았을 때 얻을 국익이 무엇인지 논리를 정립해 제시하는 일이다. 그런데 아무리 뜯어보아도 그게 보이질 않는다.

명분 없는 다대일(多對一) 싸움은 뒷골목 불량배에게나 어울리는 생존방식이다. 대의명분 없이 약자들이 각자의 야심을 나누어 충족시키기 위해 이루는 결합을 우린 야합이라 부른다.

비문연대론자들이 자신들의 행동을 합리화하려면 최소한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되는 이유라도 들이밀어야 한다. 동시에 그 이유를 들이밀 정도로 자신들이 비교우위에 있음을 입증해보여야 한다. 이도 저도 아니고 오직 힘의 우위를 점하기 위한 비문연대라면 그 것이야말로 또 다른 패권 추구의 수단에 불과하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차라리 ‘한국판 트럼프’ 소리를 듣는 자유한국당 홍준표의 ‘좌파 타도’ 주장이 훨씬 솔직하고 명분이 있어 보인다. 보수 연대를 주장하는 홍준표와 달리 ‘좌빨’이든 ‘우파 꼴보수’든 상관 없이 반문 또는 비문이면 무조건 OK라는 식의 비문연대는 야비한 속성을 지닐 수밖에 없다.

홍준표의 방식이 바람직한 것만은 아니지만 아무런 명분도, 집단지성도 없는 비문연대보다는 그게 훨씬 나아 보인다. 홍준표는 내놓고 문재인 캠프를 ‘좌빨’로 몰아세우며 이념 대결 프레임을 만들려 애쓰고 있다. 그가 보수-진보라는 표현 대신 한사코 우파-좌파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그같은 속셈 때문이다.

색깔 불문하는 비문연대론의 명분을 굳이 찾자면 누가 대통령이 되든 여소야대 정국이 만들어질 것이란, 예견된 현실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정말 그런 논리대로 행동하려 한다면 왜 문재인만 배제해야 하는지에 대해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이질적인 정치문화를 하나로 쓸어담을 그릇이 용광로일지 과일바구니일지는 중요하지 않다.        

오직 정권을 잡는 것이 목적이라면 비문연대는 성공할 수 없고, 성공해서도 안된다. 현실적으로도 정치공학적 결합에 완강히 거부반응을 보이는 국민의당 안철수가 버티는 한 제대로 된 비문연대가 이뤄질 가능성은 없다. 대권 후보와 주자를 통틀어 가장 오른쪽에 있는 홍준표 역시 국민의당 및 안철수와의 연대 가능성은 일단 배제하고 있다. 그들이 얼치기 좌파 흉내를 내고 있다는게 그 이유다.

오락가락하긴 했지만 유승민이 바른정당 후보로 확정된 뒤 새롭게 들고 나온 자강론 역시 비문연대의 성사 가능성을 낮추고 있다. 유승민의 자강론은 그 간의 어정쩡했던 노선에 대한 뼈아픈 성찰의 결과라 할 수 있다. 그런 그가 다시 한국당과의 연대론을 들먹이기는 어려울 듯 보인다.       

설사 비문연대가 구성된 뒤 집권 꿈을 이루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정권이 순탄하게 굴러갈리도 없거니와 국가 발전을 위해 소신껏 일할리도 없다. 명분과 감동이 없는 연대의 취약성은 DJP 연합, 그리고 노무현-정몽준의 짧았던 연대를 통해 이미 입증됐다.

요즘 정가를 풍미하는 비문연대 움직임은 정치의 왜곡과 퇴행을 야기하는 독소다. 분위기가 비정상적이다 보니 떴다방식 정치집단이 출현해 남들이 애써 쳐놓은 ‘텐트’를 차지하려 이리저리 기웃거리는 기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명분 없는 비문연대는 우리 대통령 선거전의 프레임을 정책 대결이나 인물 대결과는 무관한 쪽으로 몰아가기 십상이다. 문재인 대 비문연대의 양자 대결 구도는 유권자들에게 선거전 막판까지도 한쪽의 실체만을 보여주게 된다. 만약 문재인의 상대가 누가 될지 모를 깜깜이 구도가 막판까지 지속된다면 유권자들의 선택권은 심각하게 침해받을 수밖에 없다. 그 결과는 민의의 왜곡이다.

비문연대론자들이 문재인 배척을 이야기하려면 먼저 제시해야 할 최소한의 것들이 있다. 그 첫째는 설득력 있는 문재인 불가론의 제시다. 문재인은 왜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되는지 그 이유를 제시하고 논리적으로 설명해야 한다는 얘기다. 단, 거기엔 자신들은 그 불가론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는 전제가 따른다. 둘째는 자신들이 추구하는 지도자상의 제시다. 그래야만 유권자들은 그들의 이상이 무언인지 어림이라도 할 수 있다. 그렇게 할 자신이 없다면 비문연대론은 속히 폐기하는게 바람직하다.

패거리 정치의 후유증으로 대통령이 탄핵까지 당한 마당이다. 그러니 이젠 힘의 논리만을 앞세우는, 신물나는 조폭식 정치관행은 청산할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