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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의 마지막 선택
박근혜의 마지막 선택
  • 나이스경제
  • 승인 2017.03.20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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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사회학자인 송호근 교수(서울대)가 모 신문의 지상(紙上) 대담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의식의 일단에 대해 평한 적이 있다. 대통령 후보 시절의 박근혜를 만났을 때 “국민이란 말 대신 시민이란 말을 쓰라.”고 권고했다며 한 이야기였다. 돌아온 대답은 “그건 전주시민, 대구시민(을 말할 때 쓰는 용어) 아니냐.”는 것이었단다. 송호근은 그 일을 회상하며 박근혜가 역사적 개념으로서의 ‘시민’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풀이했다.

송호근의 평가와 지적대로, 박근혜는 지금 대한민국 시민에 대한 인식 부재의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물론 본인은 아직도 그 이유를 모르고 있음이 거의 확실하지만....

박근혜는 후보 시절과 대통령 재직시를 막론하고 국가, 국민이란 단어를 누구보다 자주 입에 올렸다. 종국엔 대통령 비서실장까지 역임하면서 장기간 그 곁을 지켰던 김기춘은 박근혜를 “나라 걱정밖에 모르는 사람”으로 평가했다.

문제는 박근혜에게 국가와 국민이 어떤 의미로 각인돼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혹자는 송호근의 평가를 현학이라 비판할지 모른다. 하지만 송호근이 문제시한 것은 시민의 개념에 대한 학문적 이해도가 아니라 의식 그 자체였다.

박근혜에게 국민은 어떤 의미였을까? 그가 정치 인생에서 보여준 언행으로 짐작하건대, 박근혜에게 국민은 국가를 기계적으로 구성하는 일원일 뿐이었다. 국가 구성원으로서 충성을 다하고 설사 개인적으로 부당한 희생을 겪더라도 묵묵히 참아내야 하는 존재가 박근혜가 생각하는 국민이었다. 시대가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박근혜의 국민은 전근대적이고 전체주의 냄새까지 배어 있는 아버지 시대의 낡은 개념으로서의 그 것이었다.

역사 속의 전체주의 신봉자들이 지배했던 국가에서 소모품으로 전락했던 국민들이 그런 운명에 처해 있었다. 그 국민들은 예외 없이 불행한 삶을 살았다. 그나마 그들 전체주의 국가의 국민들은 정치 지도자가 추종한 형식적 법치주의의 희생양인 경우가 많았다. 법치를 명분 삼아 가해진 강압에는 적어도 최순실 정유라 차은택 유의 특권층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니 불행하더라도 다 같이 불행했다.   

박근혜의 인식과 달리 촛불을 들고 광화문을 비롯한 전국의 광장으로 모여든 이들은 국가의 구성원인 동시에 권리의식이 충만한 시민의 집합이었다. 자유분방하고, 때론 국가를 명목상의 존재로만 인정하려 하는 그들의 의식 수준은 박근혜를 뛰어넘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들의 촛불집회는 새로운 정치 패러다임을 가져다준, 역사적 의미를 지닌 시민혁명이었다.

사회가 실체로서 존재하는가, 또는 실재해야 하는가 하는 점은 사회학의 오래 된 의제중 하나다. 현대의 공화국 시민들은 사회를 명목상의 존재로 인식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국가도 중요하지만 그 못지 않게 개개인의 삶의 질과 인권을 중요시하는게 그들의 인식이다. 국가는 시민들의 기본권 지킴이로서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는게 그같은 인식의 기본틀을 이룬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 같으면 훨씬 조용히 넘어갔을 세월호 참사가 장기간 정치적, 사회적 이슈로 남아 있는 것도 그 연장선에서 이해해야 한다.

시민의식을 뒤따라가지 못하고 있기로는 정치권 전체가 고만고만한 수준이다. 정치권의 개헌 논의 진행 과정을 보면 특히 그런 생각이 짙어진다. 정치인들은 촛불집회를 통한 시민혁명을 시리도록 목격하고도 정체(政體)만 놓고 왈가왈부할 뿐 30년 전의 케케묵은 헌법상 기본권 조항에 대한 진지한 개정 논의는 벌이지 않고 있다.

심지어 진보를 자처하는 정당조차도 개헌과 관련해서는 정체에만 관심을 쏟고 있다. 요즘 정치권에서 유행하는 7공화국이란 말부터가 헌법상 정체의 변화를 전제로 한 표현이다.

최순실 게이트나 세월호의 비극은 박근혜의 왜곡된 국민관이 낳은 결과물들이다. 시민들의 실체를 제대로 인지하고 있었더라면, 국가 지도자로서 그처럼 낯 두껍거나 나태한 행동은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란 얘기다.

더욱 심각한 것은 박근혜의 시민에 대한 몰인식이 위헌적이고 위법한 행동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이다. 아직 행위 하나하나에 대해 형사적으로 유무죄가 가려진 것은 아니지만, 박근혜의 초법적 군림은 정치적 사법기관인 헌법재판소에 의해 객관적으로 규명된 바다.      

박근혜의 국민관은 사저로 돌아간 지금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 듯 보인다. 헌재 결정에 불복한 채 사저에 앉아 이런저런 사람들을 불러들이며 법망 탈출을 꾀하고 있는 점이 그같은 해석을 뒷받침한다.

한 정치 지도자의 구시대적 국민관이 낳은 결과는 참담했다. 처참하게 망가진 것은 박근혜 본인의 인생 뿐이 아니다. 우리 사회 전체가 그 후유증을 고스란히 떠안았다.

박근혜 정권의 초법적 군림과 그로 인한 실정이 가져다준 최대 손실을 한마디로 정리해 말하자면, 그건 사회적 자본의 치명적 손실이다. 박근혜의 실정이 사회 구성원들의 일상을 지배하는 공정한 게임의 룰, 제도, 법치에 대한 신뢰를 송두리째 붕괴시켰다는 의미다. 그나마 일말의 신뢰 회복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 헌재의 대통령 탄핵 결정이었다.        

손실된 사회적 자본을 최소한이나마 보전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이고 결정적인 단초는 박근혜의 올바른 국민관 재정립이다. 그같은 각성을 바탕으로 겸허한 반성과 책임 통감 선언, 대국민 사과가 이뤄져야 한다. 박근혜 개인으로 보아도 그게 그토록 자주 입에 올렸던 국가와 국민에 대해 마지막으로 취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이다. 박근혜에 대한 기소가 임박한 것을 감안하면, 이제 그렇게 할 수 있는 시간마저 많이 남아 있는 것 같지 않다.